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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기 시작한 밀랍

나에+ 2017. 9. 25.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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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기 시작한 밀랍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8701164



고도육성고등학교.


그 시스템은 꽤나 특별해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고등학교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특수하다고는 해도 고등학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 학교에도 마찬가지로 방과후라는 게 있다.


오늘 마지막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수업 담당 교사는 1학년 D반 교실을 뒤로 했다. 교실 곳곳에서 수업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맛보는 한숨이 울려 퍼진다.


그 교실의 창가, 교단에서 보자면 가장 뒷자리에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아야노코지는 그다지 수업 내용이 들어 있지 않은 머리를 간신히 각성시켰다.


“정말이지, 넌 매번 멍하니 있네. 그런 태도기에 테스트에서도 좋은 점수를 못 받는거야.”


찬찬히 돌아갈 준비를 하려고 할 때, 옆 자리에서 가차없는 말이 퍼부어진다.


“그런 너야 말로, 여전히 말이 심하잖아. 호리키타. 그리고, 원하는 만큼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건 좋은 거라고.”


“테스트가 가까워질 때마다, 정말로 점수에 대한 걱정이 없는지 신경 쓰지 않고는 못배기는 나도 좀 생각해줬으면 하는데.”


“하아, 뭐…. 선처할게.”


책상에 넣어뒀던 교과서와 노트를 대충 거의 다 가방에 옮겨 담고서 아야코지는 느릿느릿 일어섰다. 패기라는 건 찾아볼 수 없는 듯이 보이는게 그의 평상시 모습이다.


갑자기 호리키타에게 시선을 향한다.


“넌 아직 안 가는 거냐.”


“그래. 오늘 나온 숙제에 조금 손을 써 두고 싶어서. 어쩌면 스도에게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스도가 테스트에서 낙제점을 밑돌았던 게, 아직도 머리에 선하다.


“뭐, 귀찮은 과제이기도 했고, 고생이 많겠네.”


호리키타는 바뀌었다. 아니, 바뀌려고 하고 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계기가 되기도 한 스도를 적극적으로 걱정하는 건 나쁘지 않은 징후다. 


아야노코지는 그런 호리키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슬쩍 바라본 후, 오늘도 변함없이 외톨이로 기숙사로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교실 출구로의 첫발은 내딛었다.


딱히 쓸쓸하다든가 한 게 아니다.


“----읏!!”


하지만 두 번째 걸음을 내딛는 일은 없었다. 


출구에서,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가 있다.


학생일리가 없다. 연령은 고등학생보다도 훨씬 위. 나이는 대강 여기 학생들의 아버지 정도일 것이다. 


“………….”


교실에 들어오는 일은 없고, 남자는 조용히 문에서 안쪽을 바라보고있다. 끝에서부터 차근히 시선을 옮기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야노코지와 시선이 겹쳐졌다.


“……읏, 아.”


떨리는 공기가 그의 목구멍에 흐른다. 의도하지 않은 그 흐름이 희미하게 목소리가 되어 그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쿵,


갑자기 그의 발치에서 난 큰 소리를 낸 건, 그가 가방을 떨어뜨린 소리였다.


“아야노코지?”


이상하게 여긴 호리키타가 책상을 향해 있던 몸을 틀어 아야노코지를 되돌아 본다. 종이 뭉치를 떨어뜨리는 건 의외로 큰 소리가 나오는 법이다. 수업은 끝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5,6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교실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남아 있어서 지금은 그들 모두가 아야노코지를 뒤돌아보고 있다.


한편 아야노코지는 그런 건 털끝 하나만큼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가방을 다시 줍지도 않은 채, 순간 그가 떠올린 것은 이 반의 담임.


(말도 안돼, 난 체육 대회에서도 기말 테스트에서도 필요한 만큼 대충하지도 않았다고. 체육 대회의 결과에 대해선 챠바시라 선생님도 납득했었다. 나를 팔아 넘기기엔 지금은 시기적으로 너무 이를 터인데)


배신은 있을 수 없다. 챠바시라의 성격으로 보아도, 거래를 포기할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반사적으로 경직된 신체와는 정반대로, 아야노코지의 사고는 매끄럽게 돌아간다. 


(어째서, ---- ‘그 남자’가 여기에)


“키요타카”


‘그 남자’가 아야노코지의 이름을 부른 순간, 아야노코지의 매끄럽게 돌아가던 뇌의 회전에 제동이 걸렸다. 자신의 의사가 새하얗게 칠해져, 모든 사고가 기각되었다. 손끝이 차가워져 간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몸이 끝에서부터 조금씩 떨림을 전해오고 있는데, 그것조차 알아챌 수 없다.


‘그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야아노코지, 어떻게 된 거니?”


“뭐야, 저 남자는?”


“본 적은 없지만, 교내에 있으니까 학교 관계자 아냐?”


갑작스럽게 교실 내에서 잔물결처럼 웅성거리는 소리가 펼쳐진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에 대한 경계심과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자는, 제 3자로 있으려고 하는 의식에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목소리는 작아져 있다.


“오랜만이구나. 키요타카. 네가 이 학교에 오고나서 몇 달이나 지난 거냐.”


‘그 남자’는 그런 주위를 신경 쓰는 일 없이, 그저 야아노코지에게 시선을 맞추고 있다.


“잠깐만, 누구야?”


호리키타는 경계심을 감추려 하지 않고 ‘그 남자’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면서 살짝 아야노코지를 확인한다.


“…………”


“……야”


몇 초를 기다려봐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재촉한다.


“…………”


“……아야노코지?”


초조해진 호리키타가 할 수 없이 시선을 떼곤 아야노코지를 뒤돌아봤다.


“………어?”


무심코 눈을 크게 뜨고, 아야노코지를 응시한다.


항상 나른한 듯한 태도로, 필요하다면 상대를 위협하는 듯한 위험한 기색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틀린 선택을 했을 때 뿐이고, 호리키타는 그 이상으로 그가 감정을 명확하게 표출하는 것 따위는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어떤가.


언제나 절반을 덮은 채 있던 눈동자가 크게 뜨여 있다. 거기에 지독한 안색. 확실히 그는 은둔형 외톨이에 알맞은 흰 색이지만, 그런 것과는 비교할 게 못된다. 새파란 걸 지나서 새하얗게 핏기가 가셔져 있다. 게다가 잘 살펴 보면, 그의 손끝이, 아니 그의 몸은-----떨고 있다. 희미하긴 하지만 확실히, 그의 몸은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네가 어떻게 해서 이 모형 정원의 존재를 알고, 어떻게 섞여 들었는지, 지금에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호리키타가 아야노코지의 이변에 정신이 빼앗긴 동안, ‘그 남자’는 교실 안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흣!!”


그 순간 아야노코지의 몸은 완전히 그의 통제를 벗어났다. 몸은 중력에 의해 끌어내려져, 방금까지 서 있던 의자에 등을 부딪혀가면서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조용하기 그지 없던 교실에 콰당!! 하는 소리가 지독히도 애처롭게 울린다.


그런 아야노코지의 모습에 여의치 않고 ‘그 남자’는 가차없이 그에게 다가 간다.


뚜벅, 뚜벅


‘그 남자’가 울리는 딱딱한 발소리가 아야노코지의 눈앞에 다가와선,


“잠깐만”


호리키타는 ‘그 남자’의 앞길을 막아서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는 배우는 곳이야. 허가 없는 사람의 출입은 허락되지 않아. 보아하니 허가증도 없어 보이고, 지금 당장 나가줬으면 하는데?”


성인 남자에게도 무서워하지 않고 눈 앞을 가로막아 선다. 그녀가 살짝 확인한 건 교실 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방범 카메라.


먼저 빠짐 없이 이 상황은 직원에게 전해지고 있다. 누군가가 달려와줄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호리키타에게 아야노코지와의 사이가 갈라진 ‘그 남자’는 그래도 아야노코지에게서 시선을 때는 일은 없다. 자신을 노려보는 호리키타를 조금도 보지 않고는, 뭔가가 재미있는지 입가를 세웠다.


“키요타카. 상당히 감정 표현이 풍부해졌군. 거기에 좋은 동료를 만난 것 같구나.”


“뭣!?”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남자’가 앞길을 가로막듯이 서 있는 호리키타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호리키타는 ‘그 남자’가 힘을 담은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깨에 손이 놓인 순간,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조종당하는 것처럼 그녀의 몸은 마음대로 길을 내어주고 있었다.


호리키타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그 남자’는 아야노코지 앞에서 발을 멈췄다. 아야노코지는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일어나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그 남자’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다.


“키요타카”


‘그 남자’가 입을 연다.


지근거리에서 이름을 불린 아야노코지가 움찔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넌 오늘부로 퇴학이다”


“----읏!!”


가위에 눌리는 것처럼, ‘그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던 아야노코지가 흡, 하며 가파르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난다.


“잠, 깐……무슨, 소리를”


가까스로 짜낸 쉬고도 떨리는 목소리가, 가냘픈 아야노코지의 목을 흐른다. 예전에 하얗게 되어버려 사용할 수 없게 된 그의 뇌가, 본능적으로 짜낸 의문이었다.


‘그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쥔 그를 아무런 감정 없이 내려다보고는 그 머리를 거칠게 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크, 윽”


순간이라고는 하지만 두피에 전 체중이 걸린다. 그 고통에 아야노코지는 신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떨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수직으로 세워 체중을 싣는다.


아야노코지의 신장을 상회하는 ‘그 남자’는 그의 고개를 억지로 젖히고선, 얼굴을 들여다보는 듯이 해선 다시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유감이구나.”


보는 사람의 등골을 오싹하고, 서늘하게 만드는 그런 섬뜩한 미소. 그것을 흩뜨리는 일 없이 ‘그 남자’는 기계적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것은 기계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 하나 뒤돌아보지 않는 움직임.


머리를 잡힌 채 있는 아야노코지 조차도.


“시, 잃, 어, 싫다고. 그곳……만큼은!!”


머리를 잡힌 채 끌려가듯 걸음을 내딛는 아야노코지가, 여기까지 와서야 간신히 저항다운 움직임을 보인다.


그것은 평소의 그에게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휘두르는 팔. 브레이크대신 버티려면서도 끌려가는 다리.


엉망진창으로, 필사적으로, 패닉에 빠진 듯이, 작은 아이가 이유 없이 때를 쓰는 듯한 그런 어린 저항.


평소의 그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그 모습에, 호리키타의 뇌가 사고를 멈췄다. 놀랐다든가하는 그런 어중간한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마치 상식이 전복된 것 같은 쇼크가 호리키타를 꿰뚫는다.


“----”


“잠, 잠깐 기다려주세요!”


반 전체가 그런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한 발 앞서 정신을 차린건 히라타였다. 어조는 경어를 두르고 있지만, 그의 초조함은 날카로운 목소리가 증명하고 있다. 동시에 ‘그 남자’를 쫓기 위해, 주위의 책상을 차서 넘길 것 같은 기세로 달려나갔다.


‘그 남자’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아야노코지를 끌고는, 소리를 낸 히라타에 눈길 한번 주는 일 없이, 지금 당장이라도 교실을 나가려고 하고 있다.


----그가 퇴학? 그런 제멋대로인 게 허락될 리 없다.


지금까지 자신을 방패막이로 두곤 마음대로 할 거 다 해놓았으면서, 이제 와서 다 내팽개치다니, 허락할 리가 없었다.


“그 손 놓으라니까!”


방심은 할 수 없다. 방금 전 자신을 물러서게 한 솜씨로 봐서, ‘그 남자’의 솜씨가 뛰어난 건 명백하다. 하지만 지금, 아야노코지를 잃을 수는 없는 일이다.

호리키타는 ‘그 남자’를 쫓아 최고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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