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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Life/Translation

어디든, 뭘하든 잇시키 이로하는 시원시원하다

나에+ 2021. 4. 2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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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뭘하든 잇시키 이로하는 시원시원하다]

- 이로하스 X 내청춘 콜라보 소설 2

 

깜짝파티를 준비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답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맘먹고 단단히 준비한 깜짝 이벤트도, 교모한 기술로 선보이는 마술도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단어인 엄친아 인싸 캐릭터가 신나서 해주는 플래시 몹도 결국 뽀록나면 그만인 것이다. 자칫하면 ‘이거 깜짝 놀란 연기를 해야 하나….’하고 신경 쓰이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극히 당연한 일상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갑자기 찾아온 깜짝 이벤트에 사람은 감동하는 법이다. 신선한 놀라움은 자연스러움 덕분에 생겨나는 것이다. 원재료, 자연스러움, 생산자, 자연스러움. 아무튼 자연스러움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야 말로 서프라이즈를 준비하는 자들의 마음가짐일 것이다.

이건 생일 파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일부러 생일을 축하해줄 정도로 친한 사이이기에 더욱 신중하게, 더 자연스럽게 대해야만 한다. 평소에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만큼 사소한 차이가 불신감을 만들어 버리고 만다.


거기에, 오늘 깜짝 파티의 주연은 잇시키 이로하다. 우리 학교 학생회장이자 축구부 매니저, 그리고 우리 봉사부 식객. 덧붙여 세계에서 제일 귀여운 재수없는 년이라는 칭호를 가진 잇시키 이로하는 빈틈없으면서도 귀엽고, 약삭빠른 여자다. 그만큼 눈치도 재빨라서 자그마한 언동에서도 ‘이상한데….’하고 턱에 손을 얹고 명탐정 뺨치는 추리를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또한, 오늘이 잇시키 이로하의 생일인 만큼 그 잇시키의 마음 한 구석에서 ‘혹시 깜짝 파티 같은 거 준비하고 있는 거 아냐?’하는, 그런 일말의 기대를 품게 만들어버리고 만다. 나야 생일은 말할 필요 없고, 태어난 달인 8월에는 대체로 매일매일 안절부절하고 있다. 집으로 배달된 여름의 기운찬 인사조차(*일본 TV 광고 패러디)도 어라, 이건 내게 주는 선물이라는 말인가? 하고 마음대로 열어 보고선, ‘뭐야 샐러드유구나 고마워~!’하고 생각해버릴 정도.

그렇기에 깜짝 파티를 준비하는데 만전을 기해야만 한다.
나를 제외한 봉사부의 다른 인원도 그러한 건 잘 알고 있고, 방과후가 되자마자 잇시키가 오는 것보다 빨리 모여서 한창 준비로 분주하다. 케이크를 준비하고, 선물을 숨기고, 각자가 폭죽을 숨기거나 하면서 누가 웃긴 안경을 쓸 건지 옥신각신하며 순조롭게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준비하는 동안에 본인이 등판해버리게 되면 미묘한 공기가 흐르게 될 건 따 놓은 당상이고, 아니, 그보다 하필 오늘따라 잇시키가 부실에 오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거나 하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사태가 되버리고 만다. 주역이 없는 상태로 우적우적 케이크를 먹는 건 좀 많이 쓸쓸한 광경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 부실 오냐?’하고 평소에는 전혀 하지 않는 확인을 하려고 한다면 오늘 깜짝 파티가 있다고 알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봉사부 멤버들이 준비를 하는 동안 시간 벌기와, 잇시키를 확실하게 부실로 유도하는 역할을 할 것을 봉사부 부장이자 내 여동생, 히키가야 코마치로부터 명 받았다.

4월도 반을 넘어 입학 분위기도 조금은 진정되었는지 교사와 특별동을 연결하는 복도는 방과후와는 단절된 것처럼 고요해져 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홀로 발걸음을 새기며, 그건 그렇고, 어떤 이야기를 해서 어색하지 않게 해나갈지를 고심하며 학생회실로 향한다. 화제, 화제…. 어떤 때라도 고조되는 화제라고 하면 ‘혈압’, ‘요산수치’, ‘건망증’, ‘밤중에 갑자기 목이 마르다’같은 뭐 그런 건강과는 거리가 먼 자랑이 최고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잇시키가 ‘그쵸그쵸~’하며 대화를 이어주진 않겠지.
뭐, 평소처럼 적당히 내뱉어도 되는 아무런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겠지…. 하고 생각하며 나는 학생회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똑똑, 하고 마른 소리가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 너머로 돌아온 건 침착한 대답 소리였다.
그 후 ‘실례합니다’라는 소리를 줄여 ‘심다’라고 해도 말했다고 해도 별 차이 없을 정도이 인사를 중얼거리며 손잡이를 비틀어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바람이 시원스레 뺨을 어루만졌다. 활짝 열어 놓은 창문에서 불어오는 따듯한 바람이 커튼을 펄럭이며 복도로 빠져나간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황갈색 머리. 신록을 녹여 넣은 바람에 살포시 흔들리고, 쏟아지는 햇살에 반짝거리며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이 학생회실의 주인, 잇시키 이로하는 책상에 혼자 멈춰 서서 뭔가를 쓰고 있었던 것 같았다. 등을 꼿꼿하게 세운 채 수중의 서류를 보는 눈빛은 진지하고, 서걱서걱 달리는 펜은 막힘이 없다. 비스듬하게 들어오는 햇살에 비춰지는 모습은 청렴해서, 평소보다 훨씬 어른스럽게 보인다. 학생회실에서 성실하게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이런 느낌인가. 평소와의 격차에 당황하고 있자, 다물고 있던 잇시키의 입가가 문득 열렸다.

“무슨 일이신가요?”


단아한 음성으로 말하며, 사르르 뺨으로 흐르는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카락을 나긋이 가느다란 손끝으로 살짝 들추고, 잇시키는 천천을 이쪽을 본다.


하지만 방문자가 나라는 걸 알자마자 곧장 후냥하고 몸에 힘을 뺐다.


“아, 선배였나요.”


“그래. 고생한다. 잠시 괜찮냐?”


“네, 그럼요. …아, 이것만 정리하고나서 괜찮을까요?”


하고 말하며 잇시키는 수중의 서류를 톡톡, 펜 끝으로 두드린다. 그야 당연하지. 편한대로 하시죠.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하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잇시키 건너편에 있던 파이프 의자를 당겼다.


그걸 본채 만채 잇시키는 짤깍짤깍 볼펜을 두드려가며 흥흥, 하고 콧노래를 섞어가며 사각사각 거침없이 기입을 마저 이어간다. 머지않아 마무리인듯 빨간색 펜으로 슉하고 선을 긋고는 후아하며 만족한 듯한 한숨을 내쉬곤 프린트를 처리 완료라 표시된 폴더로 휙하고 던졌다.

무슨 일을 하고 있었나 싶어 목을 빼서 슬쩍 들여다보니, 기획서같이 생긴 문서에다 빨간 펜으로 ‘좋네요! 좋지만 뭔가 이미지와는 다르니까요, 다음 주까지 3패턴 더 보여주세요! 잘 부탁드릴게요☆’하고 귀엽게 첨언하고 있었다. 동글동글 귀여운 글씨인데 가차없는 지적이었다. 잇시키는 그걸 감추려는 듯 전환하며 일부러 한층 더 귀엽게 미소짓는다.


“기다리셨죠.”


“아니 전혀. 바빠보이네.”


“그게, 실제로 그렇게까지는 아니에요. 신학기 시작하기 전이 제일 힘들긴 했지만요. 지금은 약간은 정리가 되서 괜찮아요. 그래서 오늘은 다른 멤버들은 쉬어요.”


“흐음….”


그랬습니까. 부회장이나 서기의 모습이 안 보이는 건 그런거였나. 학생회장이 되자 마자 일 없는 날은 확실하게 쉬게 해줄 줄이야…. 으음, 요 녀석, 괜찮은 상사구나?


“꽤나 착실하게 학생회장하고 있네.”


알고 있었지만, 학생회실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과 부하를 챙겨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다시 한 번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자 문득, 미소가 흘러나와버렸다.
여러가지 경위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잇시키를 학생회장으로 추천한 건 나다. 말하자면, 잇시키 이로하를 열열히 지지했던 입장에서 이러한 성장은 기쁘기도 하지만, 쓸쓸하기도 하다는 거….
등등, 응응하며 끄덕이고 좋아하는 가수를 먼 곳에서 바라보는 심정으로 있자, 잇시키는 입가를 뾰족이며 고개를 외면한다.

“갑자기 뭐에요. 칭찬해 봤자 아무것도 안 나오거든요.”


엄청 빠른 어조로 조잘거리며 잇시키는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디로 가나 싶었더니 종종걸음으로 몇 걸음 걷다가 갑자기 멈췄다. 그 발 밑을 언뜻 바라보자, 거기엔 잇시키가 맘대로 가져온 개인 물품-미니 냉장고-이 있었다. 잇시키는 치마 자락을 누르며 쑥 몸을 굽히고는, 내 쪽을 휙하고 돌아본다.


“……뭐라도 한 잔 하실래요?”


“어, 고마워.”


정말이지 얘도 참~! 이로하스가 아니라 쉬워하스라니까. 아무것도 안 나온다면서 뜻밖에도 손쉽게 뭔가가 나왔다. 잇시키가 냉장고에서 부스럭대며 뭔가를 찾더니, 익숙한 패키지의 페트병을 손에 쥐고 뒤돌아본다.


“커피로 하실래요? 홍차? ……아니면 이. 로. 하. 스?”


그렇게 말하며 새내기 신부 같은 대사를 입밖으로 내며 똑 같은 페트병 두 개를 뺨에 대고 깜찍하게 터질 것만 같은 미소를 지었다. 뭐야 이거 귀여워. 흐음, 그러고 보니 요 녀석, 간판 소녀였지? 그렇게 물어오면, 내 대답은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커피.”


“거기선 ‘이.로.하.스’를 골라야 하는거 아니에요?”


내가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잇시키는 우웃..하고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곤, 뾰로통하게 대답한다. 그리곤 다짜고짜 턱하고 내 앞에 내려 놓아지는 이.로.하.스. 아니, 그럼 왜 뭐마실 거냐고 물어본 건데? 뭐 상관없지만…. ‘이.로.하.스.는 엄선된 전국 6곳의 수원에서 엄격한 품질 관리를 거쳐 판매되는 천연수로, 나도 좋아하기도 하니까. 한 방울 한 방울 숲이 키운 맛을 실컷 만끽해야겠다.


감사히 마시려고 하자 잇시키가 문득 놀랐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 선배는, 커피 당원이시니까요.”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뭐, 요즘은 자주 마시지. 졸음도 쫓을 겸.”


정확하긴 커피 당원이라기 보다는 맥스 커피 당 과격파지만 말이지. 그거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복잡해지니까 생략하고, 수험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듯이 말을 하자, 잇시키가 헤에- 하고 납득했다.


“아, 그러고보니 수험생이셨죠. 효과 있어요?”


“완전 효과 있거든. 꾸벅꾸벅 졸다가 책상에 쏟으면 잠이 확 깨.”


“사용법, 그게 맞나요?”


커피보다도 더 쓴 웃음으로 그런 소리를 들었다…. 잇시키는 ‘이.로.하.스’ 뚜껑을 비틀어 꿀꺽꿀꺽 마시고선 한숨을 내쉰다. 그리곤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선 살짝 돌아서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요, 오늘은 무슨 용건이에요?”


“아니, 뭐 좀 상담할 게 있어서….”


여기서 솔직하게 깜짝 파티 준비를 위한 시간 벌기라고는 할 수 없다. 나는 적당한 걸 나도 모르게 입 밖에 내고선,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고 머리를 굴렸다. 솔직히 말해서 특별히 할 말은 없지만서도. 임시 변통용 이야기를 적당히 얼버무리는 건 특기다. 시치미를 떼며 모르는 척하고 어물쩡 넘어가기 위한 허세 붙은 모면용 기술, 그런거 완전 특기라고.
최근에 있었고, 가장 무난한 주제 선택을 해보면…… 이라고 생각하고, 아까 있었던 10분 쉬는 시간에 안뜰에서 있었던 농담 섞인 말을 끌어 내 보기로 했다.


“주말, 어딘가로 가보자고 했잖아. 어디 가고 싶은 데라도 있어?”


그러자, 잇시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리곤, 무슨 말 하는 거지 이 녀석이라고도 말하는 듯이 의아한듯 미간을 찌푸렸다.


“주말,요? 네?”


“뭐야…. 그 반응…. 어딘가 가보자고 한 건 네가 말한 거거든….”


쓴웃음 섞어가며 내가 말하자, 잇시키가 짝, 하고 손뼉을 쳤다.


“아, 그거요.”


몇 시간 전에 이야기한 건데 ‘일 년 만에 들었습니다!’같은 반응이었다. 으응. 시간 흐르는 거 빠르네…. 그랬었죠~하고 말하는 것처럼 흠흠, 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잇시키가, 이윽고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살짝 몸을 뒤로 빼고서 에에엑하며 입가를 일그린다.

“…어랏, 진심으로 받아들이셨던 거에요?”


“잠깐만. 말투 위험하지 않냐? 뭔가 내가 빈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딱한 녀석 같아지는데….”


안그래도 딱한 녀석 자랑대회라면 일등 할 정도로 정평이 나 있는데, 한층 더 딱해지겠어! 하고, 투덜투덜 혼잣말을 하고 있자, 그걸 본 잇시키가 쿡쿡하고 웃는다.
그리고, 책상에 팔꿈치를 붙인 채 몸을 앞으로 숙이고 떠올리듯 눈동자를 위로 향하고선 나를 본다.


“괜찮아요? 저랑 외출 같은 거 해도요.”


누가 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잇시키는 살포시 입가에 손을 대고, 이어서 목소리를 감추듯 속삭이는 것처럼 말했다. 그 둘만의 비밀같이 은밀한 목소리는 촉촉하면서도 달콤하게 귓볼을 타고 척추까지 떨린다. 그런 간지러운 감각에 몸을 뒤로 젖히고 잇시키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어쩔거에요?”라고 무언으로 묻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시험하는 듯한 시선에서 도망치듯 나는 몸을 뒤로 빼고서 슬쩍 시선을 피한다.


“응, 뭐, 뭐냐, 그, 다 같이. 간다면 말야. 다소는 말이지. 최근, 그런 기회가 없기도 했고. 생일 축하도 겸해서 다 같이…….”


“다 같이, 하아…. 그렇군요. 거절하는 여자 같네요.”


내가 누가 봐도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쩔쩔매고 있자 잇시키가 후, 하고 불만스럽게 숨을 토해냈다. 그리곤 “뭐 상관없지만요”하고 단념 섞인 투정을 하고, 잇시키는 즉시 전환하듯이 흠, 하고 팔짱을 꼈다.


“그치만, 다 같이 어디 가는 것도 좋네요. 어디가 좋을까요~. ……아, 말 나온 김에 합숙 같은 거 할까요?”


번뜩! 하고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이 잇시키는 척하고 검지를 세웠다. 만은. 나는 아쉽게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 합수욱?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부, 봉사부라고 하는 뭐 알기 힘든 활동이긴 한데……. 운동부랑은 달라서 합숙을 하면서까지 연습하거나 하는 그런 거 없다고….”


애초에, 봉사부 자체가 의미 불명인 동아리다. 봉사부라고 자칭하고 있으면서도 봉사 활동, 이른 바 자원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건 일절 없음. 활동 내용을 알 수가 없는데, 합숙이라니 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잇시키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 같다. 네?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태연한 듯이 말한다.

“뭐든지 상관없지 않나요? 문화계 동아리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합숙하는데요. 우리 학교, 합숙소 있으니까 그다지 부담 없이 할 수 있고요.”


“아, 그렇구나….”


말을 듣고 보니, 취주악부나 연극부 같은 부들은 별 문제없이 합숙할 것 같은 느낌은 든다. 내가 모르는 것일 뿐, 다른 문화계 부서도 뭔가 할 일기 있는 거겠지. 다도부는 24시간 버티기 정좌나 그런 거 할 거고, 문예부라면 출판사와의 협의 부스에 감금되어 평생 돌아올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의 회의 실습 같은 걸 할 거다. 틀림없어. 알고 있지. 난 잘 안다니까.


하지만, 봉사부에 대해선 잘 모르니까 말이죠, 나…. 봉사부에서 합숙한다고 하면 뭐 하는 거지…. 하고 생각하자, 그걸 헤아린 잇시키가 흠흠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마침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말이에요, 진지한 연습이라기 보다는 친목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게 많다고 할까요. 덧붙여 말하지만 축구부도 할 예정이고요.”


“아아, 신입생 환영회 합숙 같은 느낌인가. 처음에는 재밌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만들어 감쪽같이 속인 뒤 등골 빼먹는 뭐 그런 거 말이지.”


“말투 최악이거든요…. 대체로 맞는 말이니까 부정하기 힘들지만요.”


내가 잘 안다는 듯한 얼굴로 흠흠, 하고 수긍하고 있자 잇시키는 완전 깬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곧장 지쳤다는 듯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 쉰다.


“뭐 재밌는 건 신입 부원들뿐이고요. 준비해야 하는 매니저측은 힘들거든요…. 예정 정리해야 하고, 돈도 모아야 하고, 그리고, 신청도 해야 하고, 식단 같은 것도 생각해야 하고……. 하아-. 귀찮아. 진짜 귀찮아. 의미 모르겠어. 성가셔.”


투덜거릴 때마다 잇시키의 어깨는 점점 쳐져선 결국엔 지쳤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만다. 그러나 이런 저런 불평을 하면서도 그만두고싶다라든지 째고싶다든지 같은 말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잇시키의 진지함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뿐이지, 축구부에서도 꽤나 성실하게 일하고 있구나….
하고 감탄하고 있는 도중에도 잇시키는 투덜투덜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신인 같은 거 안 들어와도 되는데…. 제가 영원히 사랑받는 후배 포지션으로 있고 싶어요….”


맥이 빠져 싫증난 듯한 표정으로 엄청난 말을 하는 걸 듣고, 나는 쓴웃음을 짓고 만다.


“아니,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어째서요. 저, 꽤나 사랑받는 후배 캐릭터라고 생각하는데요.”


잇시키는 불만스럽다는 듯 무웃, 하고 뾰로통해져 입술을 내밀고서 어째서요, 하고 반복한다. 뭐, 확실히 그런 걸 자기 입으로 말해버리는 모습은 어떤 의미로 보면 반대로 귀염성있고 사랑스런 후배기는 한데. 하지만, 그런 귀여움과는 별도로, 다른 이유로 잇시키는 그 포지션으로 남아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후배를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미 훌륭한 선배지않냐.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니 잇시키는 읏, 하고 목소리를 흘리며 바지런히 앞머리를 정돈하더니 휙하고 이쪽을 외면한다.


“아니, 그런 거 아니거든요…. 딱히 열심히 안 했구요…….”


“그래? 의욕 없었다면 보통 대충 날림으로 해치우든가, 다른 사람에게 내던지고 잠수 타던가 하잖아. 그러면 귀찮아지던가 하는 일 없을 거고.”


그렇게 말하며 난 나도 모르게 아련한 눈으로 자조하는 듯한 엷은 쓴웃음이 흘러 넘치고 만다.


“귀찮은 건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그런 거란 말이지….”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중요한 일이나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에 직면했을 때엔 죽을 정도로 귀찮다고 생각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그걸 이 한 해 동안 지겹도록 통감했다. 아무래도 좋은 알바 같은 건 바로 의욕을 잃어 속공으로 중단했었는데, 아니 의욕을 잃는 걸 넘어 출근은커녕 면접을 째기도 했다. 이 경험을 살려 장래에 은퇴 대행업을 해볼까하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 절실히 과거를 회상하는 동시에 빛나는 진로 설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자 맞은 편에서 희미하게 한숨이 새는 소리가 들렸다.


“………….”


슬쩍 보니 잇시키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고 있다. 가, 곧바로 정신을 차렸는지 샤삭하고 몸을 뒤로 빼며 내게서 거리를 두고 어와어와하면서 조급하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 혹시 방금 절 혹하게 만들려고 하신 건가요. 멋진 상사가 똑바로 봐주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뭉클하게 오지 않는 건 아니지만 깨끗한 몸이 되고 나서 다시 해주세요. 죄송합니다.”


엄청 빠른 말투로 쉬지 않고 말하곤, 꾸벅하고 인사하는 잇시키. 매번 있는 일이지만 아무 말도 안 했는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차이고 말았다.


“응. 어. 그래.”


이제는 평소와 같은 것이기에 내가 적당히 수긍하며 흘러 넘기자, 잇시키는 무웃하고 입술을 뾰족하게 모은다.


“나왔다-. 들을 생각 전혀 없는 그거….”


“아니, 아무래도 이젠 익숙하거든….”


“익숙하다…. 그렇군요. 익숙해졌으니까 좀 더 다른 걸 하는 게 신선할지도요….”


잇시키는 팔짱을 끼며 흠흠, 하고 수긍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서워. 싫다 정말. 이 애, 뭘 하려는 생각인 거지? 무서워. 그런 별거 아니게 보이는 서프라이즈, 굉장히 효과 있으니까 진짜로 그만 두라고? 무섭다고. 내심 덜덜 떨고 있다 보니 거기에 맞춰 내 허벅지도 떨리고 있었다. 하고, 생각했지만 단순히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이 떨고 있었을 뿐이었다. 놀래라. 코마치에게서 온 연락인가 싶어 폰 화면을 보니 거기에 ‘준비 완료’라는 문자 알림이 기세 좋게 떠 있었다.


그럼, 이제 슬슬 오늘의 주역을 데려가볼까….

수중의 ‘이.로.하.스’를 한 번에 마시고 목을 적신 뒤, 난 흠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아, 잇시키. 이제 슬슬….”


뭐라고 말을 해서 봉사부로 데려가는게 자연스러울까 하고 생각하며 말을 걸자, 잇시키가 잇기키가 확하고 고개를 든다.


“그렇네요. 이제 슬슬 부실로 가나요. 다들 기다리고 있는 거죠?”


“어, 뭐, 뭐가.”


잇시키가 너무나도 태연스레 말했기에 내 목소리는 엄청나게 상기되었다. 동요한 나머지 주어 서술어 목적어 전부 엉망진창이다. 잇시키는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움츠리며, 볼록하게 뺨을 부풀리곤, 손가락을 흔들며 설교하는 것처럼 말한다.


“서프라이즈 잘 못하시나봐요. 완전 다 들켰거든요. 평소 학생회실은 안 오면서 갑자기 오질 않나…. 그런 건 좀 더 자연스럽게 해야죠.”


“으, 으응….”


이거 완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잖아…. 그 뭐냐, 미안해? 서프라이즈, 엄청 어려운 거였네? 자연스럽게 한다는 건 힘들군…. 하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잇시키는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것 같다.


“어쩔까요?” 엄청 놀란 척하는 게 좋을까요? 저, 그런 거 특기거든요. 아니면, 반대로 서프라이즈 준비해버릴까요?


하곤, 신난듯한 모습으로 지체없이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언제부턴가 잇시키도 완전히 봉사부에 녹아 들어 있었다. 부원도 아닌데 깜짝 파티로 생일을 축하해주는 거니까 말이지. 그러니까 뭐, 봉사부도 그녀에게 있어선 있어도 되는 곳인 거겠지.


“열쇠 잠글 거니까 나와 주세요. 철수합니다! 철수!”


끙차하고 가방을 고쳐 맨 잇시키의 재촉에, 나는 복도로 나온다.
잇시키가 찰카닥 소리를 내며 신중히 문을 잠든 뒤, 휙하고 발 뒤꿈치로 돌아본다. 거기에 맞춰 두둥실 머리카락도 흩날리고, 치마자락도 펄럭였다. 그리곤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고선 생긋이 미소를 지었다.


“잠깐 어디 들렀다 가도 될까요? 뭔가 작은 선물이라도 사갈까~ 하고요.”


“아니, 너, 축하받는 입장이잖아. 그렇게 신경 안 써도 돼”


“괜찮아요. 역서프라이즈니까요. 하는김에 다이소에서 폭죽도 사요! 터뜨리면서 부실로 들어가면 분명 놀랄 거에요!”


잇시키는 꾸욱 주먹을 쥐곤, ‘이거 최고로 멋진 아이디어라고’라고도 말하는 듯 씩씩거리며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그 기세에 밀려 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아, 으응. 응…. 그렇겠네….”


어쨌든, 원래는 잇시키가 부실에 들어온 순간에 온 부원이모여 폭죽을 터뜨리며 마중하는 절차가 있긴 한데. 폭죽보다는 들켰다는 거에 놀라는 게 맞겠지만. 달래서라도 말리는 게 맞겠지만서도….


하지만, 오늘은 잇시키의 생일. 오늘의 주역은 잇시키 이로하니까. 그 소원에는 최대한 부응해야 할 것이다.


“뭐, 그런 거라면 쇼핑부터 하고 갈까….”


그리 말하면서,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다들 지금 오나 싶어 기다리고 있을 거고, 조금 늦는다고 전해두는 게 좋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메시지를 치려고 하는 순간 잇시키가 갑자기 손을 올려 제지해온다.


“안 돼요. 일부러 연락하면 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까지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 진짜란 말입니까? 하는 의심스러운 시선을 향하자 잇시키는 완전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뭔가 평소랑 다르구나- 하고 생각하면 엄청 의심하거든요. 오늘 선배처럼요.”


“아, 어어……. 과연….”


방금 있었던 내 실수를 구체적인 예로 들어버리면, 납득할 수밖에 없다. 여성은 관찰력과 직관력이 뛰어나다고 하니까. 조심하자……. 아니, 딱히, 양심에 걸리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일단은 조심하자….
내가 응응, 소리를 내며 자숙한 내용을 마음속에 깊게 새기고 있자, 그것을 본 잇시키가 문득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불과 반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곤, 살며시 내 어깻죽지에 얼굴을 대곤 달콤한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그러니까요,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이에요. ……안 들키게. ……자연스럽게 해 주세요?”


고개를 갸웃거린 찰나에 살랑살랑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며시 귀에 걸며, 치켜 세운 집게 손가락을 윤기 있는 입술에 대곤, 한쪽 눈을 감고 있었다. 별거 아닌 사소한 비밀의 공유는 그 소악마같은 행동때문인지 묘한 죄책감을 안겨준다.
그걸 떨쳐버리듯 알았어. 알았다니까. 하고 턱만 작게 움직여 수긍하자, 잇시키는 확하고 떨어져 나갔다.


“그럼, 갈까요.”


잇시키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천연덕하게 웃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걷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멈추고 있었던 만큼 조용히 한숨을 내뱉고, 몇 걸음 늦게 뒤를 쫓았다.


자연스럽게, 라고 했지만 대체 무엇을 자연스럽다고 해야 할지…. 내 정도가 되면 대체로 언제나 부자연스럽기에 자연스럽게 하려는 게 부자연스럽게 생각된다. 자연스럽게……라고 하는 게 가장 어렵다……….


하지만, 잇시키에겐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

봉사부에서 뭘 하는 것도 아니고, 태연히 차 마시고 있는 잇시키 이로하.

학생회실에서 학생회장답게 성실하게 일하는 잇시키 이로하.
축구부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매니저를 열심히 하는 잇시키 이로하.
영원히 사랑받는 후배 포지션을 양보할 생각 따윈 조금도 없는 잇시키 이로하.
그렇다고 하는데도 어느새 훌륭한 선배가 되어가는 잇시키 이로하.
그리고, 둘이 있을 땐 농담 섞인 장난 절반, 소악마처럼 보이는 잇시키 이로하.
어떤 장소에서, 어떤 직책, 어떤 포장을 했다고 해도, 분명 그녀는 자연스러운 그대로일 것이다.
영악하면서도 귀엽게 행동하는 그 때조차, 자신이 가진 마음의 샘이 넘치는 그대로, ‘이게 바로 나!’하고 주저 없이 상쾌할만큼 대담하게 웃을 거이다.

 


그러니까, 역시.

이로하스, 최고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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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리 문장 쓸 때 단어 선택하는거 좀 짜증나. 일부러 번역하기 힘든 단어만 골라 쓰는 거 같다. 아무튼 대충 이런 느낌이에요. 콜라보 소설이니까 이로하스 켐페인 말 같은 거 들어있고 여전히 패러디 같은 거 많은데 제가 그걸 다 몰라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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