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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Life/Translation

이로하 "선-배" 하치만 " "

나에+ 2014. 12. 19.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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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lephant.2chblog.jp/archives/52108902.html

 

겨울방학이 된지도 벌써 며칠이나 지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겨울방학이 되기 전엔 그러니까 작년에는 진짜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
내 인생에 있어 그렇게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해는 과거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없지 않을까......하고 생각할 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내가 말하고 있지만 괴로워 지는데.


하지만 난 외톨이다.
리얼충님들처럼 이벤트 때마다 친구들이 생기고, 놀고, 웃고, 울고 하는 그런 청춘은 일어날 리가 없다.


그러니까 이걸로 된 거다.
나에겐 고ㄷ...... 아니, 고고한 게 제일 어울리니까.


그렇게 매일매일이 플래그가 서있다면, 피곤하니까 귀찮잖아.

 

그러니까, 나는 힘든 것도, 귀찮은 것도 싫다. 평온한 게 최고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장래희망은 전업주부가 되어서 평온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

 


그랬는데......!


요즘 들어 내 평온이 부서지고 있다.
모처럼 학생회 선거에서부터 크리스마스 이벤트에 이르러, 봉사부에도 평화로운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 녀석......그래! 그 포근 하늘 빗치! 잇시키 이로하때문에......


실제로 지금도 봉사부로 이어지는 복도 몇 미터 앞에서


이로하 "서언-배애!"

 

하며 약삭빠르게도 손을 흔들고 있다.


아니, 분명히 나보고 말하는 게 아니겠지. 선배는 학교에 많이 있으니까.

 

그래서 난 못 본 걸로 하고 그녀석의 옆을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잇시키의 옆을 지나 세 걸음 정도 걸었을 때였다.


꾸욱!!!


하치만 "으엇?!"

 

거침없이 뒤에서 교복이 잡아당겨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눈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근엄하게 서 있는 잇시키 이로하. 야, 팬티 보일 듯 하면서 안보이잖아. 죽기전의 심문이냐고!

아무튼 목이 졸려버렸기에 켁켁대고 있는 나에게 잇시키가 말을 건다.


이로하 "선-배애, 왜 무시하는 거에요-?"

 

아무래도 그 선배라고 불르고 있던 건 날 말하던 것 같다.

 

하치만 "쿨럭, 쿨럭, 그, 미안. 내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로하 "제, 제가 선배라고 부르는 건 선배뿐인데요-. 그보다요, 보통 아는 사람이 눈앞에 있으면 말을 걸고 지나가는 게 매너라고 생각하는데요-."


뿌웃- 하면서 뺨을 부풀리는 잇시키. ......응......역시 약았다니까. 그렇지만 그건 그렇긴 하네.

 

하치만 "확실히 그렇구나. 그건 잘못했어. 미안."

 

이로하 "서, 선배가 솔직하게 사과를 하시다니! 그, 그치만요, 전 상처 입었다구요, 어.엄.처.엉.요! 상처받았어요-"


왤까, 하는 행동도 말도 전부 약삭빠르다. 어디서 그런 약삭빠른걸 배운건데......

그건 제쳐두고, 이 흐름은 위험하다. 최근의 경험에서 이런 흐름은 좋지 않다는 걸 난 알게 되었다.

 

하치만 "야 잇시ㅋ------"

 

이로하 "그러니까 오늘 부활동 끝나면, 쇼핑하는데 같이 가 주세요"

 

하치만 "   "

 


역시나...... 내 나쁜 감은 꽤나 잘 맞는다니까. 오히려 좋은 감은 한번도 맞은 적이 없다. 뭐냐고 그거. 슬프잖아.

 

 

이로하 "뭐, 사실은 이런 일 없었어도 같이 가자고 하려고 왔었는데요-. 뭐어, 이러면 이제 도망 못 가는거죠?"

 

새초롬한 목소리로 말하던 잇시키는, 그럼 나중에 봐요, 하고 덧붙이면서 가버렸다.

 

 

하아, 귀찮은데......


.........아무튼, 봉사부에 갈까.


드르륵 하고 소리를 내며 문을 여니, 이미 봉사부의 2명이 와있고, 각자 독서와, 휴대폰을 눌러대면서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온 걸 알아챈 두 사람이 고개를 들고,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하치만 ".......여어"

 

유키노 "안녕, 늦어가야."

 

유이 "얏하로-라구 할까, 힛키 늦었잖아! 뭐했어!"

 


아니아니, 딱히 늦든 빠르든 별 문제 아니잖아. 사람도 거진 안 오니까......


하치만 "아니, 뭐, 그게, 뭐냐. 그거야. 그거"


어째선지 말이 안 나온다. 아니, 그 이유는 알고 있는데......

 

유이 "그거라고 하면 모르잖아!"

 

하치만 "아니, 그러니까 그래서~, 그........"


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유이가하마가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유이 ".........이로하하구 관련된 거지......"

 

그 말이 나오자 다시 독서로 되돌아갔던 유키노시타가 움찔하며 반응하곤, 고개를 든다.


하치만 "......네"

 


유이 "또오-, 겨울방학 끝나고부턴 몇 번째야......랄까 매일이잖아."

 

하치만 "...........네"

 

유키노 "히키가야, 이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지 않겠니?"

 


유키노시타는 책을 덮곤 조금 미간을 좁히고 있다. 유이가하마는 응응-? 하면서 책상에 대고 앞으로 기울인다. ......유이가하마, 쌍봉우리가! 그리고 살짝 보이는 쇄골이 앗!!


그보다 어째서 난 바람 피운 남편 같은 상태가 되는 거냐고요......


겨울방학들어서부터 진짜, 잇시키는 매일 일과처럼 방과후에 나에게 와서 오늘처럼 돌아가는 길에 쇼핑에 끌고 간다.


이 일에 대해서 이 2명은 아무래도 그다지 좋게 보고 있진 않는 것 같다. 그렇기에 말문도 막혀버린다. 뭐, 사실은 나도 귀찮으니까 같이 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


하치만 "아, 아니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을 정도다. 나도 이런 거 귀찮기도 하고, 쇼핑하는데 따라가면 짐꾼 노릇해서 지치기도 하고......"

 

그러니까 어째서 난 바람 핀......(이하 생략)

 

유키노 "......그래. 그러니까, 넌 같이 가고 싶지 않은 쇼핑에 무리하게 끌려가서 민폐가 된다. 는 거지?"

 

하치만 "아, 아니 민폐라고는......"

 

어째서 살짝 화내는 건데......
아무래도 내 대답으로 더 화난 것 같고.


유키노 "어떤 쪽이니? 확실하게 말 해줬으면 하는데?"

 


어째선지 절대 0도같은 차가운 눈으로 노려본다. 난 그런 눈으로 바라봐지면 하악대는 그런 변태는 아닌데......


하치만 "여, 역시......민폐......같은 걸려나......"

 

이 대답에 만족하신 듯 하며 흐흥하면서 코웃음을 지으며 미소를 띄운다.

 

유키노 "그러니? 그럼 다음에 잇시키와 만나면, 히키가야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확실하고 친절하게 그 애한테 전해두면 되는 거지?"


무, 무서워! 뭐, 뭐냐고 이여자?!
아무리 그래도 그건 잇시키한테 미안하니까 나도 반박해둔다.

 

 

하치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잖아! 나도 잇시키한테 폐를 끼치다니......"

 

유키노  "무슨 말을 하는 거니, 히키가야? 넌 여기 부원이잖니? 부원이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으면 도와주는 게 부장의 임무란다."

 

하치만 "그건----"

 

유키노 '그리고, 이건 널 위해서기도 하지만, 잇시키를 위해서기도 하단다?"

 

하치만 "잇시키를......?"

 

 

유키노 "그래, 그게 그 애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하고 쇼핑하는 거잖니?"

 

하치만 "어, 그래. 그게 뭐가----"

 

유키노 "모르는 거니? 그럼 가르쳐줄게. 잇시키뿐만 아니라, 여성이 너처럼 눈이 썩은 남자와 둘이서 걷고 있으면 주위의 사람들은 그 여성이 너한테서 협박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잖니? 그게 설령, 소부고 학생이라면? 이 이상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협박가야?"

 

 

너, 너무하잖아 이거!!!! 크리스마스 이벤트에서 생겼다고 생각했던 확실한 관계는 어디로 간 거냐고?!

 

유이 "............있지"

 

지금까지 공기화하고 있던 가하마가 입을 열었다. 있었던 거야? 거짓말이에요. 알고 있었다고. 단지 내가 유키노시타하고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몸을 기댄 채로 내 얼굴을 빠-------안히 보고 있었기에 그쪽을 볼 수 없었어요. 네.

 

유이가하마는 약간 틈을 두곤, 살짝 숨을 들이쉰다. 그리곤 꽤 진지한 시선을 나에게 보낸다.

 


유이 "...... 힛키말야, 그게, 이로하를, 조, 좋, 조호, 좋아......해?"

 

하치만 ".........."

 

그런 식으로 시선을 아래로 향하면서 뺨을 붉게 물들이고 물어보지 말라고......나도 모르게 이상한 의식 해버리잖냐.

 

난 그 물음에 즉시 답하진 못했다. 유이가하마는 한층 더 앞으로 몸을 기울인다. ....... 가깝다니까요? 어째서 이 녀석을 포함해서 리얼충 녀석들은 이렇게나 사이가 가까운 거냐고요....
앗, 내가 좀 멀리 있을 뿐인가. 너무 멀리 있어서 인지되지 못하기까지 한다. .........슬퍼.

 

하치만 "잠, 너 가깝거든...."

 

유이 "......헤엣? 아, 아와와, 미안!"

 

 

재빨리 자세를 되돌린 그녀는 시선을 돌린다. 뺨은 붉게 물들어 있고, 눈살을 찌푸리며 불만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계신다.

 


유이 "......그, 그래서! 어떤데? 이로하를......"


점점 목소리가 줄어들고 있다.

나는 그 물음에 대해서 조금 생각한다. 그러자 유키노시타 마저도 입을 연다.

 

유키노 "그렇구나. 그거에 대해선 나도 관심이 있는걸. 이후의 방침에 참고하도록 할게."

 

 


.........엇따가 참고할건데? 이후에 나한테 매도할 때라도 쓰려고? 야, 너 진짜 그만두라고. 연애 관련한걸 소재로 한 농담이나 매도는 진짜로 트라우마 되거든?

 

 


하치만 "........별로 좋아한다던가 하는 게 아냐....뭐 그렇긴 해도 확실히 한 명의 후배로썬 좋아, 할지도 모르겠지만 너희들이 말하는 그런 연애 같은 의미의 좋아하는 거하곤 달라."

 

 

어째선지 두 사람 모두 안심하고 계신다. 그렇게나 내가 잇시키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의 잇시키가 불쌍한 거냐고요. 난 아무도 좋아해선 안 되는 거냐고......

거기에, 하곤 나는 말을 이어간다.

 

하치만 "무엇보다, 이렇게 계속 말을 걸어오는 것도, 쇼핑에 끌려가는 것도, 내가 하자고 하는 게 아냐. 그러니까. 그 물음은 내가 아니라 잇시키한테 해야 하는 거잖냐?"


이렇게 말하자, 두 사람 모두 얼굴을 마주보며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의, 아니,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이벤트 이후 봉사부는 이런 느낌이다. 이런,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하고, 유키노시타가 타주는 홍차를 셋이서 홀짝이며, 유이가하마가 가지고 온 과자를 먹고......내가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은 확실하게 지켜져 있다.
친구라고 하는 애매한 관계가 아니라, 좀 더 강하고, 훨씬 친한, 그런 진실된 것.


이런 답지도 않은 생각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부실 문이 힘차게 열렸다. 셋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거기에 있던 건 무려, 아니, 역시 잇시키 이로하였다. 어째선지 숨을 헐떡이고 있다.

 

 

 


이로하 "하아....하아..., 선배, 데리, 러, 왔..어요, 하아"

 


꽤나 숨이 찬 것 같다......전력으로 달려온 듯하다. 얼굴은 웃고있지만 어째선지 내가 걱정이 되는데.

 

유이 "이, 이로하. 그렇게 숨가쁘게, 무슨 일이야?"

 

유이가하마가 안절부절못하면서 물어보니, 잇시키는 뺨을 조금 붉게 물든이곤 아까보다 한층 더 방긋하곤 웃음을 띄며 입을 연다.

 

 

 


이로하 "하아, 하아, 그게요, 선배하고 1분 1초라도, 빨리, 하아, 만나고 싶어,서인게 당연하잔아욧."

 

 

 

 


유이 "    "

 

유키노  "    "

 

하치만 "    "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평상시라면 여기서 잇시키의 발언에 대해서 깔끔하게 무시하거나 태클을 걸거나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정말로 내 시간이 멈춰버린 걸까. 그럴 리 없지. 그저, 정말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던 거다. 왜냐면------

 

 

 

 

유키노 "저, 저기 잇시키.....?"

 


유이 "그 말은 그러니까------"

 

이로하 "----------엣?! 아, 아니에요-! 거짓말인게 당연하잖아요-!"

 

유이 "그, 그치이-. 그럴 리 없.....는거지?"


이로하 "네, 네네엣! 저기, 선배도 왜 암말 안하는 거에요-!! 아-, 혹시 착각하신 건가요? 평범하게 생각해서 제가 선배를, 이라니 있을 수 없구요, 전 하야마선배 일편단심이니까요, 선배라던가 아직은 무리에요. 죄송합니다."

 

 

 


잇시키가 평소처럼 빠른 어조로 이리저리 말하고 있다. 거기서 나도 정신을 차리곤 평소처럼 잇시키한테 말한다.


하치만 "그래서, 난 너한테 얼마나 더 차여야 되는 건데. 아니 애초에 말이다. 난 과거의 트라우마덕분에 착각 같은 건 안 하게 훈련되어 있거든? 근처에 있는 별거 아닌 외톨이하고 똑같이 취급하지 마라고. 난 프로 외톨이니까."


유키노 "그런 걸 자랑스럽게 말 할 수 있는 게 네게 있어 유일한, 굉장한 점이구나."

 

유키노시타가 관자놀이에 손을 대곤, 한숨 섞인 말을 한다. 너 정말로 그렇게 하는 거 좋아하는구나. 어울리지만.


하치만 "그렇다기 보단 아무 말 안하고 있던 것도 다른 거 좀 생각하느라 그랬고"

 

이로하 "잠깐만요, 심하지 않아요?! 귀여운 후배가 와서 그런 말을 해주는데도 다른 생각이라니요!"

 

하치만 "그래 그래, 잘못했어. 그보다 너 잘도 그렇게 빨리 말하면서도 안 버벅이네. 매번 감탄한다니까."

 

이런 대화를 하고 있자 최종하교를 알리는 종소리가 교내에 퍼진다. 이 소리를 계기로 우리도 돌아갈 준비를 하고 교문으로 향한다.

이 이후 잇시키의 쇼핑은 아무래도 학생회 비품을 사둔다던가, 진열된 물건을 둘러보면서,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사서는 나한테 들게 한다...고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잇시키가 말을 걸어오면 확실하게 반응은 했고,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찾아내면 이건 어때? 하고 평소처럼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닌, 그런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부실에서 보여주었던 잇시키의 얼굴이, 그 미소가---------------

 

 

 

 

 

 

 


----------그 녀석, 잇시키라고 하는 여자애의 진짜 얼굴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정신을 차려보니 집에 와있었다. 왠지 그 부실에서 여기까지 단숨에 시간이 지나간 것 같다.

 

코마치 "오빠, 젓가락이 멈춰있는데?"


내 사랑하는 여동생, 코마치가 빤히 바라보면서 말을 건네온다. 아, 미안미안. 하고 멈췄던 젓가락을 움직여 저녁밥을 입에 넣는다.


요 근래 잇시키가 쇼핑하는데 끌려가는 경우가 많았기에, 당연히 집에 돌아오는 것도 늦어진다. 처음에는 돌아오고 나선 혼자서 밥을 먹고 있었지만, 요즘은 코마치가 저녁밥을 먹지 않고 기다려준다.


하치만 ".....저기, 코마치"

 

내가 말을 걸자, 젓가락을 입에 문채로 응? 하고 고개를 갸웃하곤 나를 본다. 아, 약삭빠르게 귀여워.

 

하치만 "전에도 말했지만 말이다. 너도 배고픈 채로 집에 돌아오는 거니까. 날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어도 된다니까? 내가 올 때까지 배고픈 채로 공부해도 머리에 안 들어 오잖아."

 

고교 수험은 2월초에 있다. 이미 1월 중순이고, 공부도 막바지인 셈이다. 어떻게 해서든 합격하고 기뻐하는 코마치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가족 모두가 코마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낌없이 하고 있다. 나도 당연히 이 귀여운 여동생, 코마치한테 방해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내 맘은 무시한 채, 코마치는 조금 화난 듯한 표정이 된다.


코마치 "저번에도 말했지만, 괜찮다니까! 밥은 역시 혼자서 먹어도 맛있지 않구....그리고 코마치는 오빠랑 같이 먹고 싶어! 아, 이거 코마치적으로 포인트 높아!"

 

그 마지막 말이 없었다면 말이지. 헤헷하고 웃는 코마치한테, 그러냐? 하곤 말하고 다시 밥을 먹는다.


확실히 코마치의 말대로다. 밥은 여럿이서 먹는 게 맛있다......라고 생각한다. 아니, 정말로 그런가? 가족하고 말곤 밥을 안 먹으니까 잘 모르겠는데....

가정실습으로 만들었던 걸 나눠서 같이 먹었던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아무도 말은 안 했고, 솔직히 그다지 맛있지도 않았다고.....

 


코마치 "저기, 오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코마치가 까딱까딱 하면서 손짓하고 있다. 코마치는 맞은 편에 앉아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얼굴을 내민다.

 

 


하치만 "왜?"


그러자 코마치는 에잇, 하면서 내 뺨에 붙어있었던 걸로 보이는 밥알을 때선 '냠'하는 소리를 내며 먹었다.


코마치 "어때? 방금 거 하치만적으로 포인트 높았을려나?"


하치만 ".....아-, 높다 높아. 그러니까 뭐냐, 바보짓 하지 말고 어서 먹어."

 

코마치 "정마알! 코마치가 이런 거 하는 건 오빠 뿐인데! 아, 이거 코마치적으로 포인트 높아!"

 

다른 누군가한테 이런 거 하고 있었다면 그녀석을 [삐----]자신 있다. 진짜로.


극히 평정심을 잃지 않은 척을 하고 있으려고 했지만, 솔직히 좀 전의 행동에 내심 두근대버리고 말았다. 안돼. 상대는 여동생. 그 길로는 들어서선 안돼! 진짜로!!!!

 


이렇게 저녁식사를 마치곤, 먼저 목욕하러 들어간다. 코마치는 같이 들어갈래? 하고 말해왔지만, '바보'하고 말하곤 꿀밤을 줬다.
사실은 코마치도 먼저 목욕하러 들어가면 졸려서 공부가 안 된다던가 어떻다던가...


몸을 씻고, 턱까지 욕조에 잠긴다. 겨울에 이렇게 목욕할 때엔 몸 표면에서 안으로 열이 살포시 스며드는 느낌이 끝내준다.


하치만 "극락이네, 극락~"


혼잣말을 중얼대면서 눈을 감는다.
코마치도 수험이 코앞이다. 저런 얼굴을 하면서도 내심 긴장하고 있을 거고, 목욕이 끝나면 코코아라도 타서 가져다 줄까. 정말이지. 코마치가 내 여동생이라서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잇시키도 그 캐릭터와 후배라고 하는 면에서 보면 여동생 같은데. 아, 그래서 내가 이리저리 그녀석이 말하는 걸 들어주게 되는 건가. 납득했다.


그보다 최근에 진짜로 잇시키하고 자주 같이 있구나. 어제도, 오늘도......

 

 

.................오늘.......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였다.

 

오늘, 잇시키의 그 미소가 순식간에, 마치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머릿속에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그 순간 나는 눈을 뜨고 힘차게 일어섰다. 물이 자박거리며 욕조에서 떨어진다.


뭐지…? 얼굴이 뜨겁다. 그렇지만 이건 목욕을 해서 그런 게 아니다. 뿌옇게 된 거울을 닦고 자신의 얼굴을 본다. 뺨에서 귀까지 새빨갛다.

 


이후 목욕탕을 나와 머리를 말리고, 거실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물론 그때의, 잇시키의 얼굴은 참모습 이었다…고는 생각한다. 그 녀석에 대해선 아직 거진 모르지만 서도, 알고 있는 거라면 있다. 그 녀석, 내숭떨고 있지만 어설프니까.

그렇기에 본심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건, 한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보고 있으면 알기 쉽다.


그 녀석의 미소와, 그 말을 생각하지 않도록 하고 있었지만, 그건 이제 무리다. 아니, 생각하지 않게 한다는 그 시점에서 생각하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그 미소와 말의 의미는, 몇 번을 생각해도 답은 이렇게 귀결된다.

 

 


잇시키가, 나를, ……………좋아한다고?

아니! 속지말자. 나 자신!! 나는 이 타고난 자의식과잉이 몇 번의 흑역사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나비 날개를 펼 수 있을 것 같아요. 턴에이형님.

그렇다. 그렇기에 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끊었다. 나는 수동적인 외톨이가 아냐. 능동적인 외톨이다. 난 외톨이면서 외톨이의 전문가다. 이제 착각 같은건 하지 않으며, 언제나 이성적으로 있기로 마음먹었었잖아. 그래, 떠올려라. 그 시절의 나를. 고고라고 하는 자신의 심리에 도달했던 그 순간을.

 


OK. 진정했다.
즉 그것도 그 녀석의 가면일 뿐이다. 그래. 진짜 모습 같은 게 아니다. 내가 몰랐던, 착각하고 있었던 잇시키 이로하의 일면이 나왔을 뿐이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거기서 의미를 찾아내려고 하는 건 삼류나 하는 짓이다.


좋아. 이걸로 내일부터도 그 녀석하고 평소처럼 대할 수 있다. 이걸로 오늘의 자신회의는 끝이다.

생각이 정리된? 참에 2인분의 코코아를 타고, 코마치의 방문을 두드린다.

네에- 하면서, 안에서 경쾌한 목소리가 들리고, 들어갈게. 하고 말하곤 안으로 들어갔다.


코마치 “오요? 무슨 일이야? 오빠?”


책상에 앉은 채로 고개만 이쪽을 향해 돌린다. 응. 하고 말하면서 책상 빈 곳에 코코아를 내려둔다.


코마치 “역시 오빠! 마음이 통하네!”

 

하치만 “뭐, 그렇지. 마음이 통하다 못해 다른 사람하고 관계되지 않으려고 하고 있으면 어느 샌가 공기보다도 가벼워져 버리는 나니까.”


꽤나 쓰라린 자학개그를 선보이고는, 그럼 힘내라. 하고 말하곤 나가려고 하자, 코마치가 말을 걸어왔다.

 

코마치 “오빠, 요즘 봉사부 잘 하고 있는 것 같네”

 

무척이나 따듯한 목소리였다.


하치만 “뭔데? 유이가하마한테 서라도 들은 거냐? 담에 보면 코마치한테 방해하지 말라고 전해 둬야 겠는데”

 

코마치 “아니야. 오빠 얼굴을 보기만 해도 코마치는 뭐든지 알 수 있는 거니까!  ....정말, 다행이야. 오빠.”

 


넌 가엔이냐….

 

하치만 “딱히 잘 하고 있다던가 하는 거 아냐. 다시 매일매일 유키노시타한테 매도 당하고 있으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정신이 붕괴될 것 같은데”

 


코마치는 쿡쿡하고 웃으며, 그렇지만, 하고 계속해서 말한다.


코마치 “제대로 그 두 사람하고는 진정한 의미로 마주봐야 해. 그것만큼은 오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코마치는 그렇게 생각해.”

 

 

하치만 “……너무 늦게까진 무리하진 마라. 잘 자.”

 


흐흥-하고 코웃음을 짓는 코마치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코마치의 방을 나와서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등교 때, 주륜장에 자전거를 대어놓고 되돌아오니 잇시키가 서 있었다.

어제 밤, 나는 나 자신의 전문성을 재확인하고 있었기에 아무것도 불안한 것 없이, 평범하게 인사를 건냈다.

 

하치만 “안녕”

 

이로하 “안녕하세요 선배! 조금 전에 선배가 보여서요, 어제 일로 감사의 말을 전할까 해서요”

 


하치만 “필요 없어. 그런 거. 그보다 요즘 계속 그러니까 새삼스럽잖아.”

 

이로하 “뭐, 그렇지요-. 저도 사실은 그렇게 감사하거나 하진 않구요.”

 

하치만 “아니, 해. 난 학생회의 임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잖아.”

 

이로하 “그게요, 선배한텐 저를 회장으로 만든 책임이 있잖아요-. 그렇다기 보단,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치만 “으읏!”

 


그 말을 들으면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다. 아아. 그런가. 내가 이 녀석이 말하는 거에 따르는 건 여동생 같아서가 아니라 책임을 져야만 해서 그런 건가… 뭐야 그거 벗어날 수 없잖아… orz…

 

 

이로하 “라는 거니까요, 오늘도 부탁 드려도 될까요?”

 

하치만 “아, 아니, 오늘은 그게, 좀….”

 

 


이로하 “책임….”

 


중얼거리는 듯한, 하지만 확실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잇시키. 이, 이 녀석, 어떻게 된 녀석이냐고!


하치만 “……………하아, 알았어”


이로하 “역시 선배! 그럼 오늘은 부활동 끝나고 교문에서 만나도록 해요!”

 

그럼 또. 하면서 타타탓 달려가는 잇시키. 하아. 귀찮다. 하지만 이런 일로 책임을 지고 있는거면 싸게 먹히고 있는 걸까….


그날 방과후, 동아리에 가기 전에 히라츠카 선생님께 불려서 교무실에 가니, 교무실 옆에 있는 별실로 끌려갔다.

별실에 도착하자마자, 히라츠카 선생님은 소파에 푸욱, 하고 앉아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에 불을 붙이곤 후흡-하고 한번 빨아들이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즈카 “히키가야. 네 여동생은 어떠냐? 물어볼 것도 없이, 고교 수험에 대한거다. 역시 여기에 입학하는걸 희망하고 있나?”

 

하치만 “네, 그런 것 같네요. 뭐 괜찮을 것 같은데요. 제 동생이지만 저보다 똑부러지니까요.”

 

시즈카 “그래. 그러면 다행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들, 선생님들도 한 명의 사람이다. 나는 너를 포함한 봉사부에 있는 아이들을 좋아하니까, 다른 아이들보다 네 동생이 합격하길 바라고 있어.”

 

담배를 톡톡 털고는, 이어서 말한다.

 

시즈카 “그때 크리스마스 이벤트 이후에 봉사부는 어떠냐?”

 

하치만 “…곤란하네요”

 

시즈카 “…호오. 뭐가 곤란한 거지?”

 

하치만 “또 다시 유키노시타한테서 매도의 말이 날라오는게요….”

 

히라츠카 선생님이 눈을 찡그린다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시즈카 “하하하. 뭐냐. 그런 거였나! 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걱정했잖냐!”

 


웃을 일이 아니거든요? 이쪽은 날마다 마음이 후벼파지고 있다고요!!
후훗, 하면서 웃고는 히라츠카 선생님은 내 눈을 바라본다. 무척 상냥한 눈빛이다.

 

시즈카 “하-, 정말이지. 넌 재밌는 애구나. 그리고 그건 유키노시타 나름대로의 수줍음을 감추려는 거지. 너도 알고 있잖아. 그 애는 누구보다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가까이 있으니까. 특히 너하고 유이가하마 앞에서는.”

 


윽…. 뭔가 이대로는 좋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이야기를 바꾸기로 했다.

 


하치만 “ 그런데요, 요구 사항은 뭔가요? 이 말 하시려고 부른 건 아니시겠죠?”

 


시즈카 “당연히 그렇긴 하지만, 너하곤 말이 통하고, 재미있으니까. 가끔은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부르게 되는구나.”

 

 

부르지 말아주세요.
…독신이 계속되면 학생하고 대화로 꽃을 피우게 되는 건가. 누군가 데려가줘!

 

시즈카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볼까. 최근, 특히 겨울방학이 되고부터 이상한 소문이 들리고 있다.”

 


하치만 “소문?”

 

시즈카 “아니, 뭐. 실제론 소문이랄까, 목격한 정본데. 정보제공자는 내 친구의 친구다.”

 

어쩐지 수상한데….

 

시즈카 “아무튼. 내 친구의 친구에 말에 의하면, 소부 고등학교 학생이 매일 밤 19시 전후에서 20시 반 정도까지 데, 데, 데데, 데이트를 하고 있다고 하더구나.”

 

하치만 “네, 네에”

 

어째서 그 나이가 되어도 데이트라고 하는 단어에서 버벅대는 건데…. 혹시, 해 본 적이 없는건가….

 

하치만 “그거랑 저하고 무슨 관계죠?”

 

시즈카 “뭐, 끝까지 들어봐라. 그 내 친구의 친구의 말에 의하면, 소부 고등학교 학생으로, 남자애는 뭐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눈이 썩어있다고 한다.”

 

슷-하고, 허리에 식은땀이 흐른다.

 

시즈카 “여자애는 뭐랄까 포근한, 마치 학생회장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하던데-----”

 

히라츠카 선생님의 말은 점점 뜨거워져선, 이젠 폭발 할 것 같다.
나는 온 몸이 땀투성이고.

 

시즈카 “---------히키가야, 어떻게 된 일이냐아아아아아아앗!!!!!”

 

쿠오오, 하는 소리가 날 것 같은 기세로 부릅 뜬 눈에서는 지금이라도 불이 날 것 같다. 하지만 갑자기 사그라지더니, 마침내 소파에 무릎을 껴안고 고개를 숙여버렸다.

 


시즈카 “어째서냐, 히키가야. 나는 너는 믿고 있었는데…. 흑흑. 내 눈앞에서 알콩달콩, 는실난실하며….흐흑. 애초에, 이 세상은 이상하군. 이렇게 눈이 썩은 남자한테 여친이 생기기보다, 나한테 남자가 생기는게 훨씬 확률이 높을 터인데…. 흑흑. 그런 건, 국어교사인 나라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건데…. 흑흑.”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기 보단 정보제공자는 당신 자신이었습니까….

 


하치만 “저기, 선생님. 전 딱히 잇시키하고 사귀고 있는거 아닌데요. 그저 학생회를 도와주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정말로 미인이니까요, 단지 남자가 다가오기 힘들뿐이잖아요….”

 

 

어째선지 심한 말을 들었던건 나 같은데, 위로해 버리고 말았다.

 


이런저런걸 하고 있는 동안에, 선생님은 울음을 그치고, 나도 교무실을 벗어났다.

 


누군가 지금 당장 데려가줘!!


그 후에 봉사부에 가니 또 늦어버린 걸로 트집을 잡긴 했지만, 오늘은 정말로 히라츠카 선생님의 일(그걸 일이라고 불러도 될지는 의문이지만)이 있었기에 난은 피할 수 있었다.


봉사부가 끝난 후, 나는 자전거 정류장에서 자전거를 꺼내곤, 잇시키하고 약속을 했기에 교문으로 향한다. 아무래도 아직 잇시키는 오지 않은 것 같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어랏-? 이상하잖아. 그 애 안 오는 거야? 이젠 교문 주위를 걷고 있는 학생은 한 명도 없는데. 어라? 세상엔 나 혼자 밖에 없는 거야? 뭐야 그거 멋지잖아….


가 아니라! 호, 혹시 이건!! 트라우마가 뇌에 되살아난다. 이, 이이,이건 기다리게 해놓곤 사실은 먼저 돌아간, 그 패턴이잖아…. 분명히 지금 친구하고 뒷담화 까고 있겠는데.

 


“정말이지 그 선배, 기분나뻐-.” “혹시 지금도 아직까지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거나-“ “아하하, 진짜 그거 기분나쁘니까. 아냐.” “그렇지-, 진짜 웃겨”

 

 

훗, 후후훗, 그런거냐 잇시키 이로하. 네놈이 이 나를 가지고 논 거였냐. 누구한테도 민폐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외톨이마저 된 이 나를, 더욱 괴롭히려고…. 용서치 않겠어-잇시키이이이이이이!!

하며 교문 앞에서 주저 앉아 뇌내 망상을 펼치고 있으니까, 뒤에서 탁탁하고 어깨를 두들긴다.

 

 

재미있고 재밌는 망상을 일단 중단하고, 돌아보니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잇시키가 서 있었다.

 

이로하 “뭐, 뭘 하고 있는 거에요? 선배! 이런 곳에서!”


하치만 “뭐, 뭐라니…. 네가 말 했잖아. 여기서 보자고.”


이로하 “그렇지만! 보자고 했던 시간도 벌써 30분 이상이나 지났구요, 지금 1월인데요?!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요! 애초에, 이런 곳에 주저 앉아선 뭘 하고 있던 거에요!”

 

하치만 “…너한테 바람맞았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 막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는데.”


이로하 “제가 바람맞힐 리 없잖아요! 그냥 학생회의 일이 좀 길어졌을 뿐이에요!”

 

어, 어째서 이녀석은 이렇게나 화내고 있는 거야? 그보단 여기선 내가 화내야 하는 거잖아.

 

하치만 “잘 모르겠지만 잘못했어.”


이로하 “진짜에요! 반성하세요!”

 

그러니까 뭘!

 

그리곤 잇시키는 갑자기 주저앉았다. 고개를 숙여버려서 그 표정은 모르겠다. 그대로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는 잇시키가 드문 드문 말을 뱉어낸다.


이로하 “…정말이지, 어째서 기다린 거에요…. 이미,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거 해서, 또 제 호감도를 올릴 생각이신가요………. 진짜로 급상승 해버릴 것 같으니까, 그만 해 주세요………….”

 


마지막은 잘 안 들렸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잇시키의 눈앞에서 내내 서 있었다.

 


이로하 “선배”

 

하치만 “응?”

 


이로하 “머리요”


하치만 “머리? 아프냐?”

 

그러자 화악하고, 고개를 드는 잇시키.
………? 어라? 왜 울고 있는데?

 

이로하 “아니에요! 머리!! 저기, 그……, 쓰다듬어주세요.”


하치만 “…………뭐?”

 

이로하 “절 울린 벌이에요. 쓰다듬어주세요.”

 

……그렇게 말한다고 한들 좀처럼 쓰다듬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저번에 잇시키가 하야마한테 고백했던 그 날, 돌아가는 길에도 울고 있는 잇시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진 않았는데. 나. 그건 뭐냐, 머리를 쓰다듬는다는 건 내 사랑스런 여동생 전용 커맨드이니까 말이지. 그건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웅크리고 있는 잇시키의 머리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

 

이로하 “…………? 선배, 빨리 쓰다듬어주세요-.”


하치만 “미안하지만 잇시키. 여기까지야. 쓰다듬는건 여동생 전용이니까.”

 

이로하 “……뭘 조금 멋있게 말하는 건데요. 그거 그냥 시스콘이잖아요-.”


이제 됐어요! 하면서 불쑥 일어선 잇시키는, 조금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가방을 들곤 그 뒤를 따라간다.

몇 걸음 걸어간 곳에서 잇시키가 빙글하고 돌아보며 싱긋 하고, 미소를 띄운다.


이로하 “오늘은 끝까지 같이 있어달라고 할거니까요, 선-배앳”

 

하치만 “……그래”


뭐, 울려버렸으니까. 내가 나쁜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이상하다.
끝까지 같이 있어달라고, 말했던 것치곤 그저 계속 걷고만 있을 뿐이다. 때때로 내 얼굴을 힐끔힐끔 보기는 하지만, 말을 걸려는 것 같지도 않고, 어딘가의 가게에 들어가서도 그저 걷을 뿐, 아무것도 안 산다.

 

 


하치만 “오늘은 아무것도 안 사는 거야?”

 


이로하 “…………웅-, 뭔가 좋은게 있으면 살 거에요-.”

 

이런 대화를 벌써 몇 번이나 했다.
………아무것도 안 살거면 짐꾼인 나는 필요 없는 거 아닌가요….

 

 


그대로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시간만이 지나간다. 깨닫고 보니 이미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렇게 잇시키의 쇼핑에 끌려가고, 돌아올 때엔 매번, 나와 잇시키는 다른 역이지만 아무래도 이렇게까지 어두운 밤에 여자애 혼자서 돌아가게 할 수도 없기에 잇시키의 집 근처까지 배웅한다.

 

 


하치만 “잇시키, 이제 그만-----”

 

 

내가 작별 인사를 하려고 하자, 잇시키의 말이 그걸 가로막았다.

 


이로하 “선배, 조금만 더, 괜찮을까요?”

 

이렇게 말하고는 잇시키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터벅터벅 집과는 반대방향으로 걸어간다.

나도 그 뒤를 이어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작은 공원. 둘이서 같이 벤치에 앉는다.

이런 밤에 여자 후배와 공원에서 단둘이….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런 그림 같은 장면에서도, 나에게 러브코미디의 신은 내려오지 않음을.

 


나도 잇시키도 교복 위에 코트를 걸쳤지만 지금은 1월 중순이다. 밤에 밖에서 가만히 있는 건 수행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기에 나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거기에 잇시키도 조금 전부터 손을 동그랗게 모아 비비면서 숨을 내뱉고 있다. 그 하얀 숨결이 손에 닿는 게 전등에 비쳐, 묘하게 요염하고 기품이 있어 보인다.

잇시키가 말을 할 것 같지 않았기에, 내가 입을 열기로 했다.

 

 


하치만 “무슨 일 있었어?”

 


잇시키가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본다. 왜?라고도 말하고픈 얼굴이었기에, 먼저 말한다.

 

하치만 “아니, 그 뭐냐…, 어쩐지 너, 별로 말도 안하고, 아무것도 안 사고…,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그러자 잇시키는 쿡쿡하고 웃으면서 말한다.

 


이로하 “아뇨, 딱히 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라고 물어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요, 선배가 걱정해준 게 왠지 이상해서요….”


하치만 “미안. 나답지 않은 거 해서….”


이로하 “…아니에요.”


또다시 약간의 침묵이 있은 후, 이번에는 잇시키가 선배, 하고 말을 꺼냈다.

 

이로하 “저말예요, 그러니까, 하야마 선배한테 고백했었잖아요-.”

 

나는 그랬지,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잇시키는 그걸 보더니 살며시 얼굴을 앞으로 돌리곤, 먼 곳을 바라본다.

 

 


이로하 “그래서 완벽하게 차여버리고는, 그 후에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요, 선배 앞에서, 울었었잖아요…. …왠지 저 스스로 그런 말 하니 부끄럽네요-.”

 

 

그렇게 말하는 잇시키의 뺨은 확실하게 희미하게 붉다. 그렇지만요, 하고 잇시키는 계속해서 말한다.

 


이로하 “저요, 하야마 선배한테 고백해서, 다행이었어요. 그리고 나서 벌써 한 달 가까이 지났구요, 그 때엔 울었었지만요, 그렇긴 해도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 때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어요-.”

 


먼 곳을 바라보는 잇시키의 눈은 확실히 상냥해 눈빛이었다. 하지만 조금 걸린다.

하치만 “그러냐. 그렇지만 잇시키, 네가 방금 한말대로라면 마치 이젠 하야마를----”

 


이로하 “그래요.”

 


이로하 “좋아, 하지, 않아요. 솔직히, 그 때에도 하야마 선배를 좋아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야, 그건 아니지. 그도 그럴게 넌 학생회장이 되는 것도, 하야마하고----”

 

 

이로하 “그러네요. 확실히 전 하야마 선배를 좋아한다고 확신하고 있었어요.”

 


좀처럼 이야기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즉, 이 녀석은 그 때부터 하야마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건가? 아냐. 하야마 하야토의 이야기가 나오면 눈을 반짝이고 있었고, 캐물었었다. 나조차도 그걸로 작전을 세워서, 잇시키를 학생회장이 되게 했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 잇시키가 다시 입을 연다.

 

 

잇시키 “그 때도 말했었잖아요. 저도, 진실된 게, 가지고 싶어졌다고요.”

 


아, 그렇다. 이 녀석은 확실히 하야마한테 차인 후에, 이렇게 말했었다.

 


이로하 “사실은 말이에요, 저, 하야마 선배한테 고백할 때요, 전 하야마 선배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치만 “………어? 그럼 넌,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한테 고백하고 차였다는 거냐?”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한테 고백하고, 비참하게 차인다고? 그런 거, 벌칙 게임이나 이런 게 아닌 이상에야, 안 하잖아. 스스로 일부러 불행하게 되려는 녀석이라니, 있을 리가 없지.

잇시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한다.

 


이로하 “그 말대로 에요. 그게요, 그건. 제가, 제가 이제부터 찾아 낼, 진실된 것을 위한 결착이었으니까요.”

 

 

거기까지 말을 하자, 나는 문득 깨닫는다. 이 가능성은, 어제 실컷 자신을 책망할 때 숨겼던 거였다. 하지만, 어쩌면 그 가능성이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건 잇시키의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지만 확신할 수 있지만, 직감적으로, 이 이상 잇시키가 말을 하게 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잇시키 “선배, 저 사------“

 

 

하치만 “잇시키!!”

 


내 목소리가 밤중의 정적 속으로, 한 층 더 크게 퍼졌다.

갑작스런 목소리에 놀란 잇시키는, 내 쪽을 향한다.

 

 

하치만 “이게 슬슬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냐? 부모님도 걱정하실테고”

 

 

이로하 “서, 선배?”

 

하치만 “나도 이만 가 볼게. 몸도 차가워졌고, 배도 고프니까. 너도 집에 금방 가겠지만, 조심해서 돌아가라.”

 

 

그렇게 말하고 일어서서 왔던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지막까지 돌아보는 일 없이, 그럼, 하고 말하고 그 자리를 뒤로했다.


……발걸음이 무겁다. 역에서 여기까지 오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한 걸음 내딛는 게, 괴롭다.


--------나는 그 때로부터 바뀌지 않았다. 유이가하마의 말을 들을 수 없었던, 듣지 않았던 그 때로부터-------


하지만 조금 전의 분위기는 위험했다. 잇시키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어떤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고백을 받게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잇시키가 나한테 고백한다고? 설마. 있을 리 없지. 내 어디에 반할만한 요소가 있는 거지?  으음…. 역시 하나도 없군.


하지만 만약에, 정말 고백을 했다면? 왜 나는 그걸 막으려고 한 거지? …그런건, 알고 있다.

 

난 요 근래의 그 녀석과의 관계를 부수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 녀석이 매일같이 말을 걸어오고, 별거 없는 잡담을 하면서 같이 쇼핑을 하고….

그래. 나는 그런 관계가 좋았다. 즐거웠다. 그렇기에, 부수고 싶지 않았다.


부서질 것 같은 조짐은 있었다. 하지만 그걸 깨닫지 못한 것처럼 굴고, 일부러 나는 ‘평소처럼’ 보내고 있었던 거다.

 

 

 


-----------핫, 웃기는군. 난 그게 기만임을, 불과 한, 두 달 전에 경험했었잖아.

 

예의 봉사부에서, 그녀들과---------.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거기엔 확실한 관계가, 진실된 것이, 있다. 그런 추상적이기만 한걸 설명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확실히 느껴진다. 그렇다면 어째서 나는 그녀들과 그렇게 잘 설명할 수 없는 관계를 원했던 거지? 그래.

 

 


기만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관계를 원했으니까, 나는 진실 된 것을 원한다고 빌었다.


기만이었다고 해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 공간을, 그 관계를, 그녀들을.

 

---------하지만-------


진실된 것을 원했던 내가 봉사부에서 지금의 관계를 쌓아 올릴 수 있었던 건 어째서지? 그건 크리스마스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자신의 감정과 마주 보는 건 시간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거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계기가 필요한 거다.

 


나는 지금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도중에, 기만을 원했다 =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 고 하는 등식을 세운거지만 그렇다는 건, 즉, 잇시키한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바뀌려고 결심을 했으니까, 나는 이대로는 있을 수 없다. 그래. 어떤 하나의 계기가 있다면, 행동을 일으키는 게 가능하다면-----------


다리에 납덩이라도 달려있는 것처럼, 그런 발걸음으로 나는 걷고 있다. 걸음을 멈추고 장소를 확인해본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직 평소에 잇시키한테 작별인사를 하는 곳 근처였다.


이만큼이나 시간이 지나도, 여기까지 밖에 오지 못했는데, 잇시키는 오지 않는다. 그렇다는건 아직 그 공원에 있는 거란 거겠지.


걱정은 된다. 하지만 나는 뒤돌아 볼 수 없다. 나는 그녀의 말을 막고는, 도망쳤으니까. 절대로 돌아볼 순 없는 거다.


내 안에 있는 그런 쪼잔한 자존심에 싫증을 느끼면서 다시 한걸음 내디디려고 할 때였다.


타타탓하고 순간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한 순간, 꼬오오옥! 할 소리가 날 정도로 허리에 강한 충격이 온다.


       ----------- 순간 숨이 멎어, 끄억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버렸다.

 

치인건가? 아냐. 다르다. 자동차라면 좀 더 딱딱하고 차갑고, 강한 통증이다. 하지만 이건 그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이건 훨씬 부드럽고, 그리고 따듯한 것이었다.


이건 아무리 나라도 알 수 있다. 잇시키 이로하가 안고 있는 거다. 아니 잠깐만. 전혀 모르겠는데.


이따금씩 작게 오열하는 소리가 들리고, 코를 홀짝이는 소리가 나는걸 보면, 아마도, 아니, 틀림없이 울고 있는 거겠지.

 

 


하치만 “어, 저기, 잇시키?”

 

뒤에 있는 잇시키한테 말을 걸어보지만, 잇시키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더욱 강하게 껴안는다.

 


어라라-? 잇시키가 아닌건가?
아냐,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고 할까 잇시키가 아니라면 무서우니까 그만 둬 주세요. 잇시키라면 괜찮다는 것도 물론 아니다.


팔을 안은 채였지만 팔꿈치는 움직였고, 그대로 잇시키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잇시키가 꺼낸 말을 듣고 포기했다.

 

 

이로하 “훌쩍…. 선배, 제대로 들어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잇시키는 한층 더 팔에 힘을 준다. 음…, 이대로 반해버리는 걸까….

 


하치만 “듣고 뭐고, 아까 네가 말 했잖아. 하야마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결착을 지을 수 있었다고 말야. 그걸로 이야기는 끝난거잖냐.”

 


나는 이 이후의 말을 하게 할 수는 없다. 이제 와서 잇시키가 나를 좋아하는게 아니라곤 생각할 수 없다. 지금 여기, 잇시키의 눈물이, 꼭 안고있는 팔이, 허리에 확실하게 느껴지는 온기가 그걸 증명해주고 있다.


실제로도, 진실된 것은 원하고 있다. 지금의 잇시키와도 그런 관계를 맺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에 연애하고 엮일 생각은 없다. 나는 친구와 마찬가지로, 그 관계를 믿을 수 없으니까.

 

게다가 무엇보다도 그런 관계는 친구이상으로, 무서우니까.

 

이로하 “선배! 아니에요! 아직 제 말을----”

 

 

하치만 “끝났잖아.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려고? 내일도 쇼핑 같이 해달라고? 아니면 학생회일? 그것도 아니면 뭐라도 불만이라도 들어달라는 거냐?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건 그 정도뿐이다.”


이로하 “그런 게 아니에요! 하지만, 선배가 들어주셨으면 해요! 선배만은 들어주셨으면 해요! 선배, 전 선배ㄱ….”


하치만 “그만하랬지!”

 

다시 정적이 우리들을 감싼다.

그 후로 아무런 말도 없이 입을 다물어버린 잇시키는, 그렇지만 팔의 힘을 풀려고는 하지 않았다. 껴안고 있는 그 손은, 아까부터 흐느끼며 떨고 있다. 추워서인지, 내가 고함을 쳐선지, 아님 이런 행동을 하는데 용기를 다 짜내선지, 난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어째서 그런지 헤아려 줄 순 없다.

 

 

하치만 “놔 줘.”


이로하 “…싫어요.”


하치만 “놔”


이로하 “싫어요! 그러니까,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하치만 “거절하마.”


이 상태로라면 끝이 없다. 잇시키도 그걸 알아챘는지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침묵 속에서 나는 조금씩 평정심을 되찾아 갔다. 뒤에서 울고 있는 여자애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불쾌한 침묵이었지만, 일단 평정심을 찾아 냉정하게 생각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치만 “잇시키. 좀 전엔, 큰소리 내서 미안해.”

 

이로하 “………아뇨, 훌쩍, …선배도, 그렇게 큰 소리 내시는, 군요…. 조금, 흡, 놀랐어요….”

 

하치만 “………난 네가 이런 행동하는 거에 놀랐다.”

 

 


장소의 분위기가 약간 누그러졌을 때, 잇시키. 하곤 잘라 말했다.

 

하치만 “지금 니가 품고 있는 감정은 가짜다.”


이로하 “………네?”

 

하치만 “……그러니까 그건, 진짜가 아닌 감정이다.”

 

이로하 “아, 아니에요!! 그건 절대로 아니에요!!! 어째,서요!...어째서! 그런, 그런 심한 말을…하시는…거에요….”


그건 당연히, 잇시키가 상처 입을 것 같은 말을 골라서 하고 있으니까. 나라도 이런 상황에서 상대한테 그런 말을 듣는다면 그 자리에서는 아니더라도, 집에 돌아가서 펑펑 울어버릴 자신이 있다. 하지만 말 해주겠어. 여기서 이 녀석의 이 마음을, 끝내야겠다.


하치만 “사실이잖아? 아님 어째서 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이로하 “그건! ……선배가 언제나 절 도와주시구요, 그리고---”

 

이거다. 이 말만 말하게 하면 충분하다.
나는 그 때, 유이가하마한테 말했던 것처럼, 잇시키의 말을 끊는다.

 

 

하치만 “난 딱히, 너이기에 도와준게 아냐.”

 


잇시키의 손이 움찔하곤, 움직인다.


하치만 “그저 의뢰하러 왔던 게 너였고, 그저 내가 그 의뢰를 수락했을 뿐이다. 사실은 네가 아니었어도, 누구든 상관없었어. 유키노시타를 낙선 시킬 수 있었다면”


어째서 상대를 상처 주는 말을 하면, 가슴 한쪽이 욱신거리는 걸까. 이런 심한 말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말했었는데, 나한테도 아직 양심이 있다는 걸까.

 


하치만 “그리고, 너도 말했지. 하야마를 좋아하는게 아니었다고. 그 말이야 말로 거짓말이지. 내 앞에서 멋쩍은척 어필하고 있을 뿐, 넌 그 때, 확실히 울고 있었어. 그건 네 진짜 마음이다. 좋아하던 하야마한테 차여서, 슬퍼서 눈물이 난거라고.”

 

 

평소엔 그렇게 떠들지 않는데, 이럴 때에만 혀가 마음대로 움직여버리니까, 목이 바싹바싹 말라온다. 하지만 더욱 더, 나는 다그친다.

 


하치만 “그러니까, 네가 바래야 할 건 하야마와의 진실된 것이지. 좀 전에도 말했지만, 난 유키노시타를 낙선시키고 싶었어. 그건 내가 봉사부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고. 내가 바랬던 진실된 것은 그 장소와, 그 둘이다. 넌 원하지 않아.”

 


내가 말을 끝내자, 잇시키의 팔에 힘이 빠지곤, 잇시키는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그와 동시에 나도 되돌아본다. 아래를 보곤 있지만, 꽉 깨문 입술에, 손을 대고,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억제하고 있지만서도, 눈에선 흘러 넘치고 있는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심했다…고도 생각한다. 나도 이렇게까지 심한 말을 들으면, 우는걸 넘어서 자살충동이 움틀 것 같아요…. 하지만 이것 말곤, 떠오르지 않았다.

좀 더 상냥하게 말을 했더라도, 잇시키는 반드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이 녀석은 유이가하마보다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편이니까.

유이가하마도 억지로 밀어붙이는 편이긴 하지만, 유이가하만 그래도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있어서는 전문가다. 그 공간에서의 분위기와 상대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몰아붙일지, 그만둘지를 정한다.

 


하지만 잇시키는 다르다.
분명, 분위기를 파악할 수는 있겠지만 일부러 거기서 밀어붙이는게, 잇시키다.

 

 

오열을 흘리며 계속해서 울고 있는 잇시키에게, 나는 머리를 쓰다듬지도, 사과의 말을 하는 것도, 하지 않는다.

 


분명 이녀석의 마음도, 이 순간도, 시간이 흐르면 나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어, 결국엔 풍화되어 마지막엔 기억에조차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걸로 된거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점차 잇시키의 오열도 줄어들고, 마음이 침착해진 것 같다. 그리고 잇시키는 훌쩍하며 일어서며,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로하 “선배는, 훌쩍, 바보, 에요. 흑, 저요, 무슨 말을 하셔, 훌쩍, 도요, 선배가, 흑, 좋, 아요.”

 


지금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목소리로, 하지만 확실하게 그렇게 말한 잇시키는 나한테 몸을 맡기곤, 이젠 참지 않고, 성대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기습이었다곤 해도 들어버렸다. 말 하게 해버렸다. 아까부터 계속 피해다니던 말을.


잇시키가 울음을 그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니, 그동안 완전히 나, 히키가야 하치만은 멍해져서, 시간이 지나가는 것도, 엉엉하고 울고 있는 잇시키의 목소리도, 눈물에 젖어 교복 셔츠 안이 축축해지는 것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꽤나 시간이 지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나에겐 시간 따위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치만 “…들려 줘. 네 이야기”

 


잇시키가 울음을 멈추고, 멈췄던 사고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들어버리고 난 후, 이제 잇시키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이유 따윈 나에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시 그 공원이다.


하치만 “자”


공원의 출입구에 있는 자판기에서 2사람 몫의 음료수를 사서 잇시키한테 건넨다. 나도 좀 전에 말을 많이 한 탓에 목이 마르기도 했고, 잇시키도 엄청나게 울었으니까 수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2개를 샀다.


이로하 “고맙습니다. 정말이지, 선배는 저한테 약삭빠르다고 하시지만요-, 선배의 이런 모습도 충분히 약삭빨라요.”

 

하치만 “………. 역시 내 놔. 내가 마실래.”


건네준 주스를 빼앗으려고 하자 잇시키는 휙 하고 손을 교차해서 가로막으며, 장난끼 어린 표정을 짓는다.

 

이로하 “안돼요! 왜요 선배? 약삭빠르다고 해서 화나셨어요? 아니면 부끄러워 지셨어요-?”


야, 야야야야약았어! 끝내주게 약았어!!
여기선 태연하게 무시하고, 잇시키 옆에 앉자.

 

그런 쓸대 없는 대화를 하면서 서로 부끄러움을 지워보려고 노력한다.


……하아, 정말 이녀석 강하구나. 명색이 고백하곤, 그리곤 아직 대답을 해주지 않은 것 같은 상대하고 함께 있는데도, 평소처럼 말 할 수 있다니. 오히려 내가 아까부터 두근두근 대고 있게 돼버리잖아. 이게 경험의 차이인 거냐고. 제길.

 


하지만 어째선지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도 본론으로 들어갈 용기는 둘 다 없었다. 라고 하기 보단 내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해야만 하는 거야? 뭐라고 말해야 되냐 고요. 어이.


‘그래서, 어째서 나를, 조, 좋, 조조조좋, 좋아하게 된 건데?’라고 해야 하나?

아니, 기분 나쁜데. 자신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물어본다니 난이도가 너무 높잖아. 그보단 상상 속에서도 저렇게나 버벅댄다던가 하진 않는다고. 상상에서 이렇다면 실제론 그 단어를 말 할 땐 입을 다물어 버릴 정도다.


응. 그만 두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 잇시키가 말을 걸어왔다.

 

이로하 “그래서요 선배, 이야기, 제대로 들어 주실 거에요?”

 

하치만 “어, 어어. 그렇다기 보단 들어야 하는 게 당연하잖아.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안 듣고 돌아간다니 신경 쓰여서 잘 수 없다고.”

 

이로하 “아하하하, 확실히 그렇네요-.”

 

 

잇시키는 생글생글 웃고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묻는다.

 


이로하 “하지만 선배, 배고프지 않으세요? 벌써 이런 시간이구요”


그 말을 듣고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흐음…과연, 확실히 시간은 이미 2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뭐, 배고프다고 하면 배고프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하치만 “너야말로 어떤데? 그 이야기를 한다는 건, 배고픈 거냐?”

 

대화의 흐름을 이용해서 이쪽은 대답하지 않은 채, 상대한테 이야기를 되돌려준다고 하는 내 비기. 아니 일본인이라면 대부분 이 기술을 쓰고 있을 것 같네….


이로하 “조금요, 배고파졌어요. 그래서요, 이거 같이 먹어요!”


가방 안에서 목적의 물건을 찾아서 쨔안-! 하고 말하며 톳뽀(누드 빼빼로)를 꺼낸다.
…이미지 대로, 여고생은 항상 무난한 과자를 들고 다녔다. 여고생의 가방 안엔 과자와 화장 용품밖에 들어 있지 않다는 소문이 사실 인 것 같다.

톳뽀 상자의 안에는 한 봉지 밖에 들어 있지 않았고, 두 사람서 먹으니 순식간에 없어졌다.

 

이로하 “다른 사람 과자를 많이 먹다니, 뻔뻔한 선배네요-.”


하치만 “아니, 대부분 네가 먹었잖아. 난 3개 정도 밖에 안 먹었는데”

 

이로하 “하나하나 세신 거에요-? 그릇이 작은 남자는 좀 아니에요-.”

 

하치만 “아니, 3개 정도는 안 세도 기억하잖아. 보통은.”

 


톳뽀를 먹은 후엔, 둘이서 주스를 마셨다.
그리고 후우, 하고 조금 숨을 내쉬면서 약간 틈을 둔 잇시키가 말문을 열었다.

 


이로하 “조금 전에, 선배가 한 말을 듣고, 깨달은 게 있어요. 그건 제가 하야마 선배를 확실하게, 좋아했었다. 고 하는 거에요. 그 부분은 정정해둘게요.”

 


이렇게 말하면서 잇시키는 고개를 들곤 먼 곳을 쳐다봤다. 나도 그 시선의 끝을 쫓아가봤지만, 거기엔 그저 어둠이 펼쳐져 있을 뿐이기에 나에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로하 “하지만, 그래도 좋아했다고 하기 보단 동경한다는 게 강했다고 생각해요. 하야마 선배한텐 물론 동경하고 있었구요, 그 하야마 선배와 사귀고 있는 저를 동경하고 있었던 거네요. 분명히.”


흐음. 그렇다면 더더욱 이 녀석이 하야마를 단념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니, 정말 모르겠는 건 다른 거다.
자신으로선 손 닿을 수 없다는 걸 알고는 하야마를 포기했다고 해도, 어째서 거기서 나한테 벡터를 향하는 거냐고? 나와 하야마는 그야말로 코끼리와 개미, 아니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는데.

 

 

하치만 “모르겠다고. 동경하고 있었던 거면, 하야마를 쫓아가야 하는 거지. 그게 무리라도 하야마와 비슷한 놈은 얼마든지 있잖냐.”


생각하고 있던 걸 솔직하게 말 해 본다.
그러자 잇시키는 쿡, 하고 미소를 지었다.

 


이로하 “확실히 글-네요(그렇네요). 하야마 선배가 무리였다고 해도, 거기에서 선배한테 흔들리는 사람은 우선 없을 테니까요-.”


야, 너, 잠깐만, 무슨 말인데?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좀 더 상냥하게 상대를 배려하라고 이 자식이!!

그렇지만요, 하고 잇시키는 계속해서 말한다.


이로하 “전 선배를 좋아하게 돼버렸어요.”


그렇게 말하고 몸을 기울이며, 내 눈을 가만히 바라보는 잇시키. 나도 그 시선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이로하 “………역시, 이유도 말해야만…하는, 거죠?”


하치만 “그야 말해주면 고맙지. 생각하는 것도, 대답하는 것도 쉬워지니까.”


여기서 잠깐 동안, 침묵이 찾아왔다. 잇시키는 말을 정리하고 있는지 조금 아래를 쳐다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붉어지고 있다.

 

…열?


조금 걱정이 되었기에,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하치만 “야, 괜찮냐?”

 

역시 이럴 때에 이마를 손으로 만지거나 이마에 이마를 콩하고 박지 않는 게 슬프게도 내가 주인공성이 없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로하 “아,아아아아아뇨! 전혀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손을 흔들면서 전력으로 부정한다. ……오버가 심하잖냐. 진짜 약았네.

또 다시 잇시키는 후우, 하고 하얀 입김을 토해 내며, 자세를 바로 잡는다. 하지만 얼굴은 붉어진 채 그대로다.


이로하 “있죠, 선배”


하치만 “어”


다시 들었던 얼굴을 아래를 보면서 말하는 잇시키. 그렇구나. 그냥 부끄러운 건가. 뭐, 나도 꽤나 부끄럽고 말이지.


그야 당연하다. 정면에서 내가 좋아진 이유를 듣는 거고, 이 녀석은 본인 앞에서 그걸 말해야 하는 거니까.
애초에 나는 나 스스로 진심으로 고백했던 적은 있었지만, 고백 받았던 적은 없다. 마찬가지로 잇시키도 요전에 하야마 외에는 고백해본 적은 없는 거겠지.

잇시키는 그 상태로 계속 해서 말했다.


이로하 “좀 전에 선배가 말한 대로요, 확실히 전 학생회 선거에서 선배가 마음을 잡게 도와 주셨구, 크리스마스 이벤트에서는 도와주셔서, 여기에 관해서도 선배를 감사하게 여기고 있고, 호의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요, 하고 덧붙이며 잇시키는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똑바로 본다.

 

이로하 “그것만이 좋아하게 된 이유가 아니에요! 그런 건 제 안에선 사소한 거에요!”

 

하치만 “……엉? 그럼 넌 대체 뭘-----”

 

하고 말했던 걸 잇시키의 말이 차단한다.


이로하 “그걸 이제부터 말할 거니까, 선배는 가만히 있어 주세요!”


혼나버렸다.
아무래도 잇시키는 이제 당황하는 것도, 부끄러운 것도 사라져버린 것 같다. 정말이지 대단하구나,하며 감탄한다.

 

잇시키는 후읍,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부릅뜨곤, 계속해서 나를 본다.

 

이로하 “선배는 절 인정해주시니까요! 약삭빨라, 라고 하면서도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주고요! 제 진짜 모습이 나왔을 때도 제대로 대답해주시구! 제가 내숭 떨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인식해주시니까요! 울고 있으면 상냥한 말로 부드럽게 감싸주고, 그런 식으로, 어떤 저라도 선배는 인정해주니까요! 그래서요, 전, 선배가-----!”


하치만 “자, 잠깐만 잇시키!”


내가 말을 막자, 뭐? 하면서 말하는 듯한 얼굴을 하시는 잇시키님. 진짜 무서워….


하치만 “이, 일단은 진정해. 가깝기도 하고”

 

잇시키는 핫, 하고 정신을 차리곤 자신과 나의 위치를 확인한다.
좀만 더 갔으면 내가 잇시키한테 넘어뜨려지는 듯한 모습이다. 덕분에 난 허리가 아프다.
크흠, 하고 그것조차 약삭빠르게 기침을 하면서 자세를 바로잡는다.

 

 

이로하 “죄송해요. 조금 평정심을 잃어 버린 것 같네요. 그치만요 선배, 좋은 곳에서 말을 자르다니, 너무해요!”

 

흥이닷, 이라고도 말하고 싶은 듯, 몸을 돌리면서 등을 보이는 잇시키. …뭔가 리액션이 일일이 귀찮고 약삭빠르구나. 이녀석은.


하치만 “그건 미안해. 하지만 네가 말한 것 같은 사람은 나 말고도, 그야말로 네 반에라도 있을 거잖냐.”

내가 사과하자, 잇시키는 다시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본다.

 


이로하 “없어요. …확실히 여자애들은 제가 내숭 떨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대부분은 저를 싫어해요. 가끔 남자여도 제가 진짜 모습이 아니란 걸 알고 있는 사람도 있어요. 예전에 고백해 온 사람 중에서도 있었어요. ‘이로하, 내 앞에서는 진짜 모습으로 있어도 돼. 그러니까, 사귀자’라면서요.”

 


하치만 “좋잖아. 그런 녀석. 서, 설마 얼굴보고 고르는 거야…?”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이로하 “아니요---------”

 


다, 다행이다. 만약 그랬다면 무서워서 지릴 뻔 했어.

 

이로하 “-----------그것도 있지만요”


있는 거냐!! 역시 이 애 무서웟!
역시 여자는 무서워. 나의 길을 비춰주는 천사는 토츠카와 코마치, 그리고 토츠카 하고 토츠카 정도구나. 토츠카의 아버지, 어머니, 토츠카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잇시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로하 “확실히 감자 같은 얼굴로 그런 대사를 멋진 척 하는 얼굴로 말하는 걸 들었을 땐 소름 끼쳤지만요, 지금은 그런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일일이 이야기 흐름을 끊지 말아 주세요!”


또 혼나버렸다.
하지만 내가 시무룩해있어도 기분 나쁠 뿐이기에, 짐짓 침착한 척하며, 미안. 이라고 이 말만 해 둔다.


이로하 “전 저 스스로가 진짜 모습으로 있을 곳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물론 솔직한 모습으로 있을 수 있으면 그게 가장 좋겠지만 서도요, 분명히, 계속 솔직하게 있으면 그 솔직한 모습마저 자신의 가면이 돼버릴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흠. 확실히. 말하려고 하는 건 알 것 같다.
분명 솔직하게 있으면 이라고 하는 건 진정한 자신을 드러낸다는 거다. 그런 진정한 자신을 보여주고 있어도, 언젠가 문득 자신을 냉정하게 보면, 그조차도 진짜 자신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된다. 분명히, 우리들은 자신을 모른다고 하는 느낌을 두려워하는 거겠지.

 

이로하 “그래서요, 제가 바라는 건 진짜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어떤 나라도 그걸 나라고 받아들여주는, 그런 곳을 원해요.”


글쿤(그렇구나), 잇시키의 마음은 잘 알았다. 하지만 한 가지가 걸린다.


하치만 “네가 말하고 싶은 건 알겠어.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하야마가 좋잖아. 그 녀석은 네 모든걸 받아들여줄걸.”


그래, 하야마 하야토.
그 녀석은 다른 사람의 모든 걸 받아들여 줄 것이다. 타인의 나쁜 부분조차도 긍정해주고, 오히려 그걸 그 사람의 플러스적인 면이라고 평가 해 줄 수 있다. 나로써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을 그 녀석은 대수롭지 않게 해낸다.

 

이로하 “그렇네요. 만약 제가 하야마 선배와 사귀게 되었다면 하야마 선배는 제 모든걸 감싸 줄 것 같네요.”

 

그렇다면 그걸로 좋은 거잖냐. 하고 말하려고 했는데 잇시키가 하지만, 하고 덧붙였기에 그 말은 목구멍으로 되돌아갔다.


이로하 “하야마 선배의 상냥함은, 응-, 뭐라고 할까요, 어딘가 온도가 없는걸요-. 차갑지도 않지만, 따듯하지도 않은, 것 같아요.”


………그 말은 그러니까, 내 상냥함은 따듯하다고 하는 건가?
어, 어쩐지 귀 뒤쪽까지 단숨에 뜨거워졌다고…!


뭐 이것도 이 녀석의 말에 납득이 간다.
요 1년동안, 어쩐지 그 녀석과 같이 있었으니까. 그 녀석은 내 나름대로 봐 왔다…. 라는 말을 했다간 에비나가 헉헉댈 것 같지만.

나는 그 녀석과 접해있는 동안, 그 녀석의 인간성을 조금은 이해했다. 그 녀석의 그 상냥함이 잔혹하다고 하는 걸.

 

이로하 “그래서요 선배, 전 선배가 좋아욧. 이제 거짓말은 안 할래요. 전 원하고 있어요. 선배와의…, 진실 된 것을요….”

 

나는 솔직하게 말해서 감동했다.
나를 좋아하게 된 이유,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숨기지 않고 말한 잇시키 이로하에게.

내가 그런 심한 말을 했는데도, 그런데도 좋아한다고 단언하는 잇시키가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이거완 별개의 문제다.

 

하치만 “잇시키, 그래도 난 네 마음엔 아직------”


이로하 “알고 있어요. 선배가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도요, 그리고 봉사부의 두 분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요.”

 

내 말을 가로막는 잇시키.
그래, 난 여기서 잇시키의 마음에 당장 대답을 해 줄 수 없다.
잇시키가 이야기하고 있는 도중에도, 그녀석들, 그러니까, 그 2명의 얼굴이 뇌리에 떠올랐으니까.

 

이로하 “선배 맘속에서요, 대답은 정해졌나요?”


나는 그 물음에 답해 줄 수 없었다.
아직 가슴속에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기에.
마치 그런 나를 알고 있다는 듯이, 잇시키가 후훗, 하고 미소를 흘리며 말한다.


이로하 “내일요, 그 교실에서 넷이서 이야기 하지 않을래요?”

 

하치만 “……뭐?”

 

이로하 “아뇨, 이야기 해 달라고 할거에요. 그렇게 정했어요. 이건 학생회장 명령이니까욧”

 


내가 상황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자, 잇시키는 끙차,하고 말하며 벤치에서 일어섰다. 그렇게 방긋이 미소를 지으면서 내 얼굴을 본다.

 

 

이로하 “서언-배, 집에 가요.”

 

 

그 후에 언제나 작별인사를 하던 곳에서 잇시키와 헤어진다. 헤어질 때 잇시키는 오늘 일에 대한 사죄와 함께, 한 마디를 덧붙이곤 집으로 돌아갔다.

 

“좋은 대답을 기대하고 있을게요”

 

헤어질 때 이런 대사를 살짝 내뱉는 그 모습에, 그녀의 숨기지 않는 약삭빠름이 보인다. 오히려 이게 잇시키답다는 생각을 해버려서, 웃음이 나온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시간은 23시를 넘어서고 있었으며, 이런 시간에 귀가하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에 잇시키가 불렸을 때 코마치한테 늦어질 것 같다고 전해 뒀으니까, 지금은 자기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자고 있을 것이다.
나도 목욕을 하고 내 방으로 올라간다.
침대에 뛰어들어, 다시 한번 오늘 일을 대략적으로 생각해본다.

 

 

뭔가 엄청나게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던 하루였다….
정말이지, 오늘은 지쳤다.
하지만 오늘이 태풍이라면, 내일은 슈퍼 셀이 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 하아, 우울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수마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몸이 심하게 흔들리는 느낌에 무거운 눈꺼풀을 떴다.
역시 겨울이구나. 아직 어둡고 깜깜하다.
난 머리맡의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아직 5시 조금 지났을 뿐이잖앗!!!!


나를 이런 정신 나간 시간에 깨우는 건 우리 집에선 한 명밖에 없다. 그렇기에 당연히, 침대 옆에는 코마치가 서 있다.
잠이 덜 깬 눈으로 코마치를 쳐다보자 코마치가 방긋-하고 미소를 짓는다.


코마치 “콰앙!”

 

그렇게 말하면서 점프 한 코마치가 누워서 뒹굴고 있는 나에게 뛰어들었다. 당연히 나는 피하지 못하고, 코마치의 아래에 깔려, 밑받침이 된다.

쿠억!! 또 다시 기분 나쁜 소리를 내버렸지만 코마치는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뭉그적 뭉그적 움직여 승마자세로 전환했다.

 

 

 

코마치 “천사라고 생각했어? 유감이지만, 코마치였습니닷!!”


으헤헷, 하고 소년 같은 미소로 코마치는 말한다.
………천사보다도 더 천사로 보인다(확신).

 


하치만 “……씨꺼. 빨리 비켜.”


코마치 “으으응-, 정말이지. 오빠 반응 안 좋아! 코마치가 이런 걸 해주는 건 오빠 뿐인데? 아, 이거 코마치적으로 포인트 높아”


하치만 “반응이고 뭐고, 이런 시간에 깨우는데 있을 리가 없잖냐. 무슨 일인데?”


나 말고 이런 걸 했다면 그 녀석을 달까지 날려보낼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코마치는 에헤헤-하고 웃는다. ……정말로 미안하다곤 생각하지 않는구나. 요녀석.

 


코마치 “근데 근데-,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나- 오빠? 예의 학생회장님이랑”

그 이야기를 묻고 싶어서 이런 시간에 날 깨운 거냐고요. 젠장.


하치만 “……딱히 아무 일도 없었어.”


코마치 “그럴 리가 없잖아. 코마치한테 거짓말은 할 수 없어. 오빠. 무슨 일이 있었어? 말 할 때까지 코마치 여기서 안 비킬 거야.”

 

오히려 좋은데, 이대로 내 옆에 있어. 하고 말할 뻔 했지만 어떻게든 목 안으로 집어 넣는다.
으-음. 어제, 어제…….

뇌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어제 일을 천천히 떠올린다.


………그러고 보니 나, 어제 잇시키가 이야기 했었지.

내가 회상하고 있자, 코마치의 눈이 빛났다.


코마치 “오빠야 일류 감정사인 코마치는, 알아버리고 말았습니닷!!”


뭐야 그거 아무도 원치 않을 것 같은데….
그보다 아침부터 텐션 너무 높아서 성가셔.


코마치 “그러니까!! 오빠는 어제!! 예의 학생회장한테서!! 고백 받은 거구나!!!!!”

 

 

……뭐어…라고…

 


한방에 맞춰버렸다.
역시 일류 감정사님이시다….
아니,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째서 안거지? 혹시 얼굴에 다 나왔어? 혹시 지금 내 얼굴 새빨간 거야?
아니면 얼굴에 써 져 있는 거야? 야 잇시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짓을 한거냣!!

 

 

내가 가만히 있자, 사실은 동요하고 있어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던 거지만, 코마치가 눈을 크게 뜬다.

 

 

코마치 “……어? 진짜?”


하치만 “…엉? 너 알고 있던 게….”

 

코마치 “농담인 게 당연하잖아! 오빠가 고백 받았다,라니 누구도 생각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다구!!”

 

너무 가혹하잖슴까…. 오빠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데. 이래 봬도 나는 고스펙 이라고.
두뇌 명석(국어 성적 3위), 눈을 감고 미소 지으면 귀공자, 눈을 뜨면 좀비인 나라고!!


………마지막이 무진장 치명적인 거겠지. 이제 나 눈 안 뜰래.


코마치 “오, 오빠가 고백….”


뭐라고 중얼대며 살짝 앞으로 손을 뻗으면서 고개를 숙이는 코마치.
저기요, 코마치씨. 조그마한 가슴이 거진 보이고 있다구요.
그대로 몸을 굽힌 채로 무언가 궁리하고 있는 코마치가 갑자기 얼굴을 든다.

 


코마치 “…코마치, 오빠한테서 졸업, 확실하게 할게.”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나에게 미소를 짓는 코마치.
그런 말 들으면 나도 울 것 같잖아….


하치만 “아니, 안 해도 되. 아니, 하지 마. 나도 여동생한테서 졸업할 생각 없으니까.”

 

코마치 “오빠…”


하치만 “코마치…”

 

남매의 사랑이 한 층 더 강해진 순간이었다.
감동해서 진짜 울어버릴 것 같다….
하지만 코마치는 그 사이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을 하곤 나에게 묻는다.

 

코마치 “…라는 거니까. 오빠! 이야기, 들려줘!”


…하아, 이 녀석도 그 녀석한테 지지 않을 정도로 약았다니까.
내 감동을 돌려 줘. 이 녀석.

 

하치만 “……그래”

이제 이렇게 된 이상 정말로 들을 때까지 비키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포기하곤 승낙했다.

 

그리고 군데군데 생략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제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내가 말하고 있는 동안, 코마치는 호에-라던가, 응응. 하며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끊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내가 이야기를 끝내자, 으-음…하고 소리를 내곤 코마치가 입을 연다.


코마치 “……오빠, 이건 진짜네. 진심으로 오빠를 노리고 있다고, 코마치는 (그렇게) 생각해!”

 

아아, 이미 그건 알고 있는데.
어제 그 녀석이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고, 만약 거짓말이라면 지금 당장[삐----]거다.

 

코마치 “으응-, 하지만-, 들은 이야기만으론, 오빠한테 있어서 여동생 같은 거네? 그건 코마치하고 캐릭터 겹쳐있어서 그건 코마지적으로 그다지 포인트 안 높은데-”


네 포인트 제도는 진짜 잘 모르겠는데.
그리고 캐릭터라는 말 하지마. 코마치는 캐릭터가 아니라 진짜 여동생이니까. 난 여동생 캐릭터 같은 짜가보단 훨씬 더 계속해서 코마치를 사랑하고 있다고!

 

하치만 “……그래서 말이다. 코마치, 상담이---”


여기서 코마치는 손가락을 팟, 하고 내 얼굴 앞에서 내면서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곤 손을 주먹 쥐곤, 집게 손가락만 세워서 칫, 칫, 칫, 하고 말한다.


코마치 “그건 안 돼. 오빠. 코마치는 이제 곧 수험이 있는걸.”


하치만 “그랬, 지…. 미안….”


나는 바본가.
코마치는 조금만 있으면 시험이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 보이지만, 사실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힘든 시기일 것이다. 그런 코마치를 의지하려 하다니, 최악이구나….

 

머릿속에서 자신을 비난하고 있자, 하지만, 하고 코마치가 계속해서 말했다.

 

코마치 “모처럼 이야기 해준 오빠한테, 힌트정도는 줄 게. 좀 전의 이야기라고 하면, 오늘 방과 후에 그 셋 과 이야기 하는 거잖아?”

 

하치만 “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서워서 지릴 것 같지만….”


코마치 “정마알, 이러니까 오레기는. 잘 들어봐? 오늘 그 때가 되면 오빠는 아무말 안 해도 돼!”

 

하치만 “뭐? 무슨 뜻인데?”


코마치 “그저 조용히, 그 3명의 이야기를 잘 들어봐. 그러면 분명히, 조만간 답을 발견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해. 이게 코마치의 힌트얏.”

 

………하나도 모르겠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뭐하고 있으면 되는 건데? 하지만 잇시키가 이야기할 내용은 당연히 어제 있었던 일 일거다. 그리고 나는 당사자고. 반드시 이야기 할 걸 재촉 받을 것이고, 뭐라도 보충하지 않으면 잇시키가 바보 같은 말을 말해버릴 것 같은데….

 

하지만, 코마치의 조언은 언제나 유용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나를 도와주었다. 그렇다면 역시,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내가 궁리를 하고 있자, 코마치가 그리고 말야, 하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코마치 “유이 언니하고 유키노 언니하고는 몇 번이나 만나왔고, 그 회장 언니도 들은 것만 보면 모두 확실하게 오빠의 대답을 기다려 줄 거구, 확실하게 들어 줄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이건 오빠가 혼자서 고민하고, 답을 내야만 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게 말하곤 코마치는 스윽 하고 내 위에서 비켰다. 그리고 그대로 문 쪽으로 걸어간다.

 

하치만 “…코마치?”

 

코마치 “……힘내, 오빠. 코마치도 힘, 낼 테니까…”


말 끝으로 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코마치의 목소리.
돌아보지도 않고, 나에게 작은 등을 보이면서 그렇게 인사하는 코마치는 내방을 뒤로 했다.
나는 그런 코마치의 작은 등에 말을 걸 수가 없었다….


학교에 가려고 할 때에, 이미 내 눈은 썩을 대로 썩어있었지만 거기에 더욱 썩은 게 짙어졌다.
아침부터 어째선지 피곤해…. 어제 피로도 풀리지 않았고, 이 상태로 방과 후에 그 녀석들과….


…싫어, 집에가고 싶어.


하지만 여기서 돌아가지 않는 게, 내 사축 근성이 발휘되고 있는 부분이었다. 이러면 난 일하게 된다면 반드시 사축일거다. 정년을 맞이 할 때까지 사축으로 있을 자신이 있다고.
그래, 나는 절대로 일하지 않을 거다!!! 나는 전업주부가 될 거라고!!

 

머릿속에서 자신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끝냈을 무렵에는 이미 자전거를 주차장에 두고 현관으로 걷고 있었다. 걸으면서도 지금 당장 시간이 멈출 것을, 방과후가 되지 않는 것을 바라고 있자, 뒤에서 쿵하고 등을 가방으로 맞았다.

뒤를 쳐다보자 방긋하고 웃고 있는 유이가하마가 서 있다.
…………우와~, 가능하면 방과후가 될 때까지 만나고 싶지 않은 녀석이랑 빨리도 만나버렸다….

 

유이 “잠깐만, 어째서 그런 싫단 표정 짓는 건데? 모처럼 힛키한테 말 걸어 줬잖아!”

 

딱히 부탁하지도 않았고, 다른 학생들이 여기 볼 테니까 그만 둬.


하치만 “아, 네이네이, 감사합니다. 그럼 전 저쪽방향이라서요.”


유이 “건성이얏?! 라기보단 힛키하구 반 같으니까, 길 안 바뀌거든?”


아니, 그건 다른 학생들이 보면 여러가지로 귀찮으니까(주로 유이가하마가) 따로 따로 가자는 제안 인건데….
그런 생각도 알고 있다는 듯이, 유이가하마는 내 옆에 서서 미소를 지어준다.


유이 “괜찮아. 그러니까, 같이 가자?”


……하아, 나도 유키노시타도 이 녀석의 부탁에는 거절 할 수 없구나.
마지 못해 그래, 라고 대답하자 유이가하마는 만족한 듯한 모습으로 종종걸음으로 걸어갔기에,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고 걷기 시작한 곳에서 유이가하마가 말을 걸어왔다.

 


유키 “힛키, 오늘도 부활동 오는거지?”


하치만 “응? 아, 그야, 가는데….”


뭐지? 갑자기.


유이 “그러네. 안 오면, 안 되는걸.”


하치만 “어? 무슨 뜻인데?”


어쩐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


유이 “중요한 이야기, 가 있는 거지?”


웃는 얼굴로 내 얼굴을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뭐, 뭐냐고? 이 미소가 엄청 무서워….

 

하치만 “아, 어, 응. 그, 근데 어떻게 그걸?”


유이 “오늘 아침에, 코마치한테서 문자 왔었어. 오늘은 오빠한테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까, 들어주세요, 라구말야.”

 

 


코오마아치이이이이이이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지금 당장 위험 해 질 것 같은 전개잖아.
미소를 지우지 않고--------아니 반대로 그게 무서운데-------유이가하마는 계속해서 말했다.

 


유이 “기대하구 있을게! 무슨 이야길지도 무지 궁금하기도(신경 쓰이기도) 하구”


어느 샌가 교실 앞에 도착한 듯해서, 이 정도의 이야기를 하곤 유이가하마는 그럼 나중에! 하면서 안에 있던 미우라에게로 달려갔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본 후, 내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그대로 머리를 쥐었다.

 

……안 되겠어. 유이가하마 진짜 무서워. 뭐랄까 지금이라도 뒤에서 찔릴 것 같은데, 코마치, 무슨 짓을 한거야….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니, 이런 거였나. 섣불리 말했다간 너 죽을 거라는 그런 의미였던 건가….
그렇구나. 난 오늘은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그런 걸 생각하고 있자, 어깨를 통통하고, 두드리는 느낌이 들어, 그 쪽을 쳐다보았다. 거기엔 체육복을 입은 천사가 서 있었다.


토츠카 “안녕, 하치만.”


토오오츠으카아아아아아아아!!!!
어라, 나 방금 오늘은 아무 말도 안 할거라고 정했었잖아.
뭐, 토츠카한테라면 괜찮겠지? 응?

 


하치만 “어, 오늘도 귀여워. 토츠카”

 

토츠카 “안 돼! 난 남자야 하치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아인. 여장남자를 잘 못 말한 거겠지.

 


토츠카 “…? 하치만, 무슨 일 있었어?”

 

하치만 “아, 아니 그런 거 없는데? 왜…?”

 


토츠카 “으응-, 왠지 기운 없어 보였으니까. 아니라면 다행이야! 하지만 또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상담 해줘. 나도 하치만의 도움이 되고 싶으니까”

 

 

평생 내 옆에서 나를 지지해줘, 하고 말하려다가 멈췄다. 뭔가 불쾌한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주로 에비나주위에서, 라기보단 에비나한테서)

토츠카는 나중에 봐, 하고 손을 흔들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하아, 토츠카 최고…하고 여운에 젖어 있자, 익숙한 얼굴이 교실에 들어온다. 카와야마? 카와카미? 암튼 카와어쩌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조금 수줍은 듯이 고개를 돌리는 카와어쩌구씨.

 

 


카와고에 “…안녕.”


카와시마가 인사해온다. 미안한데, 카와나카, 난 오늘은 누구와도 말하지 않기로 정했는데. 아, 토츠카는 예외니까.
그래서 꾸벅, 하고 고개만 끄덕이곤 얼굴을 피했다.
아니, 그게 저기 봐 보라고. 왠지 유이가하마가 노려보기 시작했고 말이지….


그러자, 콰악, 하고 어깨를 잡힌다. 그대로 카와사키는(아, 카와사키다, 뭐 알고있었지만) 내 앞에서 서성이더니, 번뜩하고 쏘아본다.

 


사키 “야, 인사 했으니까 똑바로 대답해”

 

으-응, 어쩌지. 이 녀석이 이런 식으로 내 앞에 와 있으니까 유이가하마의 시선이 한층 더 강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자, 카와사키는 어째선지 조금 눈물을 흘린다. ……귀여워.
응, 이건 예상치 못했어.

 

 

하치만 “미안미안, 조금 생각할게 있어서”

 

사키 “……그럼 괜찮아. 너 말야, 뭔가 생각하고 있거나 하는 적 많았고….”

 


단순하구나. 이 녀석.
휙 하고 고개를 돌린 카와사키였지만 조금, 입가가 올라가 있다.
그런 거 하지마. 왠지 의식해버려서 고백하곤 차이는 것까지 떠올랐다고.


그대로 카와사키도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후우, 위험해 위험해. 카와사키루트를 골라서 유이가하마한테 살해당할 뻔 했다고.


이런저런 일로 오늘 내 학교 생활은 딱히 별로 입을 열 이유 없이 끝났다.
라고 말하면 마치 내가 평소에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평소에도 말은 그다지 하지 않고, 떠들 상대가 없으니까 난 거의 말하는 일 없이 학교생활을 마치고 있다.
……어이, 어떻게 된거냐고. 내 청춘이 잘 시작되고 있지 않는 것 같은데…….

시간이라고 하는건 잔인하다.
귀찮은 수업 시간에는 느릿느릿하게 흘러가는 주제에, 싫은 일------예를 들면 중간, 기말고사라던가, 이 이후에 봉사부에 가는 거라던가-----이 임박해있으면 엄청나게 빨리 흐른다.
뭐, 실제론 자신의 뇌로 느끼는 방법에 따라 다를 테니까, 잔인한 것은 시간이라고 하기 보단 내 머릿속이다.

 

 

마지막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교재라던가 이런걸 정리하고 허겁지겁 교실을 뒤로 한다. 발걸음은 무겁지만, 언제까지나 교실에 남아 이야기 할 상대가 없다는 것과, 유이가하마와 같이 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 생각에서, 서둘러 걸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봉사부 앞이다.
드르륵 하고, 소리를 내며 안에 들어가자 이미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와서 독서를 하고 있었다.
내가 온 것을 알곤, 유키노시타는 고개를 든다.

 

유키노 “어머, 오늘은 빨리 왔구나. 빨리가야. 아마 반에서 이야기 할 상대가 없어서 그랬던 거겠지만.”

 


하치만 “씨꺼. 너야말로 어떻게 된 거냐.”

 

유키노 “무슨 뜻이니?”

 

하치만 “넌 언제나 나보다 빨리 오잖아. 난 언제나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실을 나오는데도, 나보다 빨리 온다는 건 이상해. 어차피 너야말로 이야기 할 상대가 없는 교실에 있기 힘들어서 전력으로 뛰어서 여기 오는 거지?”

 


유키노시타가 전력으로 달려서 여기까지 오는 모습을 생각하니, 무진장 불가사의해서 터져버릴 것 같다.


내 말에 하아, 하고 한숨을 토하며 관자놀이를 좁히는 유키노시타.

 

유키노 “뛰어서 올 리가 없잖니. 그저 네 다리가 연약한 게 아니니? 그리고 유감이지만, 난 교실에서 나올 때 반 애들이 제대로 인사 해 준단다. 다만, 일부러 멈춰 서서 잡담을 하는 건 서투르긴 하지만서도.”

 


큭, 이게 외모, 성적 모두 1등을 하는 자와 외모도 성적도 특별한 게 없고 근성이 썩어있는 자의 차이인가….


유키노 “그건 그렇고 히키가야. 오늘은 나와 유이가하마에게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하던 거 같은데….”

 

 

……코마치나 유이가하마한테 들었던 거냐.
아무래도 상관없지. 이걸로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어, 하지만 유이가하마가 안 오는건----”

 

그거하고 잇시키도. 애초에 그 녀석이 꺼낸 이야기이고.
내 말을 가로막으며 봉사부 문이 열린다. 얏하로! 하며 기운차게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는 유이가하마.
타이밍 좋은데.
그리고 유이가하마 뒤에서 빼꼼히 잇시키가 얼굴을 내밀었다.

 

 


이로하 “들어갈게요.”

 

유키노 “잇시키? 의뢰인거니? 미안하지만 오늘은------”

 

유이 “아닌 것 같아. 유키농”

 

유키노 “………무슨 일이니?”

 


이로하 “아-, 그게요, 오늘 이야기 할 게 있는 건 선배가 아니라 저라고..하는 거에요-.”

 

 

 


아아, 결국 이 때가 와 버렸다.

 

유이가하마와 잇시키가 오고 나서 벌써 15분이나 지났지만, 누구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내 옆에 앉아 있는 잇시키는 이 침묵이 거북한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다.
유키노시타도 얼굴은 정면을 향해 있지만,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위험한 건 이 녀석이다.
그래, 유이가하마다.
무표정으로 가만히 내 얼굴을 보고 있는 거지만, 너무 무서워서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생긋이 웃어주지만, 그 미소는 위험해.
평소에는 바보에다 시끄러운 유이가하마이기에, 그 변화는 굉장한 게 있다.

 

 


모두 모인 후, 모두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지만, 당연히 잇시키의 자리가 없었기에 교실 뒤에 쌓여있는 의자를 가지고 와서 내 옆에 앉았다.
그 행동을 유키노시타도, 유이가하마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 후로 이 침묵을 깬 건 불과 5분이 지난 후의, 드르륵 하며 열린 문이었다. 잘 하고 있냐-?하며 들어온 히라츠카 선생님이었지만, 우리들이 아무 말 없이 책상을 둘러싸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는,

 

시즈카 “미안, 실례했군.”

 


하고만 말하곤, 교실 문을 닫고 허둥대며 돌아갔다.
응. 나라도 그렇게 할 것 같다. 이 공기는 몸에 독이라고…. 그래서 지금 당장 나도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그 후로도 침묵은 이어져, 지금에 이른다.
아무도 말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그야 말로 냉전이다…….

 


그 후로부터 다시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오래 앉아있어서 지친 유키노시타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곤 입을 열었다.

 


유키노 “잇시키, 이제 말해주지 않겠니? 가만히 있기만 해선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이야기가 있다며 온 건 너잖니?”

 


응, 역시 유키노시타다.
말투에 약간의 짜증 섞인게 보이지만, 차근히 잇시키를 설득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재촉하는 게 무엇보다도 유키노시타 유키노답다.

 

 

 

이로하 “아, 네, 그러네요-, 죄송해요.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는 계기를 얻어 말하려고 하는 잇시키의 말을 유이가하마가 가로막았다.

 

 

유이 “기다려. 유키농. 그럼 안돼. 이럴 때엔 이로하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 이로하도 여기서 유키농한테 기대려고 하지 말구, 자기 스스로 이야기가 있어서 온 거니까, 자신이 확실하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 해.”

 

 

이로하 “그, 그러네요-. 죄송해요.”

 

유키노 “그, 그렇구나. 미안해.”

 

 


유, 유키노시타가 솔직하게 사과하고 있다고….
유이가하마가 말한 건 무척이나 정론이지만, 그 유키노시타를 일갈하는 게, 엄청나.
유이가하마는 의외로 보육사나 교사 같은 게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또다시 찾아온 침묵.
잇시키가 유이가하마에게 잘못된걸 지적 받곤, 침울해졌기 때문이다.
하아, 이래선 이야기가 조금도 시작되지 않는다고….

 

 

하치만 “유이가하마, 네 의견은 정론이기도 하고 중요하지만, 지금은 이야기를 진행하는 게 먼저잖아? 설교라면 다음에 하도록 해.”

 

 

유이 “그, 그치만!! …………힛키 바보…………어째서 이로하 편드는 거야……….”

 

 

 

뭔가 중얼대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미안해. 유이가하마.


하치만 “잇시키도 자, 확실하게 말 해. 아님 내가 대신 말해줄까?”


내가 귓속말을 하자 잇시키는, 아뇨 저 스스로 할 수 있어요! 하며 말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로하 “그럼, 재차 말씀 드리는 거지만, 두 분께 할 이야기가 있어요!”

 

잇시키의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뭐라고 중얼대고 있던 유이가하마도, 시선을 내려놓고 있던 유키노시타도 고개를 들곤 똑바로 잇시키를 본다.


두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는걸 확인하자, 잇시키는 후웁하고 숨을 들이쉬곤, 눈을 크게 떴다.

 

 

 


이로하 “사실은 어제요, 선배한테 고백, 해버렸습니닷!”

 

유키노 “……네?”


유이 “………어?”


………잇시키씨, 좀 전까지 냉전이었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수소폭탄을 떨어뜨리는 건데…. 푸틴도 깜짝 놀라 넘어질 거라고….

 

두 사람 모두 굳어져 있는데, 이윽고 유키노시타가 이마에 손을 대고 잇시키에게 묻는다.


유키노 “잇시키,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아니, 잘 못 들은 거길 바라지만, 이 남자한테 고백했다고 말을 한 거니?”

 

이로하 “네, 그 말 대로에요.”

 

유키노 “그건 그러니까, 저기………, 잇시키는 히키가야를, 조, 좋, 좋아한다고 봐도 되는 건가요?”


어째서 존댓말을 하고 있는 건가요 유키노시타씨….

 

이로하 “그러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있잖아요-. 당연히 Like가 아니라 Love의 의미라구요?”

 

유키노 “   ”

 

말을 꺼낸 걸로 결심을 했는지, 또 다시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당당히 대답하는 잇시키.
듣고 있는 내가 더 부끄러워서 위험하다.
그런 잇시키에 아연실색해서 이마를 두 손으로 받치는 유키노시타.

 

그 때였다.

 

드르르륵하고 미안하다는 듯이 교실 덧문이 열린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어째선지 발걸음 소리만이 멀어져간다.
야, 문 열고 도망가는 거냐…?
모두가 그쪽에 의아한 시선을 보내고 있자, 멀어지던 발소리가 사라지고, 반대로 점점 다가오고 있다. 한걸음 한걸음이 쿵, 쿵 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고 있다.


설마….


싫은 예감은 정말이지 잘 맞는 법이다. 그 발소리의 주인은 문 2,3 미터 전부터 목소리를 낸다.

 

 

자이모쿠자 “도와줘요, 하치에------몽!!!”

 


기세 좋게 뛰어 들어온 자이모쿠자.
그대로 내 곁으로 달려오려고 했지만, 아무리 자이모쿠자라고 해도 교실 안의 분위기를 감지 한 듯, 어랏?하고 계속해서 이상한 소리를 울리고 있다.

 

자이모쿠자 “…………이건 대체 어찌 된 일이오…? 우린 아직 마계를 빠져나가지 못한 거군?”


뭔지 모르겠는 설정을 입에 담는 자이모쿠자.
그런 자이모쿠자를 보고 잇시키는 질려있지만,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는 달랐다.

 

 

유키노 “…지금은 상대해줄 시간이 없어. 솔직히 말해서 방해야.”


유이 “미안하지만 나가줄래?”

 

이젠 쓰래기를 보는 둣한 무표정으로 자이모쿠자를 보는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
자이모쿠자를 쳐다보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응. 이건 어쩔 수 없네. 뭐, 자이모쿠자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렇다기 보단 울고 있는 자이모쿠자라니 기분 나쁠 뿐이고.


그러자 입을 삐죽이며 말을 내뱉는 자이모쿠자. 그러니까 기분 나쁘다고.

 

 

자이모쿠자 “믿고 있었는데…. 이곳의 주민만큼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몸을 신경 써 줄 거라고 믿었는데…. 잘 못 봤다. 하치마마아아아아안!!!”

 


나냐….

 

자이모쿠자 “이런 3차원 여자 따위에 정신을 빼앗겨 있----”

 

유이 “돌아가”

 

자이모쿠자 “네, 실례했습니다.”

 


야, 설정 사라졌다고.
그대로 자이모쿠자는 정말로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인사를 하곤 교실을 떠났다.
그리고 유이가하마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에 자물쇠를 건다.

 

자이모쿠자를 단 한마디로 일갈하고 돌아가게 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서는 나를 보면서 싱긋, 미소를 지어주는 유이가하마는 지금 당장이라도 몸에서 화염이 일 것 같다.


바라건대, 이능 배틀은 일상계에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교실 안에서, 누구나 다 유이가하마의 이 미소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정말 무섭고도 강한 건 유키노시타보다도 유이가하마 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라스트 보스 같은 느낌이 장난이 아냐!
잇시키도 유키노시타도 완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나도 눈을 옆으로 살짝 피했다.

 

 

유이 “왜 눈을 피하는 거야 힛키?”

 


어깨가 움찔하고, 올라가버린다.
아, 위험하다. 진짜 지릴 것 같아….
웃는 얼굴로 말하고 있는 유이가하마지만 목소리가 서늘하게 식어있다.

 


하치만 “아니, 이건, 그게….”

 

 


유이가하마 “무슨 캥기는 거라두 있어 힛키?”

 


그 말 끝마다 힛키하고 끝내는 거 그만 둬.
유키-하고 말하는 것 같아서 무서워. 넌 가사이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그 사람도 죽여버리는 첫 번째 세계에서 온 광란의 여자야?

 

여기선 화제 전환이다.


하치만 “아, 아니-, 유이가하마가 캥긴다던가 하는 단어를 알고 있다니 놀랐어.”


유이 “말 돌리지 마. 뭐라두 나.한.테. 숨기고 싶은 거라도 있는 거야?”


무리였다. 숨기고 싶은 것은 제 자신의 몸이에요.


이로하 “저기, 유이 선배, 지금 할 말이 있는 건 선배가 아니라, 저니까요, 그게----”


잇시키한테서 구조선이 온다.
고마워 잇시키!
하지만 그건 유이가하마한텐 달궈진 화로에 물, 아니 불에다 기름을 부어 버린 것 같은 눈으로 번뜩, 하고 잇시키를 사로잡는다.

 


유이 “어째서 둘이서 감싸 주는 거야?”

 

이로하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요오….”

 


잇시키는 유이가하마의 눈빛에 위축되어 다시 추욱, 하고 고개를 숙인다.

 

 

유이 “…이미 두 사람은, 사귀고 있는 거야………?”

 

 

매우 작고, 지금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소리가, 분명하게 교실 안에 울려 퍼졌다.
좀 전까지 시선을 내리고 있던 유키노시타도 천천히 고개를 들고 나와 잇시키를 본다.
잇시키도 고개를 든다. 그 눈에는 약간 눈물이 고여 있고, 그녀의 입은 묘하게 떨고 있었다.

 


이로하 “아직, 듣지 못했어요. 대답은.”

 


말과 동시에, 한 방울의 눈물이 잇시키의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이것만큼은, 내 안에 아주 조금 남아있는 양심이 무척이나 아팠다.

그녀, 잇시키 이로하는 오늘,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여기에 발을 들여 놓은 걸까?
어떤 생각으로 나와 얼굴을 마주보는 걸까?
어떤 의도로 내 옆에 앉아있는 걸까?
어떤 감정으로 나와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의 말을 듣고 있었던 걸까?
그녀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그래, 울고 있었던 거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해주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대하고 있는 바로 옆에서, 울고 있는 소녀를 방치 한 채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한테서 눈을 돌리는 방법 밖엔,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나 자신이 싫어진다….
이런저런 변명을 만들곤, 사람의 마음에서 도망치고, 사람의 마음을 찢어발긴다.

잔인했던 건 누구? 하야마? 세상? 아니.
하야마가 잔인한 건 자신에게 다가오는 녀석들한테 그럴 뿐이다.
세상이 잔인한 건 대중에 대해서다.
세상이 잔인한 건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서다.

 


하지만 여긴 다르다.

 

 

 

이 공간에서, 그녀, 그녀들에게 가장 잔인한 건 다름 아닌, 나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유키노시타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유이가하마가, 잇시키의 눈물이, 그 사실을 완벽하게 입증하고 있다.

 

 

 

유키노 “어떻게 된 일이니?”


하치만 “그건….”


유키노 시타의 시선에 위축돼서, 생각지도 못하게 할 말을 하지 못했다.


여기서, 여기서 만약, 여기 봉사부에 있는, 너희들을 생각해서, 하고 말하면 이 녀석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내가 대답을 할 수 없는 게 자신 때문이라는 게 되어버리면, 좋은 기분으로 있을 수 있는 녀석 따윈, 없을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자, 잇시키가 눈물을 소매로 닦으면서 해답을 던진다.

 


이로하 “그건 유키노시타 선배와 유이 선배를 생각해서 그래요.”

 

 

말해버렸다고, 이 여자애.
우려했던 대로, 유키노시타의 미간이 꾸욱하고 움직인다.


유키노 “우리들을 생각해서…? 그거야 말로 무슨 뜻이니? 설마 우리들을 네 마음대로 형편에 알맞은 이유로라도 사용했다는 거니? 그렇다면 진심으로 유감스럽지만.”


이로하 “그건 아니에요.”


유키노 “뭐가 아닌거니? 히키가야. 너, 우리들을 애물단지라고 생각했던 거구나?”


이로하 “아니에요! 선배는 그런 걸-----


유키노 “잇시키. 너에게 묻고 있는 게 아니야. 나는 지금, 히키가야에게 묻고 있는 거야. 그래서, 어떠니?”

 

유키노시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아아, 이런 때에 난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방금, 유키노시타의 말을 듣고, 한순간에 퍼즐이 풀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그게, 해답이었어….

 

눈물을 흘리며 나를 올려다보는 잇시키.
나에게 핑계는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는 유키노시타.
조금 전부터 침묵하고만 있는 유이가하마.

 

 

이 얼마나 심한 상황이냐.
나는 이런 공간을 원했던 게 아니야. 그것만은, 유일하게, 확실한 나의 진실된 마음이다.

 


지금의 나에게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답은 Yes이다.
이것이 내가 그녀들에게 돌려주는 대답이다.

 


정말이지 싫어지는데.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 그런 끔찍한 일을 한 순간에 생각해버리다니.

 

 

하지만 보였다.
현상을 바꿀 수 있는 마법의 시나리오가.
그렇다면 그걸 따를 수 밖엔 없다.
왜냐하면, 나는---------------------------

 

 

 

 

하치만 “…그 말대로야.”

 

 


----------------------- 이런 방법 밖엔, 모르니까.

 

이로하 “잠깐만요, 선배?!”


잇시키가 경악하며 나를 보고 있고, 유키노시타는 눈을 부릅뜨며 위협해 오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을 순 없다.

 


하치만 “이제서야 이 말을 할 수 있을 때가 온 거군. 미안해. 잇시키. 사실은 나 말야. 어제, 답은 나와 있었어.”

 

이로하 “…에?”


하치만 “네가 내일 봉사부서 넷이서 함께 이야기 해요, 하고 말했을 때부터 대략적으로 말이지. 확실하게 답이 나왔던 건 그 후에 돌아가는 길이었어.”

 

유키노 “너, 무슨…?”

 


좀 전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진 유키노시타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아, 하고 크게 한숨을 쉬곤 난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하치만 “알고 있잖냐. 유키노시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런 관계를 원했던 건 너잖아?”


유키노 “그, 그건….”


하치만 “하아, 그러니까 말야, 어떠냐고, 좀 전에 네가 말했잖아. 너희들을 이용했다는 거다. 너희들을 이유로. 잇시키를 찬다고 하는 내 형편에 알맞은 이유로.”

 


유키노 “넌, 넌 또 그렇게….”


하치만 “또? 무슨 말인데 유키노시타? 아, 그렇군. 또 내 멋대로 자기희생인지 뭔지 하고 말하고 싶은 거냐? 그건 아냐.”


유키노 “………뭐가 아니라는 거니?”


하치만 “그런 거라면 마치 내가 뭔가를 지키기 위해 악당이 되는 것 같이 들리는데”


유키노 “아니라고 할거니? 너는 지금, 여기서 악당이 되는 걸로 상황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고 보이는데”

 

하치만 “아닌데. 그건 내가 잇시키를 차고 싶지 않을 때, 성립 되는 거지. 만약 내가 잇시키를 진심으로 민폐라고 생각하고, 이후 어떠한 관련도 없을 정도로 차버리고 싶다고 한다면 어떠냐? 모든 게 반대로 되지?”

 


유키노 “그, 그건…. 하지만 실제로 지금까지 너는….”


하치만 “어, 그래. 그건 인정해. 자기 희생이라던가 하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난 지금까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뭐든지 해 왔어. 나 자신이 더러운 역할을 하는 게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이거야 말로, 필살, 자신의 오류를 굳이 인정함으로써 그 뒤의 이야기에 설득력을 지니게 한다!다.
길구나….

 

 

하치만 “하지만 이번엔 달라. 진심으로 잇시키를 귀찮고, 민폐라고 생각하고 있어. 요 며칠 매일 쇼핑엔 끌려가지, 어제는 고백하고 찼더니 울어대고, 바보처럼 물고 늘어져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를 끝없이 듣고는, 집에 도착하니 23가 넘었었다고? 고심한 게 아냐. 난 나 자신의 시간을 뺏기는 게 싫은 거라고.”

 


잇시키를 살짝 바라보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것 힘껏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어제부터 이 녀석을 울리기만 하고 있구나.

 


하치만 “그래서 너희들을 이용했어. 하지만 상관없잖아? 그야 우리들은, 그런 일에 깨지지 않는 그런, 진실된 것이 될 수 있었으니까.”

 

 

유키노시타의 눈에 순식간에 힘이 어린다.
하지만 난 그 눈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내가 진심임을 전하기 위해.

 

 

유키노 “네 말대로, 나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강한 관계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렇지만 그건 나의 오만이었던 것 같구나. 네가 원했던 게 이런 것이었다곤 생각지도 못했어. 그런 관계라면 거절할게.”

 

 

유키노시타가 말을 다 할 때까지 난 충분히 여유를 두었다.


하치만 “……그러냐. 그럼 이제 끝이네. ……돌아갈게.”


나는 책상 위에 있는 가방을 손에 들고 돌아가려고 했다.
이걸로 끝이나. 유키노시타도, 유이가하마도, 잇시키도 이렇게 까지 말한 나를 경멸하겠지. 난 떳떳하게 악인이 된 셈이다.
손에 넣은 진실된 것을 놓더라도, 나는, 이 녀석들만은 지키고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잇시키를 슬쩍 본다.

 


하치만 “그런 거니까, 너에 대한 내 대답은 No다. 이 이후로 일절, 나한테 말 걸지 마라.”


그리고 걷기 시작 한 후, 문 앞에서 멈춘다.

 


하치만 “그럼. 이제 여긴 안 올 거니까. 너희 두 사람과의 진실된 건, ㅆ------”


내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까지 걸어온다.
유이가하마다.
그 눈동자는 젖어있었지만, 다부진 눈빛으로 날 노려본다.

 

 

 

짝!!!

 

 


교실 안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키노시타도, 잇시키도 놀라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맞은 나도 놀라서 유이가하마를 본다.
따귀를 맞은 왼쪽 뺨은 싸하게 아프다.
좀 전까지의 눈빛과는 다르게, 유이가하마는 방긋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오늘 봤던 무서운 미소가 아니라, 태양처럼 밝아서, 눈이 부시다.

 

유이 “안돼. 진실된 것, 진실된 것 하고 그렇게 말하면, 힛키가 그 때 말했던 진실된 건, 그렇게 아무렇게나 말해도 되는 게 아냐. 그러니까. 이건 그 벌.”


내가 그저 멍하니 서있자, 이번에는 유키노시타 근처까지 걸어간다.

 

짝!


나보다 부드럽긴 하지만, 그래도 유키노시타의 뺨을 때리는 유이가하마. 유키노시타는 맞은 뺨을 한손으로 누르면서, 완전히 혼란스런 상태가 되었다.

 

유키노 “유, 유이가하마, 어? 이건, 그러니까…, 어라?”


유이 “이건 힛키가 말하고 있는 게 본심이 아니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힛키의 말에 일부러 그렇게 반응한 유키농에게 주는 벌.”

 

그리고 이번엔 잇시키한테.
고개를 들고 있는 잇시키의 뺨을 똑같이 때리는 유이가하마.


유이 “이로하한테는 여자로써의 질투. 그러니까 이로하도 날 때려.”

 

조금 망설이고 있던 잇시키였지만, 유이가하마의 뺨을 때린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 상황은 머지?


유이가하마는 뺨을 맞은 후, 날 향해 빙글, 하고 돌아본다.

 

유이 “에헤헤, 역시 아프구나. 미안해 힛키, 유키농, 이로하. 그렇지만 나, 이게 힛키가 그 때 말한 진실된 것이라구 생각해.”

 

유이가하마의 눈에는 무척이나 강하고도, 따듯한 힘이 들어있다. 그 눈동자에서 눈을 뗄 수 없다. 고요함으로 뒤덮혀 있던 교실에, 유이가하마의 목소리가 맑게 개인다.


유이 “나 말야, 오늘, 침착할 수 없었어. 오늘 아침에 코마치한테서 문자가 와선, 힛키 어제 밤에 늦게 돌아왔다고 하구, 그런 힛키한테서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적혀있었으니까, 계속 답답했었어. 아침부터 힛키, 사이나 사키사키하구 이야기 할 땐 평소랑 다름없는데, 내가 말 걸면 딴청피우거나 엄청나게 긴장하구…, 여기 와서 이야기 들으니까 이로하가 고백했다고 말하는걸.”


순식간에 유이가하마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점차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하지만 그녀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눈 속에 켜진 따듯한 불을, 눈물이 끌 수 는 없었던 것 같다.

 

유이 “너무해 힛키. 여름 축제 때에 내 말은 안 들어줬으면서, 그게, 난 침착하게 있을 수 없는 걸. 힛키가 확실하게 들어줬으면 했던, 힛키한테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라고 말하며 그녀는 계속해서 말한다.

 

 

유이 “그래도 기뻤어. 힛키, 이로하한테 아직 대답하지 못했다는 걸 들어서, 우리들을 확실하게 생각해주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서, 기뻤어. 그게, 그 말에 거짓말은 절대로 없는걸! 힛키가 나하구 유키농을 정말 소중하게 대해주고 있다는 건 우리들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힛키한테서 받은 진실된 것, 아직까지도 느끼구 있는걸!”

 

유이가하마의 말에 어째선지 내 시야가 흐려진다. 눈에서 흘러내릴 것 같은 내 마음을 필사적으로 참는다.

 


유이 “나라도, 유키농이라도, 또 힛키가 혼자서 다 짊어지려구 하는 거, 눈치챈다구. 우리들하고 힛키는, 이어져있잖아? 그건 이로하도 같은 거야. 힛키가, 사실은 힛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으니까, 분명, 이로하도 힛키를 좋아하게 된 거야.”

 


눈을 감는 유이가하마.
그 얼굴은 무엇보다도 깨끗하고, 덧없고, 따듯하다.
눈을 감은 채 유이가하마는 그러니까, 하고 덧붙인다.

 


유이 “대답해줘. 힛키. 이로하의 말을 듣고, 진실된 마음에, 진실된 마음으로 대답해줘. 이게, 이게, 이번의 봉사부에서의, 답변이야.”

 


생긋이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유이가하마.
슬쩍 유키노시타를 보자, 유키노시타도 눈시울이 젖어있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랬다. 난 이미 이어져있었던 거였다.
이 녀석들과.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하고, 유이가하마가 가져온 과자를 먹으면서 유키노시타가 타주는 홍차를 마시며, 때로는 부딪치고, 실수하고, 하지만 그로 인해 더욱 강하게 이어진다.
이러니 저러니 했어도, 사실은 깨닫지 못했었다.

 

 

 

 

 

우리들은, 이미, 진실된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유이가하만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고 다시 유이가하마는 나에게 상냥한 시선을 보내온다.

 


유이 “힛키, 힛키가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그게 진심이라면 우리들은 변하지 않아. 앞으로도 쭈욱 함께 있을 거야.”

 


유이가하마가 말을 마치자, 유키노시타도 눈에 고인 눈물을 손으로 닦고는, 나에게 따듯한 미소를 보내온다.

 

 


유키노 “진심으로 유감이지만, 유이가하마가 말한 대로야. 우리들은 너 때문에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잖니.”

 

하치만 “………아아”


두 사람에게서 등이 떠밀려서야, 나는 드디어 결심을 했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에, 나는 지켜지고 있었어….
두 사람의 말을 확고하게 가슴에 새기고, 잇시키를 쳐다 본다.

 


하치만 “잇시키, 좀 전엔 미안. 그, 너만 괜찮다면----”

 

이로하 “괜찮은 게 당연하잖아요. 어제도 말했지만요, 무슨 말을 하셔도 전 선배가 좋으니까요.”


잇시키의 말에 유이가하마가 우와-, 우와-하면서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부끄러워하고 있다.
야, 좀 전까지의 너하고 괴리감이 심하잖아! 그보다, 네가 이 상황을 만들었잖냐. 그런 반응 하면 본인들은 괜히 부끄러워지니까 그만 둬. 진짜로….
잇시키도 유이가하마의 반응에 귀 끝까지 새빨갛게 물들어져 있다.

 

 


하치만 “그, 그래…. 그렇지만 너한텐 어제부터 심한 말 해서 몇 번이나 울려버렸고….”


내 말에 잇시키의 눈을 꿈뻑인다.
얼굴은 여전히 붉다.


이로하 “아뇨, 제가 좀 전에 울고 있었던 건, 선배한테 심한 말을 들어서가 아니에요.”

 

하치만 “……어?”

 

이로하 “제가 좀 전에 울어버린 건요, 그게, ………자기 스스로 운 이유를 말하는 것도 부끄럽네요…. 그냥 선배의 상상에 맡길게요.”

 

하치만 “어, 어어….”


이로하 “………그래서요 선배, 선배의 진실한 대답은 뭔가요? 이제 대답은 정한 건가요?”


하치만 “그건, 그게….”

 

대답…………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아니, 그 뭐냐, 잇시키는 귀엽잖아?
확실히 내숭떨고 있긴 하지만 내 앞에선 그게 들켰다는걸 알면서도 다가오지, 속이 시커먼 것 처럼 보여도 사실은 순진한 소녀라는 것도 저번에 하야마 한테 고백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고.
애초에 동생 같았고, 코마치한텐 법적으로 손을 대는 게 불가능하지만 그걸 잇시키한테는 할 수 있----어어어엇, 이 이상 생각하는 건 그만 두자.
그건 그렇다고 치고, 잇시키와 사귄다고 해서 나한테 나쁜 건 없다고 생각된다.
그게, 잇시키와 있는 시간은 대체로 재밌는데다, 뭐랄까 편안하고….

 

하지만, 그게 좋아한다, 고 하는 감정인지는 모르겠다.
응? 어라? 좋아한다는 게 뭐지?

 


내가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져있자, 유이가하마가 입을 연다.

 


유이 “힛키는 이로하를, 싫어해?”

 

그렇게 물어보는 건, 치사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잇시키를 싫어한다고 한들, 역시 싫어한다, 고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확실하게 싫어.라고 말할 수 있는 상대는 자이모쿠자 정도일 거라고.

 


하치만 “………싫지는, 않아.”


유이 “그치만 조금은, 의식하고 있는 거지?”

 

하치만 “조, 조금은, 말야….”


내 대답에 잇시키가 눈을 반짝인다. 아니, 이 이야기의 흐름은 완전히 불가항력이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기대하고 있는 듯한 얼굴 하지 마.

 

 


유이 “그러니까, 힛키는 자신의 속마음이 이로하를 Love라는 감정으로 좋아하는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거네?”


하치만 “……어.”


이런 모습은 역시나 유이가하마답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 좋다. 하지만 그 해결책은 찾을 수 없었던 것 같아서, 그 이후로 으음-하면서 궁리하기 시작했다.
잇시키도 내가 대답하기를 머뭇거리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유키노 “사귀어 보는 게 어떻겠니?”

 

 

조금 전까지 턱에 손가락을 대고 궁리하고 있던 유키노시타가 입을 열었다.
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 녀석은?

 

유이 “그거야!”

 

하치만 “그게 아니지. 난 잇시키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모르겠다니까.”

 

 

유이 “그러니까 그거라구! 게다가 힛키가 모르겠는 건 이로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가 아니라, 좋아한다는 게 뭔지 모르는 거잖아?”


유키노 “그렇구나. 뭐, 어느 쪽이든 지금 여기서 즉시 답을 내는 건 지금까지 해온 논의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걸지도 모르겠구나.”

 

하치만 “그,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나하고 사귀어 봤자 잇시키만 괴로울 뿐이잖냐.”


유키노 “그건 네가 정할 게 아니라 잇시키가 정하는 거란다.”


그렇게 말하곤 유키노시타는 잇시키한테로 시선을 옮긴다. 나도 유이가마하도 그 시선을 쫓는다.

 

 


이로하 “그러니까요, 제가 선배하고 가짜 연인이 돼서요, 선배를 돌아보게 만들면 된다는 거죠?”


유키노 “그런 이야기가 되는 거겠구나.”

 

잇시키는 흐으음-…. 하고 조금 신중히 고민한다.
하지만 답이 나오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이로하 “그렇게 하기로 해요!”


하치만 “그래도 괜찮겠냐? 그래도 만약 내가 널 찬다면 어떡할 건데?”

 

이로하 “그 때는 그 때 구욧! 하지만 아직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네요. 그러니까요 선배. 잘 부탁 드려요.”

 

 

이걸로 정말로 된 걸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게다가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기회라고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잇시키가 그렇게 하자고 하는 거니까, 난 그걸 거절 할 수는 없는 거다.
그렇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키노 “그렇게 정했다면,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자.”

 

하치만 “그렇긴 하지만 아직 시간 남아있잖아?”

 


유이 “지금 당장 눈 앞에서 알콩대는 모습 봐도 곤란하기도 하구,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자.”

 

유키노 “부장이 끝이라고 말했으면 끝이란다. 난 문을 잠그고 갈 테니까, 먼저 가 주겠니?”

 

유이 “나도 문 잠그는 거 도와줄게. 유키농!”

 


겨울이니까 창문은 열려있지 않다.
그렇기에 두 사람씩이나 문을 닫을 필요 없잖냐, 하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하치만 “……알았어. 그럼, 내일 보자. 가자, 잇시키.”

 


이로하 “헷? 아, 네에. 잠깐만요, 기다려 주세요. 선배애-”

 


잇시키가 타타타탓 발소리를 내며 뒤에 따라 온다.
그리고 그 상태로 봉사부를 뒤로했다.


분명히 그녀들은 둘이서 문을 닫는(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내 인생도 주위의 공간이나 사람도, 내 주관만으로 결정된다. 그래서 그녀들이 앞으로 어떤 창문을 닫을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고, 알 권리도 없다. 다만, 그건 둘이서 닫는 창문인 것이다.

 

 


그렇기에 마음속으로, 살며시 읊조린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라고.

 

 


유이가하마한테 맞은 뺨은 아직까지 따듯했다.

 

봉사부를 나와서 현관에서 신발로 갈아 신고 주차해 둔 자전거를 가지고 하굣길에 오른다. 최종하교시간까진 아직 시간이 있기에, 교문 근처에 사람의 그림자는 거의 없었다. 교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자 잇시키가 온다.

 

 


하치만 “오늘은 쇼핑, 안 해도 되냐?”

 


이로하 “네, 그렇다고 할까요, 진짜로 매일매일 사고 싶은 게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거에요?”

 

하치만 “엉?”

 


무슨 뜻이지? 그럼 이때까지 해왔던 쇼핑은 뭐였는데?
잇시키는 하아, 하고 큰 한숨을 토해내며 이어 말한다.

 


이로하 “이래서 선배는 곤란하다니까요. 아무리 여고생이라도 매일 쇼핑하러는 안 가는걸요-. 돈도 들구, 귀찮기도 하구요-”

 

하치만 “그래서?”

 


이로하 “………되도록이면 선배랑 같이 있고 싶어서, 매일 조금씩 사서 같이 가는 날을 늘렸던 거에요.”

 

 

하치만 “흐-응”

 

이로하 “잠, 그 반응은 좀 심하지 않아요?!”

 

 

옆에서 내 팔을 토닥토닥 때린다.
우와아, 약았어.
하지만 실제론 두근대버렸다.
그만 해. 진지하게 여자한테서 그런 말 들어 본 적 없으니까, 내성은 하나도 없다고.

 

 

이로하 “그래서요 선배, 오늘은 여기까지면 되요. 왠지 어제오늘은 여러 가지 일이 너무 많아서 머릿속이 복잡해져 버려서요, 오늘은 생각도 정리할 겸 혼자서 돌아가고 싶어요.”

 


하치만 “………그래. 그럼 조심해서 가라.”

 

 

네엣, 하고 대답하며 잇시키는 터벅터벅 걸어갔다. 솔직히 혼자서 돌려보내는 건 불안했지만 여기선 그녀의 의견을 존중해야만 하겠지.
멀리서 잇시키가 손을 흔든다. 나도 손을 약간 들어 대답해 주곤, 발길을 돌려서 집으로 가는 길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 겨울의 추위는 자전거를 타고 있으니 한 층 더 세게 느껴진다. 코트, 장갑, 머플러를 두르고 있지만, 무방비 상태의 귀를 에는 바람이 이젠 아프다고 생각된다.

 

 

잇시키의 말처럼, 나도 머릿속은 아직 혼란스럽다.
하지만 왠지 마음 속은 상쾌해(Clear)졌다.
거기엔 따듯하고도 든든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단지 오늘 있었던 유이가하마의 말만이 몇 번이나 혼란스러운 머릿속에서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차가운 바람이 눈에 들어가자 눈물이 나온다.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골목을 바람을 맞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갔다.
바람 때문에 나오는 눈물이,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내 몸을 따듯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집에 도착했을 무렵엔 눈물은 그쳐있었다.
이상하네. 집에 도착할 때까진 찬바람을 맞고 있었을 텐데….

 


나는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집안은 조용했다. 하지만 거실 문을 연 순간,
와악!!! 하고 코마치가 모서리에서 튀어 나왔다.
살짝 쫄기는 했지만, 곧장 코마치 이마에다 춉을 날린다.

 

코마치 “DV(가정 폭력)! 이건 DV라고 하는 거라구! 얼마 전에 보건 수업에서 배웠는걸! 코마치는 오빠한테 DV당했-----”

 

 

떠들어 대는 코마치한테 이번엔 좀 더 쌔게 이마에 딱콩을 날린다.


코마치 “아퍼~~~ 으으, 오빠가 코마치를 괴롭혀요. 이건 유키노 언니한테 연락을 해야겠어!”

 

 

뒤돌아서 서서 핸드폰을 꺼내는 코마치의 뒷통수에다 다시 춉을 날린다.

 


코마치 “웃, 우우, 왜 암말도 안하고 아프게만 하는 거야 오빠? 그런 취미인 거야? 아빠한테도 맞은 적 없는 데에!”

 

하치만 “그런 취미 없어. 그저 너한텐 설교가 필요 할 뿐이니까. 그리고 네가 아버지 부르면 분명히 자살 해 버릴 거니까 그만 둬”

 

코마치 “설교?”

 

 

왜?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코마치.
으으으응. 하고 자신이 뭘 했는지 조금 생각에 잠긴 듯 하지만 전혀 짐작가는 게 없는 것 같다.

 


하치만 “너, 어제 내가 늦게 들어온 것까지 유이가하마하고 유키노시타한테 알려줬지?”

 


코마치 “아니야! 그거 알려준 건 유이가하마 언니뿐인데! 유키노 언니한테 말하면 그 자리에서 경찰에 연락 할 것 같았으니까 말 안 했어. 아, 코마치는 이 얼마나 오빠를 생각하는 좋은 여동----”

 


다시 춉.

 


하치만 “바보. 유이가하마한테도 말 하지 마. 덕분에 오늘 유이가하마는 비스트 아웃을 넘어서 비스트 오버하고 있었다. 나, 오늘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너야 말로 DV잖아.”

 


코마치 “풋, 오빠야 말로 바보야. DV는 몸에 상처를 입히는걸 말하는 건데?”

 

하치만 “너야말로 바보네. DV는 정신적인 폭력도 포함돼.”

 

코마치 “거짓말?!”

 


나야말로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다고. 얼마 전에 배운 내용을 벌써 잊어버리다니, 수험생으로써 괜찮은지 오빠 걱정되는데.

 


코마치 “뭐,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긴 한데, 어땠어? 올바르게 대답 할 수 있었어?”

 

DV의 범위는 아무래도 괜찮지만 네 기억력은 아무래도 괜찮은 게 아니라고.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아차, 하며 고개를 돌리는 코마치.
하지만 오요? 하면서 곧장 고개를 든다.

 


코마치 “그럼, 어째서 이렇게 빨리 온 거야? 분명히 그렇다면 꽤나 암흑세계가 되어 있던 게 아냐?”

 


하치만 “…확실히 내 대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봉사부로서의 답은 나왔으니까.”

 

코마치 “응? 무슨 말이야?”

 

하치만 “이런 내 이야기보단 하다 만 공부는 어떤데? 좀 전까지 하고 있었잖아?”

 

코타츠 위에는 공부도구가 널부러져 있다.
하치만 코마치는 괜찮아. 괜찮아. 하며 손을 흔들며 내 이야기를 재촉한다.
…………………괜찮냐. 진짜로….

 

 


코마치 “이야기 전부 듣지 않으면, 신경 쓰여서 공부에 집중이 안되니까. 그러니까 이야기 해줘. 오빠.”

 

 

하아, 하며 한숨을 내쉬고 가방을 근처에 두곤 코타츠 안으로 들어간다. 코마치도 내 뒤를 따라서 넓지도 않은 코타츠인데도 코마치는 내 옆으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어깨와 어깨가 딱 달라붙자 으히힛하며 미소를 짓는다.


……………절대로 아무에게도 안 줄 거다. 절대로.


자신의 맘 속에서 마음을 다 잡고, 한번 헛기침을 한다.
그리고 나서 오늘 있었던 일을 대충 말한다.
그 동안에 코마치는 조용히, 가만히 듣고 있었다.

 

 

코마치 “이러니까 오레긴….”

 


내가 말을 마치자, 코마치는 이마에 손을 대고 이런이런, 하면서 고개를 젓는다.
그 포즈 유키노시타 같으니까 그만 둬.
그 상태로 코마치가 말한다.

 

 

코마치 “처음에, 코마치가 말 했잖아? 그 때가 되면 조용히 듣고만 있으면 된다구.”

 


하치만 “싫어. 그게 나한테 당연히 물어볼 거잖아? 그리고 아무도 이야기 하려고 안 했고, 그보다 어째서 가만히 듣고만 있으면 되는 건데? 난 전혀 그렇게 생각되진 않았는데….”

 


코마치 “이-러-니-까-아- 오레기는, 오레기라고 불리는 거라구!”

 

아니, 너만 그렇게 말하거든….

 


코마치 “처음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언젠간 누군가가 입을 열겠지. 그 후로 오빠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됐어. 그렇게 했으면 모두 오빠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누구랄 것도 없이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오빠는 그 동안 모두의 의견을 들으면서 생각하고, 끝에는 답이 나와있었다. 라는 느낌으로 됐을 거라고 생각해. 코마치적으로.”

 


하치만 “아니, 그렇게 잘 될 리가 없잖아. 잇시키는 뭐, 그거고, 유키노시타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거라 곤 생각할 수 없고, 오늘 유이가하마는 버서커였다고? 그런 식으론 안 됐을거다.”

 

이번에는 코마치가 말한 대로 하지 않았던 게 정답이었어. 하며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자, 코마치는 깊은 함숨을 쉬고는 먼 곳을 바라본다.

 

 

코마치 “오빠, 얼마만큼 유이 언니하고 유키노 언니하고 같이 지내왔는데? 코마치 보다도 훨씬 더 오래 있었으면서. 진심으로 그런 말 하는 거라면 코마치적으로 포인트 낮아.”

 


하치만 “저기 말이다------”

 


코마치 “유이 언니도 유키노 언니도 엄청나게 알기 쉬운 사람이라구. 오히려 그렇게까지 알기 쉬운 사람도 없을 거라고 보는데----, 아 그렇구나! 오빤 좀처럼 다른 사람들과 관계되지 않으니까 그런 거 모르는 거구나. 미안해 오빠.”

 


하치만 “야, 그만. 그런 동정 섞인 눈. 그리고 나는 사람을 보는 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천리안이라고 불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내가 말을 하자 코마치는 아-그래그래. 하며 귀찮다는 듯이 말한다. ………너무해…….
하지만, 하며 이번엔 ☆-(ゝω・)v같은 말투로 말한다.

 


코마치 “임시(가짜), 라고는 하지만 여친을 만들다니! 코마치적으로 포인트 높아! 그대로 사귀고 결혼까지 해 버렷!”

 

하치만 “바보. 이야기가 너무 앞섰잖아.”

 


그렇게 말하곤 옆에 있는 코마치의 머리를 토닥인다.
정말이지, 왜 이리 리얼충들은 연애 = 결혼 같은 생각을 하냐고. 그러니까 헤어지고 나서 힘든 거라고. 뭐냐고, 일부러 메일 주소마저 여친이나 남친 이름 넣고 뒤에 Fam@~같은 건. 너희들 아직 가족이 아니니까 적당히들 하라고! 하지만 그 덕에 메일 주소 교환 할 적에 그런 거 적혀있으면 웃어 댈 수 있으니까 말이야. 뭐, 아무한테도 메일 주소 교환하자는 말 따윈 없지만서도.


그보다 리얼충이라니, 코마친 내 동생인데도 리얼충인거야?
………카와사키 타이신가. 담음에 만나면 순식간에 죽여주마. 그렇게나 귀여운 동생도 있으면서, 그런 주제에 코마치한테도 손을 댄다고? 그냥 둘 순 없지. 그 죽어 마땅한 녀석!

마음 속으로 증오의 불꽃을 태우며 사륜안을 개안하고 있자, 옆에 있던 코마치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리를 비켜주려고 한다.
그런 내등에 코마치가 오빠, 하고 상냥하게 말을 건다.

 

 

코마치 “힘, 냈구나. 코마치적으로 포인트, 높아.”

 


하치만 “…………씨꺼”

 

 


나는 그대로 그 곳을 뒤로했다.
돌아왔을 때부터 코마치의 눈가가 붉었던 걸, 나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그 날, 오랜만에 빨리 저녁밥을 먹고, 지금은 목욕을 하고 나서 침 대 위다.


뭐냐고, 오늘은…. 긴 듯하면서도 짧은 하루였다.
우선, 오늘 가장 중요한 건, 그건 나한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거다.

 

 


…………뭐, 가짜긴 하지만. 다행이다. 소꿉친구가 없어서. 아수라장이 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미 그 이상의 공포를 느낀 것 같지만.

 


하지만 정말이지 그 두 사람한테는 거역 할 수 없다니까.
유이가하마와의 약속, 데스티니 랜드, 언젠가 가까운 시일 내로 확실히 다녀오자.
유키노시타는 부탁이라도 들어주자, 가능한 범위에서 말이지…. 라고 했다간 여기서 뛰어 내려주지 않겠니? 하고 말할 것 같은데 그 녀석. 아니,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서도!!

 


그런 걸 생각하고 있는 동안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어제 오늘 일로, 정말로 피곤했으니까----.

다음 날 아침.
시계를 보니 벌써 8시 근처였다. 지각이 결정 된 순간이다.
어제 21시 이후의 기억이 없다. 거진 11시간이나 자버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거 거의 반나절이나 잤다는 거군.

 

 

겨울 아침 저녁의 쌀쌀함은 역시나, 하고 말할 정도다.
덕분에 이불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서 깨닫고 보면 이불에서 몇 시간씩이나 꿈틀대고 있었다거나 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이틀 연속으로 피곤한 나날을 보냈기에 오늘은 왠지 꽤나 마음이 편안한 하루였다.
뭐, 확실하게 지각이었기에 히라츠카 선생님의 라스트 블릿은 당연한 것이었고, 어제의 일도 있었기에 유이가하마가 말을 걸어오거나 해도 왠지 부끄럽기도 하고 했지만….

 

 

동아리도 별 탈 없이 끝나고,
벌써 집에 도착 한 지금.

 


……………………이상하다.
……………………어제 이야긴 거짓말 이었던 건가?
……………………확실히 어제, 가짜(임시)긴 해도 나와 잇시키는 사귀기로 한 게 아니었나?
확실히 가짜(임시) 관계지만, 오늘은 잇시키의 모습이 한번도 보이지 않았다고….
감기라도 걸려서 쉬고 있는 건가.

 

 

 

거실 코타츠에서 MAX커피를 마시며 행복한 한 때를 음미하면서 고민하고 있자, 휴대폰의 진동 소리가 울렸다.
장황하고도 현란한 이름이 표시 된다.
뭐야, 스팸인가?

 

 

……………저녁 밥을 먹고, 목욕을 한 후에 내 방으로 올라간다.
후우, 하고 의자에 앉자 휴대폰의 진동 소리가 다시 울린다. 이번에는 쓸데없이 길다. 휴대폰을 보자 유이가하마로부터의 전화였다.

 


유이 “정말이지 힛키!! 왜 메일 답장 안 해주는 거야?!”

 

통화버튼을 누르자 마자 갑자기 유이가하마가 큰 소리로 소리친다.
아, 그 메일 이 녀석이 보냈던 건가. 스팸인 줄 알았다고. 뭐, 알고 있었지만.

 


하치만 “………현재, 이 전화는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피-하는 소리 이후에----”

 

유이 “사용되지 않는데 자동 응답기능 있는거야?!”


…………앗, 실수.

 

하치만 “그래서 뭔데, 할 말 없으면 끊을게.”


유이 “너무해?! 진짜아! 힛키 바보! 심술 부리지 마!”

 

하치만 “미안…. 그래서 무슨 일이야?”

 

 

유이 “아, 저기, 오늘 이로하 쉬었잖아?”

 

하치만 “아니, 모르는데….”

 

유이 “그래서 말야-----, 뭐?! 혹시 힛키 이로하의 메일 주소라던가 모르는 거야?!”

 

 


이 녀석, 진짜 목소리 크다니까. 10cm 정도 떨어지는 게 잘 들리는데.


하치만 “그런데, 별 문젠 없잖아. 그래서 뭔데.”

 

유이 “그거 문제 많거든…. 일단은 사귀고 있는 거잖아? 암튼 그래서 말야, 이로하 감기 걸린 것 같아. 그래서 내일 토욜이기도 하구, 문안 가 주는 게 어때?”

 

 

하치만 “…………아니 됐어. 어짜피 저쪽 부모님도 계실거고.”

 

유이 “내일은 낮부터는 안 계신다고 해. 그러니까 가 줘. 힛키.”

 

 


꼭 가야 해! 하고 말하곤 유이가하마는 전화를 끊었다.
거의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고선 끊어버렸다고 그 녀석….
진짜? 내일 안 가면 안 되는 거야?


아니, 문젠 그게 아냐.
분명히, 얼굴 마주보게 되면 어색해져서 아무 말도 못하게 돼버려. 그 녀석은 괜찮더라도 내가 괜찮지 않다.
아니, 진짜로 문제는 그걸까….

 

 

 

이런 저런 일이 있어 날은 밝아, 지금은 잇시키네 집 앞이다.
집 앞에서 나 같은 눈이 썩은 사람이 서 있어도 수상한 사람으로 보일게 뻔하므로, 각오를 하고 인터폰을 눌렀다.

 


이로하 “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잇시키가 인터폰을 받는다.


하치만 “나다.”

 

이로하 “엇?! 서, 서서서서서선뱃…콜록 콜록…!”

 


손님이 나였던 게 꽤나 놀란 것 같아서, 콜록대고 있는 잇시키.
잠시 동안 콜록대고 있었지만 진정된 듯, 지금 열게요. 하고 인터폰을 끊었다.

 

조심 조심 열린 문 앞에는 파자마 차림으로 이마에 해열 시트를 붙인 잇시키가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콜록대고 있었기 때문인지 약간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이로하 “그,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선배?”

 

하치만 “네가 감기 걸렸다고 문병 가보래서, 유이가하마가. 자.”

 

그렇게 말하고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구입한 젤리라던가 포카리 같은 걸 담아 둔 봉지를 건네 준다. 전해야 할 건 전했다. 전해 들은 대로 병문안도 왔다. 응.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했다고.

 

 

하치만 “그럼 가 볼게. 몸 조심해. 그럼 안ㄴ-”

 

이로하 “어? 네? 잠시만요! 간다뇨, 집에 가신다는 거에요?”

 


하치만 “………괜찮냐 너. 간다고 하면 그거 말곤 없잖아. GO HOME이다. 아직 열 있잖냐. 자 둬. 그럼 안ㄴ”

 


이로하 “그러니까 잠시만 있어보시라니까요! 어, 어째서요? 어째서 돌아가는 거에요? 선배. 그거 이상하지 않아요?”

 

 

하치만 “아니, 이상한 건 너겠지. 난 유이가하마한테서 전해 들은 대로 착실하게 병문안 왔어. 코마치한테 들은 대로 감기 걸렸을 때 있으면 좋을 것 같은 것도 사서 확실히 전했어. 완벽(Perfect)하다. 임무에 실수한 건 하나도 없어. 나도 떳떳하게 닌자의 반열에 올랐다고. 그리고 임무를 수행했다면 집으로(My Home)돌아가는 게 보통이잖아. 그러니까 돌아가는 거지. 우리 집에.”

 


이로하 “그, 그러네요. 확실히 이상한 건 저였네요. 감사드려요. 선배도 조심해서 가세요.”

 

 

하치만 “어, 그럼 안녕.”

 


그렇게 말하며 나는 현관에서 나와 등 뒤로 손을 뻗어 문을 닫고, 후우, 하고 한숨을 쉬고 걷기 시작했다-----------.

잇시키네 현관에서 세 걸음 정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옮겼을 때, 힘차게 현관이 열리고 안에서 잇시키가 튀어 나온다.

 

 


이로하 “----------라뇨, 이상하지 않아요 선ㅂ, 콜록 콜록!!”

 

또 큰 소리로 말하려다 숨이 막힌 잇시키.
조금 진정한 후에, 호흡을 정돈 하고 이번에는 숨막히지 않도록 천천히, 조근조근 말하고 있다.


이로하 “선배, 보통은 병문안 온 거면 간병까지 하는 게 상식이거든요?”


하치만 “뭐? 그런 리얼충같은 걸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그보다 그런 상식 모르는데. 그럼 안ㄴ”

 

이로하 “아아-, 선배 때문에 밖에 뛰어 나와서 감기 심해 질 것 같은데요-. 혼자선 밥도 못 먹을 것 같구요-. 하아, 어쩌죠-. 누군가 간병 해주지 않을려나요-.”

 


우와앗 귀찮아아!
무심결에 한숨이 나온다. 잇시키는 그런 나를 보면서 눈을 빛낸다.

 

 

하치만 “………알았다고. 조금만이야.”

 

이로하 “네엣! 감사합니다아- 선뱃!”

 

에헤헤헤~ 하고 웃는 잇시키한테 끌려서 잇시키네 집안으로, 그리고 그대로 잇시키의 방으로 안내 받았다.

 

흐음, 조금 이런 저런 게 나와있긴 해도 비교적 깨끗한 방이다. 결벽증도 아니기에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잇시키한테 재촉되어 카펫 위의 방석에 앉았다. 잇시킨 탈싹하고 침대에 앉았다.

 

하치만 “………감기 걸렸으니까 침대 안에 들어가있어.”

 

이로하 “………침대에 누워있는 저를 덮치실려구요? 아직 조금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 무리에요. 죄송해요.”

 

하치만 “아니 안 하거든. 마음의 준비도 안 해도 되니까.”

 

이로하 “그건 그거대로 쇼크라구 할까요-, 뭐, 확실히 선배는 평소에 유키노시타 선배나 유이가하마 선배하고 같이 있으니까 눈이 높아져있다고 생각하지만서도요-”

 

 

뭐냐고 이 녀석, 덮쳤으면 하는 거야? 역시 말랑 포근이라곤 해도 빗치긴 빗치다.
아니, 리얼충은 이런 연기 같은 걸 말하는 게 익숙할 것이다. 놀리고 있는 거겠지.
안됐구나. 잇시키. 난 그런 수엔 넘어가지 않는다고. 후후후후후후, 하, 하하하핫-!!

 

 

하치만 “바보 같은 말 하지 말고 얼렁 자. 진짜로 이래서 감기 도지면 장난으로 끝나지 않으니까.”

 


이로하 “알았어요-”

 

부-부- 하면서도 이불을 돌돌 말아 덮는 잇시키.
좋아. 이걸로 간병도 임무 완수구나. 집에 가자.

 

 

이로하 “선배”

 

돌아가려고 일어 선 나에게 잇시키가 말을 건다.
왜? 하고 대답하자 잇시키는 이불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이로하 “에? 잠, 어째서 가려고 하시는 거에요?!”

 

하치만 “어? 널 재웠으니까, 간병 종료잖아. 그래서 가려고---”

 


이로하 “바보에요? 선배 바보인 거에요? 간병이라고 하면 오늘 부모님께서 돌아 오실 때까지 에요.”

 

하치만 “야, 잠깐만. 농담이지? 네 부모님께선 언제 집에 오시는데?”

 

 

이로하 “빠르면 내일 점심쯤 일려나요-”

 

하치만 “뭐……라고……. 그보다 그거 오늘만이 아니잖아. 거절하마. 하다 못해 네가 말한 것처럼 오늘까지만. 내가 최대한 양보해서 거기까지다.”

 

이로하 “……………………”

 


으음~ 하고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는 잇시키.
아니 생각을 해야 할 것도 아니잖아.
내일까지라고 하는 건, 그건 오늘 난 여기서 자고 간다는 거잖아? 무리다. 정신적으로 무리.

 

 

이로하 “알았다구요-. 그렇게 해요. 그 대신에, 오늘은 선배, 제 말 잘 들어주셔야 해요.”

 

하치만 “……………윤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내가 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하아, 귀찮고, 최악이다….

 

이로하 “그럼 선배, 전 조금 피곤해서요, 잘게요.”

 

잇시키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이불을 덮었지만, 잠시 그러다가 얼굴을 내밀곤 이쪽을 빤히 바라본다.
왠지 뺨이 붉은데….

 

 

이로하 “저기, 선배. 저, 잘 거에요?”

 

하치만 “어? 그런 거 보면 알아. 잘 자.”

 

이로하 “엣, 아, 아뇨, 진짜 잘 건데요…?”

 

하치만 “어. 자라니까. 감기 걸렸잖아. 약속했으니까 이제 와서 돌아간다던가 안 해.”

 

이로하 “그, 그게 아니라요-…. 하아, 이래선 공략 힘들겠네요오-….”

 

뭔가 중얼중얼 말하고 있지만, 다시 이쪽을 보는 잇시키.
어쩐지 아까보다도 얼굴이 더 빨갛다….

 


이로하 “…그럼, 잠 들 때까지 머리 쓰다듬어 주세요.”

 

우우, 하며 코까지 이불을 덮고는 잇시키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위험해. 이성이라는 이름의 씨앗이 터져버릴 것 같다고….

 


하치만 “거절하마.”

 

이로하 “엣? 어째서요!”

 

하치만 “전에도 말했지만, 그건 여동생 전용 커맨드니까. 그러니까 무리다.”

 

이로하 “가, 가짜긴 하지만 전 선배의 여자친구인데요?! 그 정도는 해주셔도 되잖아요~”

 

 

바보. 그 단어를 입에 담지 마라고. 의식해버리니까. 진짜로 그만둬 주세요.

 

이로하 “우우, 여친인데도 여동생보다 취급이 아래야…. 하다못해 동등하게 대해주셔도….”

 

하치만 “가짜(임시)니까. 그걸론 아직 나의 코마치를 향한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건 불가능해.”

 

그렇게 말하곤 침대에 앉아서 잇시키의 이마에 손을 얹는다.
후우, 긴장되네…!!

 


이로하 “진짜 기분 나쁜 시스콘인데요-. 그렇지만 이걸로 봐 줄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잇시키는 살며시 눈을 감는다.

 


이로하 “자고 있는 동안에 이상한 거, 하시면 안돼요?”

 

하치만 “안 해.”

 

이로하 “맘대로 돌아가셔도 안돼요?”

 

하치만 “안 돌아가.”

 

이로하 “제가 일어날 때까지 손 때시면 안돼요?”

 

하치만 “……노력할게.”

 

이로하 “………계속, 계속 곁에 있어 주셔야 해요?”

 

하치만 “………네가 일어날 때까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자 후훗, 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잇시키는 잠이 들었다.

 

 

문득 정신이 들자 방안은 꽤나 어두워져 있었다. 방안의 시계를 확인하니 이미 시간은 17시를 지나고 있었다.
결국 나도 그 뒤로 잠들어 버린 것 같지만, 역시 나답다. 침대에 눕지 않고, 앉은 채로 벽에 기댄 채 자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부분이 나를 리얼충과 완전히 차별화 할 수 있는 부분인 거겠지. 아무튼 그런 거 안 해도 성격으로도 종족값으로도 난 완전히 안되니까. 게다가 아무리 적을 쓰러뜨려도 노력치는 오르지 않는다.

 


내 불쌍한 포켓몬 속성을 뇌에서 확인 한 후, 잇시키가 있는 곳을 본다.
아직 쌔근 쌔근 숨소리를 내며 주무시고 계신다.
아무래도 나는 내 손을 아까부터 잇시키의 이마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잇시키의 열이 확실하게 전해져 온다.
…………라는 건 안 되잖아. 꽤나 뜨겁고. 열 올라있잖아.
…………나 때문인건가…?

생각에 잠겨있자 잇시키가 뒤척인다. 조금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고 있기에, 그걸 살짝 떼어준다.
…………이런 상황은 2차원에서 밖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약간 얼굴에 땀도 흐르고 있으니까 수건으로 닦아 주자. 수건을 찾아봐야만 하겠네….
하는 김에 죽 정도는 만들어 둬야겠는데.

 

 

그 후에 잇시키네 목욕탕에 가서 수건을 가져와, 거실에 있는 냉장고 안에서 얼음을 넣고, 그걸 잇시키의 머리에 올려둔다.
다른 사람 집의 물건을 마음대로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지만, 어쩔 수 없잖아. 하고 생각하곤 결론지었다.


다음은 죽이다.

 

코마치 “-------응. 거기서 소금 조금 넣어 둬. 감기에 걸리면 염분을 원하게 된다고 하니까. 응. 그럼 다음엔-----”

 

 


죽 같은 건 집에서 만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코마치를 의지했다. 전화로 만드는 법을 들으면서 부지런히 손을 움직인다.

 


하치만 “미안해. 코마치 방해해서.”

 

 

코마치 “오요? 으으응, 하나도 방해 아냐, 오빠! 오히려 그렇게 오빠가 회장 언니하고 사랑을 키워줘서 코마치적으로 포인트 높앗!”

 

하치만 “안 키워. 단지 약속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코마치 “또 수줍어하기인-, 요고요고, 하지만 똑 부러지게 간병해 줘야 해? 필요하면 오늘은 집에 돌아오지 않아도 되니까.”

 

하치만 “……바보. 아무리 그래도 자고 갈 순 없잖아. 그렇다기 보단 그랬다간 내일 아침 프리큐어 못 보고.”

 

이리저리 죽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툭, 하고 잇시키의 방에서 둔탁한 소리가 난다.

 


하치만 “미안, 일단 끊을게.”

 


코마치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고 잇시키의 방으로 향한다.
방문을 열자 잇시키가 카펫 위에서 엎드린 채로 늘어져있다.

 


잇시키…라고 하기 보단 이불 덩어리가 뭉기적 뭉기적 움직인다.

…………호러냐고.
우선은 불을 켜고 말을 걸어보자, 이불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하치만 “………뭐 하는 건데”

 

이로하 “서언…배애?”

 

하치만 “뭘 잠꼬대하고 있냐. 자, 어서 침대위로 돌아가.”

 

내가 바로 옆까지 다가가자 잇시키가 와락하며 안길려고 했지만, 반사적으로 그걸 피한다.
당연히 잇시키는 꽈당, 하고 바닥에 얼굴부터 떨어졌다.
…………피하지만 안았다면 여고생과 껴안을 수 있었는데!! 자신의 반사신경(대인용)이 미워지고 있다고!!

 


이로하 “왜 피하시는 거에욧?! 모처럼 이렇게 귀여운 후배, 가----허라?”

 


갑자기 일어서려고 한 잇시키의 몸이 휘청하고 비틀댄다.
깨달았을 때엔 내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어서 잇시키의 손을 쥐곤, 앞으로 당기면서 뒤로 몸을 돌렸다.
당연히 엉덩방아를 찧는 듯한 모습으로, 그리고 잇시키의 아래에 깔리게 된다.

 

 


하치만 “아퍼….”

 

이로하 “죄, 죄송해요 선뱃!”

 

하치만 “……그러니까 침대서 자라고 했잖아. 너 스스론 알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너 꽤나 열이 올라있으니까. 얌전하게 그렇게 해.”

 

이로하 “죄, 죄송해요…….”

 

하치만 “……됐으니까 빨리 거기서 비켜.”

 

 

아직까지도 잇시키는 나한테 껴안겨있는 듯이 보이는, 그런 모습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잇시키는 어째선지 입을 다물곤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하치만 “………잇시키? 어서 거길-----”

 

이로하 “조, 조조조금만요! 조금 만 더 이대로 있어주세요. 선배”

 

하치만 “뭐? 무슨 소릴 하는 건데? 빨리 비켜.”

 

 

아니 진짜로 빨리 비키라고. 빨리 안 비켜주면 또 하나의 나라고 하는 파트너(아이보)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버릴 것 같잖냐!!

음. 문병하러 와서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이거다.
하지만 나는 에로 게임이나 미연시의 주인공이 아니다. 이런 꿈 같은 상황이 생겨도 ToLove하는 건 일어나지 않는다고 리토선생님 바보오오오오!!!

내가 그렇게 말해도 잇시키는 완고하게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이면서도 조금씩 뒤로 체중을, 실어 온다.
아니 그런 거 안 해도 되니까. 그러니까 제발 비켜 줘워어어어어어어!!
………하아, 이렇게 된 이상, 필살기를 사용해야만 하는 건가.

 

 

 

 


하치만 “……무거우니까 비켜 줘.”

 


이로하 “------무겁?!?!”

 


잇시키는 뛰어 오르는 것처럼 나에게서 떨어져 침대 구석까지 올라가선 얼굴만 내밀고 이불을 돌돌 만다.
어때? 봤냐? 이게 내 필살기다.
이거라면 레오나 리리도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다.

 

 

하치만 “미안. 농담이야. 사실은 공기처럼 가벼웠으니까 안심해.”

 


이로하 “농담이라도 그 건 절대로 여자한테 해선 안 되는 말이에요! 그리고 공기보다 가벼운 건 선배의 존재잖아요.”

 

하치만 “야, 너, 그건 농담이라도 진심으로도 나한테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에요?”

 

이로하 “………아앗, 선배 때문에 또 열이 올라버린 것 같아요….”

 

하치만 “거 봐. 거기 앉아있지 말고 얼렁 누워.”

 

이로하 “네에….”

 


잇시키는 불만스런 얼굴을 하면서도 누웠다.
나도 그걸 보면서 일어섰다.

내가 방에서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잇시키가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침대의 빈 공간을 팡팡하고 두드린다.
………뭐지?
내가 생각하고 있자 다시 같은 방식으로 두드리는 잇시키.
흠, 아무래도 오라는 뜻인 것 같다.
내가 옆에까지 가자 또 그 곳을 두드린다.
………? 앉으라는 건가?
내가 거기에 앉자마자 잇시키가 말을 꺼낸다.

 


이로하 “진짜아! 몇 번이나 해야 아시는 거에요-? 보통 팡팡 하고 치면 여기 와서 앉으라는 의미잖아요?”

 

하치만 “아니, 몰라. 난 외톨이니까 그런 리얼충들만의 제스쳐를 해도, 전해지지 않아.”

 


그렇다고 할까 그런 제스쳐를 몇 번이나 하는 것보다 말로 하는 게 일반적으로 빠르잖아. 어째서 리얼충들은 이런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소비하는 걸 좋아하는 거지?

 

 

하치만 “그래서 왜?”

 

이로하 “선배야 말로 어디 가실 생각이에요? 설마 집 안을 뒤적이시면서 제 팬티 같은 거 찾고 있으셨나요?”

 


하치만 “설마 그럴 리가. 그보다 네 팬티를 찾는 거라면 이 방을 찾아보는 게 빠르잖아.”

 

이로하 “확실히 그렇네요………. 앗! 그럼 엄마…꺼요?”

 

하치만 “바보냐. 그런 취미 없거든. 네가 배고파졌을 때를 위해 죽 만들고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호에? 하며 약삭빠르게 눈을 깜빡이면서 이번에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다.

 


이로하 “ㄸ, 또 그렇게 호감도를 마구 올리실 생각이신 거에요?! 치사하지만요, 그래도 안 되욧! 선배는 약속을 어겼으니까요-.”

 

하치만 “아니, 지켰는데. 착실하게 간병하고 있잖아.”

 

이로하 “아뇨! 어겼어요! 그게 제가 일어날 때까지 곁에 있어주지 않으셨잖아요-.”

 

하치만 “아니 그건 어쩔 수 없잖아. 너, 열이 오르고 있던 것 같았으니까. 수건에 얼음 넣어서--------”

 

이로하 “어, 어째서 제가 열이 오르고 있던걸 아셨던 거에요? 설마 제 몸을 만진 건가요? 자고 있는 여자애의 몸을 만지다니 최악이에요. 정말로 무리에요. 그만두세요.”

 

하치만 “아니, 네가 말했잖아. 계속 손 올려 두라고. 이건 무죄다. 난 나쁘지 않아. 오히려 감사를 받아도 될 정돈데.”

 

이로하 “그건, 저기-----죄송해요. 감사합니다….”

 


잇시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선 뭔가가 푸슛-하고 소리가 날 만큼 얼굴이 빨개져서는 코까지 이불을 덮는다.
하지 마. 그런 반응 하지 마라고. 나까지 부끄러워지니까 진짜로 하지 마.
여기선 화제를 바꾸지 않으면 부끄러워서 위험 해.

 

하치만 “너, 너야말로 어쩌다 침대에서 떨어진 건데”

 

이로하 “그건 말이에요……. 그게…. 일어났더니 선배가 없어서… 선배가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해서요……찾으러 가려고 생각해서……라고 할까요, 뭐라고 할까요….”

 


하치만 “어, 어어. 그래…….”

 

이로하 “네에……….”

 


뭐하고 있냐고 난!!!!!
제일 향해선 안 될 방향으로 벡터를 반사시켜 버렸다고. 이래가지곤 벡터의 원점에 대해 대칭 이동이군. 잘 모르겠지만 벡터의 일차 변환을 사용해서…젠자아아앙!! 수학 수업을 안 듣고 있으니까 전혀 모르겠어!!
소수라니 뭐냐고. 1은 포함되지 않는다니 왜 그런 건데!! 1외의 약수가 없는 수! 알아버렸잖아.
그럼 자연수는 뭔가요? 아기가 자연스럽게 셀 수 있는 숫자? 그럼 0도 포함되는 거잖앗?!
정말이지 수학은 X군! 단지 극한이라고 하는 건 멋있었다. 리미트는 또 뭐냐고. 중2의 영혼이 불타오르잖아..

 


아무튼 수학에 대한 분노로 평정심을 되찾았어.
진짜 이과 녀석들 무서워.
뭐냐고 오늘의 기온은 340m/s인가, 라니 ℃로 말하라고!!
후우, 진정하는 데엔 이게 최고군.

 

 

이로하 “선배? 저-교, 서언-배, 서-언-배-앳”

 


뭐라고 말하고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나의 분노는 이런 게 아니라고?
………이런 거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얼굴에서 불이 날 것 같다. 뭐냐고 이 귀여운 생물은!!!

 


하치만 “나, 난 이제 그만 쥬훅, 죽 상태 보고 올게. 계란 낳아버리면 그렇잖아.”

 

이로하 “에? 아, 네에…. 응? 계란? 낳아…?”

 

 

엄청나게 동요하고 있구나. 나.
머릿속이 새하얗다. 존재도 새하얀데도.
어라? 난 어디에 있는 거야?
아무튼 침대에서 일어나자, 잇시키가 소매를 꾹하고 당긴다.

 


하치만 “왜, 왜에?”

 

이로하 “그, 그게요. 선배. 저기………화, 화장실, 데려다 주세요.”

 

아니, 혼자서 가. 라고 말하려다가 관뒀다. 이 녀석 휘청댔잖아.
내가 부끄러움을 버리면 되는 이야기다.
어라? 어떻게 데려가지?

 


하치만 “어, 어어. 알았어. 그럼 어깨 부축 해 줄 테니까 걸을 수 있겠어?”

 

이로하 “어째서 그런 뜨거운 남자의 청춘 같은 거 해야만 하는 거에욧. ……어부바….”

 

하치만 “뭐?”

 

이로하 “그, 그러니까요! 어부바, 해, 주세요….”

 

 

 

 

뭐라고?!
큭!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내 청춘 시절!

 

 

하치만 “……알았어.”

 

 

하치만 “……자, 팔 걸쳐.”

 

이로하 “ㄴ, 네에.”


다시 침대에 앉아서 자세를 약간 낮추자 잇시키의 팔이 어깨부터 목에까지 부드럽게 걸쳐진다. 그리고 잇시키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무릎을 꿇곤 나한테 밀착한다.
젠장, 어째서 서로 옷을 입고 있는데도 이렇게나 부드럽고 따듯하냐고!

 

 

하치만 “……그럼, 꽉 잡고 있어.”

 

이로하 “네….”

 

 

 

그대로 앞으로 일어서서, 잇시키의 허벅지 뒤로 손을 옮긴다.
부드러워!!!
그대로 방을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일정한 리듬으로 잇시키의 날숨이 목에 닿는다.  그 때마다 온 몸에 스륵,하고 전류가 흐른다. 지금이라면 지브리 안이라도 적응 할 수 있을지도.
화장실 문을 열고 뒤 돌아서서, 잇시키를 내려놓는다.

 


이로하 “저기, 선배”

 

하치만 “응?”

 

이로하 “가능한 멀리 가 주세요. 부를 때까지 다가오시면 안돼요?”

 

하치만 “알고 있어.”

 

이로하 “다행이야. 선배한테 그런 취미가 있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치만 “바보. 그럼 나중에 불러.”

 

이로하 “네엣”

 

 


물론, 관심이 없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하지만 나는 나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뒤 돌아서서 화장실 문을 닫고 그곳을 떠났다.

 


------------------5,6분 후.
잇시키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화장실까지 데리러 가서는 아까처럼 잇시키를 업고 방까지 데려와서는 침대 위에 눕힌다.

 

 

하치만 “죽, 다 됐는데 먹을 수 있겠냐?”

 

이로하 “조금은요”

 

하치만 “그러냐”

 

주방에 가서 죽을 조금 덜어서 그릇에 담는다. 그리고 차를 타서 방까지 가져온다.
내가 그걸 건네자, 불만스런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하치만 “……뭔데”

 

이로하 “보통은 이런 때 아-하고 먹여주잖아요-. 선배는 안 해주는 걸까-해서요”

 

하치만 “딱히 손 정도는 움직이잖아. 어서 먹고 열 제고, 자라.”

 

이로하 “진짜 선배는 냉정하네요-. 이런 귀여운 여자애한테 아- 할 수 있는 기회잖아요-? 선배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구요?”

 


하치만 “오지랖 넓네. 애초에 그런 거에 환상 같은 거 없어. 나는 장래에 나를 길러주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거기에 사랑이라던가 뭐라던가 하는 그런 감정은 있든지 없든지 아무래도 상관없어.”


말을 끝내고 잇시키의 얼굴을 보자, 아차 싶었다.


잇시키는 고개를 숙이며 손에 들고 있던 그릇을 무릎 위에 놓는다.

 

이로하 “……그건, 돌려 말해서, 차는…건가요…?”

 

하치만 “아, 아니 그런 게 아ㄴ”

 

이로하 “아핫, 죄송해요. 선배. 선배가 병문안 와주셔서, 혼자서 들떠있었어요. 민폐였던 거네요-. 죄송합니다. 이제 집에 가셔도 괜찮아요.”

 


하치만 “잇시키…….”

 

평소대로 하던 대화를 평소처럼 하고 있으니까 우리들의 관계를 머리 한 구석에 처박아두고 있었지만….
우리들은 고백 받은 사람, 고백 한 사람의 관계다. 특히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이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지만 마음 속에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잇시키에게 말을 건넨다.

 

 


하치만 “잇시키. 아까는 미안해. 악의가 있었던 건 아냐. 단지 실제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

 

 

잇시키는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있었지만, 나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하치만 “하지만 너에 대해선 제대로 생각하고 있어. 생각하고 싶어. 그러니까, 좀 전엔 찬 게 아냐. 정말 미안해.”

 


이로하 “………정말로 미안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하치만 “그래”


이로하 “그럼 하나만, 제 부탁을 들어주실래요?”


하치만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이로하 “그럼 오늘은 확실하게 간병해 주시는 거죠?”


하치만 “그래. 알았어.”


이로하 “그럼 한 번만, 아-하고 먹여주세요.”


하치만 “……아아, 알았어.”

 

 

 

 

 

 

이로하 “오늘 자고 가 주세요.”

 

하치만 “그래 알았……뭐?!”

 

하치만 “아니, 부탁은 하나잖아?”


이로하 “네, 하난데요? 선배 괜찮으세요-?”

 

 

조금 전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화사하게 웃고 계시는 잇시키씨.

 

 

 

이로하 “그게요-, 간병하는 건 원래 있던 약속이잖아요-? 그러니까요-, 자고 가 주세요 라는 게 부탁이에요.”

 

하치만 “그런……. 그렇지만 아-하는 건 어떻게 된 건데? 그것도 부탁이잖아?”

 

이로하 “무슨 말 하시는 거에요 선배? 아-하는 것도 간병하는 거라고 알려드렸었잖아요-?”

 


뭐……라고…….

내가 말문이 막혀있는 동안 잇시키는 내 손에 그릇과 숟가락을 건네온다.

 

 

 

이로하 “자요, 아-앙……….”

 


눈을 감고 입을 여는 잇시키.
위험해, 이거 위험하다고! 심장 소리가 위험해!!
진정해라, 진정하라고!!
이름 있는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째서 잇시키를 쓰러뜨리자고 생각하는 거냐고?!

 


하치만 “그, 그럼 할게.”

 


스푼으로 죽을 조금 뜨고는, 잇시키의 입까지 가져간다.
입안에까지 들어왔다고 느낀 잇시키는 덥석, 하곤 입을 다문다.
그리곤 스푼을 약간 위로 들자, 부드럽게 입 밖으로 내보낸다. 그 스푼을 따라 나오는 것처럼 움직이는 잇시키의 입술이 묘하게 요염하다.
그 일련의 행위가 스푼이라고 하는 매체를 통해선데도, 어째선지 내 몸 전체에 도돌 도돌 소름이 돋았다.

 

 


이로하 “한 입만, 더요….”

 

하치만 “어, 어….”

 

다시 일련의 동작을 한다.
또다시 끝나면 잇시키가 한 입만 더, 한 입만 더 하며 속삭이듯 중얼거린다.

나도 어째선지 그 말에 따르게 된다.
정신이 들자 죽은 전부 없어져 있었다.

 

 

 

 

이로하 “응후후-, 선배, 맛있었어요”

 

하치만 “그,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고작해야 죽을 먹이는 건데도 내 체력은 꽤나 소모되어 있었다…….

 


하치만 “우선은 열을 재자. 체온계는 어디 있어?”

 

이로하 “분명히 거실에--------”

 

잇시키가 알려준 곳에서 체온계를 찾아서 잇시키한테 건넨다.

 


이로하 “우우, 보통 체온을 측정 할 때엔 이마하고 이마를 맞대는 거잖아요-?”

 


하치만 “바보냐. 그렇게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있을 법한 거 해 봤자, 실제론 측정할 수 없잖아. 이렇게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기계가 있으니까. 일부러 그런 거 안 해도 된다고. 매번 애니메이션 볼 때마다 그렇게 생각해.”

 

부우-부우- 하고 불평하면서도 잇시키는 자신의 옷 안으로 체온계를 넣고 겨드랑이에 끼운다.

그러고 보니 애니메이션 같은 데선 체온계를 입에 물리거나 엉덩이에 꽂아두던데 정말 그렇게 해야 하는 걸까? 그런 걸 하지 않아도 겨드랑이면 되지 않냐고. 체온계를 입에 물고 있는 것도 턱이 아플 것 같고, 엉덩이에 꽂는다니 그거 당하는 사람은 결혼 못할 것 같다.

옛날에는 아-하고 있었나?
아니면 제작진의 취민가…?

그런 아무래도 좋은 걸 생각하고 있는 동안, 피피피피-하고 체온계가 신호음을 울렸다.

 


이로하 “앗차, 38.2도네요. 어제보다 올라가 버렸어요. 선배 때문이네요-.”

 


하치만 “씨꺼. 그러니까, 얼렁 자라.”

 


그렇게 말하고 잇시키한테서 체온계를 가져가려고 하자, 잇시키는 뭔가 망설이고 있다.
내가 시선으로 재촉하자, 잇시키는 눈을 돌리면서 살짝 뺨을 붉혔다.

 

 

이로하 “선배, 왠지 야한 생각하고 있지 않으신가요?”

 


하치만 “뭐? 뭐가?”

 


이로하 “………그게요, 이거, 좀 전까지 제가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으니까요….”

 


그 말을 듣고 순식간에 귀까지 뜨거워졌다.
화, 확실히 그렇다. 이건 좀 전까지 잇시키가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것. 여고생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겨드랑이에 꼬옥, 끼여 있던 것.
누구냐. 겨드랑이면 되지 않냐고 했던 녀석은?
가족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가족이 아니라면 이 파괴력도 엄청나잖아?!

 


잇시키한테 체온계 집(통)을 건넨다.

 

 


이로하 “아, 역시 야한 생각하고 있었던 거네요-”

 


하치만 “바보. 네가 이상한 말을 하니까 의식하지 못했던 걸 의식해버렸다고. 정말 아무런 생각도 안 했거든.”

 

 


이로하 “아핫, 수줍어하고 있어-, 선배도 귀여운 데가 있네요~”

 


짜증나네.
………뭐, 이 상태라면 빨리 낫겠다.
그리고 잇시키는 통에 넣은 체온계를 나에게 건넨다.
어째선지 통에 넣어져 있어도 후덥지근한 느낌이 든다.
큭, 아무것도 생각해선 안되. 히키가야 하치만!! 생각하지 마라. 느끼는 거다. ……지금은 느껴선 안 되는군.

 


잇시키한테 먹여준 죽 그릇을 부엌에서 씻고, 다시 잇시키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로하 “그럼 선배, 대답은요?”

 


하치만 “엉? 무슨?”

 

이로하 “오늘 자고 가실 건지 해서요”

 

하치만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말 했었지. 그거 강제가 아니었냐?”

 

이로하 “아뇨 강제에요.”

 

하치만 “허나 거절하마.”

 

이로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부탁을 들어주마, 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하치만 “큭….”

 

 

이로하 “그렇지만 확실히, 이건 부탁이니까 그런 강제력은 없지만서두요, 하지만 선밴 저에게 책임이 있으니까요-. 여긴 강제력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치만 “너 정말 멋진 성격이구나. ………알았어. 자고 내일도 간병하면 되는 거지?”

 

 


잇시키는 눈을 반짝이며 네에! 하며 만면에 미소를 띄운다.
이런, 나는 알고 있다고, 그 표정이 진짜 표정임을….
그런 나를 두고 잇시키는 그치만요, 하고 마저 말을 잇는다.

 

 

이로하 “ 어떡하실래요-? 선배 밥도 안드셨구, 목욕도 하셔야 할거구요”

 

하치만 “밥은 안먹어도 돼. 사람은 원래 저녁밥은 안먹어도 되는 것 같으니까. 흐아아암….”

 

이로하 “그럼 저랑 몸 닦아주기, 하실래요?”

 

부끄러운 말이다. 농담이라고 해도 말할 수, 있구나, 리얼충, 굉장해!
챠이카 순수하고 하얘서 귀엽지…….
잇시키의 말에 무심코 푸훗 하고 코피를 뿜을 뻔 했지만, 왠지 곧장 자신의 마음속이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하치만 “………이 비치녀석”

 

이로하 “비치 아니거든요?! 너무 하시잖아요-. 농담인데 말이에요-.”

 

하치만 “……농담이라고 해도, 그런 걸 은근히 말 해버리는 여자는 솔직히 안 좋아해…….”

 

이로하 “엇”

 

 

하치만 “만약, 방금 그걸로 내가 덮치려고 했다면 어떡할 건데? 넌 지금, 열이 높아서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어. 남자라면 나같이 빈약한 놈이라도 쉽게 덮칠 수 있다고. 남자는 성욕이라는 녀석이 옷을 입고 걸어 다니고 있는 그런 거란 말이다! 그보다 그런 대사를 은근히 말할 수 있다는 건 평소에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나는 그런 가벼운 여자는, 싫어.”

 

 


조금 전까지 평화로운 분위기였는데, 순식간에 바뀐다.
잇시키의 말이 농담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걸 허용할 수 없는 자신이 있다.
나 스스로도 놀랬다.
평소에는 그냥 흘러 넘기는 그런 단언데도, 어째선지 마음대로 혀가 움직여버린 것이다.
그 순식간에 몸이 차가워져 감각은 뭐지? 그리고 그 후에 필요 없이 몰아세운 이유는 뭐지?
잇시키의 얼굴을 보자, 그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고, 지금이라도 울 것 같다.

 

 


하치만 “……미안, 좀 나갔다 올게.”

 


왠지 그 자리에 있기 힘들어서, 잇시키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나는 가지고 온 가방을 들곤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대로 묵묵히 걸어서, 이전에 잇시키와 이야기 했던 공원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일 났다….
걷고 있는 동안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벤치에 앉아 있자 겨울의 추위가 순식간에 몸을 차갑게 만든다.
그도 그렇겠지. 잇시키의 방에 코트 놔두고 왔으니까….
아, 게다가 전화기도 없어….
이래선 빨리 안 돌아가면 감기 걸리겠는데. 뭐, 그전에 잇시키한테서 감기 기운이 옮아버렸을 가능성이 높지만. 꼴 사납네…. 폼 잡고 있을 생각은 없지만도….

 

 

 

 

……………………………….

 

……………………………….

 

…………………추워…………….

 


공원 출입구에 있는 자판기까지 발걸음을 옮겨, 사고자 하는 걸 발견하곤 돈을 넣고, 그걸 꺼낸다.
한겨울에 건조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최강 달콤함! 그 이름하여 MAX! 커-피-이!!


역시 겨울에 따듯한 MAX 커피는 최강이군.
그 자리에서 뚜껑을 따서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다시 벤치에 앉는다.
그리고 다시 한 모금, 또 한 모금, 조금씩 마신다. 차가워진 몸이 안에서부터 뜨거워져 가는 걸 알 수 있다.

 

 


정말 달콤하다니까, MAX 커피.
……………정말로 달다. 너무 단데. 마시는 사람을 당뇨병 걸리게 할 생각인 거냐고….
정말………정말로, 정말이지, 정말이지 인생은 쓰니까, 커피 정도는 달아도 돼…….

 

 


딱히 눈물이 나온다던가,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공허했다.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어째서 잇시키를 농담인줄 알고 있었으면서도 몰아세웠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에게 알 수 있는 건, 공기가 차갑다는 것과, MAX 커피는 달다는 것, 그리고 분명 지금 잇시키는 울고 있다는 것이다.

 

 

 

……………어떡하면 좋은 거냐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추위에 뇌는 개운해졌는데도, 아무런 답도 찾아 낼 수 없다.
암흑 속을 달리고 있다기 보다는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에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거기에 답 따위는 없는 듯한, 아니, 오히려 모든 게 답인 듯한 그런 느낌.

--------------MAX 커피를 다 마셨을 무렵에는 내 몸은 충분히 차가워져 있었고, 재채기를 계속해서 뱉어냈다.
진짜로 감기 걸릴 것 같다….

 

 

 

하치만 “……………돌아갈까….”

 

 


혼잣말을 공기에 내뱉으며 일어서서 비어버린 MAX 커피를 버린 뒤, 돌아가는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가서 어떤 얼굴로 만나면 되는 거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냐고.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잇시키의 집에 도착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감기에 걸릴 뿐이기에 안으로 들어갔다.
잇시키의 방문은 열려 있었다.
…………내가 나올 때, 여러 둔 채로 나와버린 건가?
조심스럽게 방 안을 본다.

 

 

 

하치만 “…………어?”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른다.
설마 그 녀석, 내가 안 들어오니까 찾으러 나간 건가…? 그런 상태로?

 


내가 이곳을 나와서 돌아오기까진 약 20분 정도 걸렸다.
하지만 그렇게 비틀대고 있던 잇시키가 그렇게 멀리까지 갔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상태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휘청거리면서 걸어가다가 차에라도 치여버리면? 이상한 놈들한테 걸려버린다면?

 


생각하면 할수록 심장이 요동치는 속도가 빨라진다.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냐. 생각하는 것보단 먼저, 그 녀석을 찾아 나서야만 한다.
내가 발길을 돌려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한 순간, 솨아아아-하고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목욕탕에서다.

잇시키의 부모님은 빨라도 내일 낮에 돌아온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역시 잇시키라고 밖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몸 상태로 목욕을 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즉시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탕의 문은 열려있었고, 안에는 샤워기를 손에 들고 욕조에 팔을 걸친 상태로 축 쳐져 있는 잇시키가 있었다.

 

 

하치만 “야, 잇시키. 괜찮아?”

 


이로하 “아, 선배-, 돌아오신 거네요-.”

 


잇시키는 나를 보자 방긋하고 미소를 지었다.

 

하치만 “……너 뭐하고 있었냐.”

 

 

만약 내가 한 말을 듣고서 손목을 긋거나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했지만 그건 기우였던 모양이다.
잇시키는 일어서려고 했지만 비틀, 하고 휘청거렸기에 다시 뒤에서 끌어 안는 듯한 형태가 되어 잇시키를 부축한다.

 

 

이로하 “에헤헷, 죄송해요.”


하치만 “아니, 이건 뭐 괜찮아….”

 


하고 괜찮은 척하며 말했지만, 실제론 여자를 끌어 안고 있다는 이 현상에서, 몇 번이나 경험해도 심장은 쿵쾅쿵쾅하고 피를 온 몸으로 쏟아낸다.

그대로 잇시키는 꾹하고, 온 몸의 체중을 맡겨오면서, 잇시키를 안고 있는 내 팔을 살며시 만진다.

 


이로하 “선배, 역시 몸 차갑네요-.”

 

하치만 “응, 어. 뭐 밖에 있었으니까.”

 

이로하 “어디까지 가셨던 거에요-?”

 

하치만 “……그 공원에”

 

어째선지 여기서 둘 다 말문이 막혀버린다.
잇시키는 비키려고 하지 않았고, 안고 있는 나도 잇시키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차가워진 몸에 잇시키의 온도가, 기분 좋았다.

약간의 침묵이 이어진 후, 잇시키한테 물었다.

 

 

하치만 “그런 건 괜찮으니까. 너야 말로 이런 곳에서 뭐하고 있었던 건데. 서있는 것도 힘든 주제에.”

 


이로하 “………걱정 해 주시는 건가요?”

 


하치만 “……간병, 이니까. 난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아.”


 


잇시키는 쿡, 하고 미소를 지으며 쑥스러운 듯이 말한다.

 

 

이로하 “분명히 선배 돌아오면 춥겠지-해서요, 목욕 물 채워둘까 하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뭐, 뭐냐고 이 녀석…….
이런 캐릭터였나? 말랑 포근 비치에서 천사로 승격되신 건가요?! 내 이생에서 천사는 토츠카하고 코마치만 있던 게 아니었던 건가?!

내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자, 잇시키는 거만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로하 “----------라고 하면, 선배의 호감도를 한번에 올릴 수 있으려나-하고 생각했는걸요. 어땠나요-?”

 


하치만 “………내 감동을 돌려줘.”

 

뭘 기대한 거에요? 하고 말하는 듯이 잇시키가 웃는다.

역시 무서워. 이 여자애.
………………….
사실은 알고 있다.
좀 전에 이 녀석이 한 말은 진심이다. 진심이 아니었다면 이런 상태로 이 정도까진 안 한다고.
그렇기에, 방금 이 녀석이 한 말은 수줍음을 감추기 위한 거고, 날 걱정해주고 있다는 말이라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다.

 

 

 

하치만 “……자, 방에 돌아가자.”

 


이로하 “서언-배애, 어부-바아~.”


하치만 “…………알고 있다니까.”

 

잇시키를 받치면서 몸을 앞으로 옮긴 후, 잇시키를 업는다.
그 상태로 잇시키의 방으로 향했다.

 

 


이로하 “오늘은 업어주기도 하셨으니까요, 선배 감기 옮으셨을지도요-.”

 

 

등에서 쿡쿡 하고 웃는 잇시키.
그런 거면 진짜 싫은데.
외톨이는 감기로 아프거나 하면 수업 따라가기 힘들어지니까….(울음)
잇시키의 말에 조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해 둔다.

 

 

하치만 “………벌써 옮았다고. 이상한 열….”

 

나 스스로도, 분명 의사도 잘 모르는 이상한 감기를, 틀림없이 난 옮아버렸던 것이다….


이로하 “선배? 무슨 말 하셨어요-?”

 

하치만 “………아니, 딱히.”

 

 

들리지 않았다면 그걸로 됐다.
그리고 잇시키의 방으로 돌아와 잇시키를 침대에 눕혔다.
그 후, 나는 잇시키네 집의 목욕탕을 사용하게 되었다. 당연히 옷을 갈아입을 수는 없었으니까, 옷은 그대로지만….
욕실에서 나와 잇시키의 방에 돌아오자, 잇시키는 내가 목욕을 하는 동안 혼자서 옷을 갈아 입은 것 같다.

 

 

하치만 “미안, 목욕 잘 했어.”

 


이로하 “아뇨아뇨, 간병 해주시고 있으니까, 그 정돈 당연하죠.”

 


하치만 “그래. 그런데 잠 자는 거 말인데, 난 어디서 자면 돼? 다른 방에 소파 같은 게 있으면 거기서 잘까 하는데-----”

 


이로하 “이 방에서 자면 되는데요?”

 


하치만 “아아, 그럼 이방에서---------, 라니 뭐? 무슨 소린데?”

 


능숙한 대화의 흐름에 휩쓸릴 뻔 했지만 어떻게든 멈춰 세웠다. 정말이지, 이 녀석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로하 “그게요, 분명 선배도 저한테서 감기기운 옮았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집 전체에 감기 기운을 퍼뜨리는 것보단 좋을 것 같아서요.”

 


하치만 “그, 그렇구나. 일리 있네. 하지만….”

 


여자애와 같은 방에서 단 둘이 잔다고? 뭐야 그거 어디의 천국이야?
아니, 잠깐만. 이건 현실이다.
아니, 그렇기에 말로, 위험하잖아….
아으! 젠장! 어떻게 하면 좋은 거냐고!!

 

 

이로하 “우웅-, 역시 이건 명령으로 할게요. 여기서 주무세요. 선배. 저는 괜찮으니까욧. 집 주인의 명령이라구요-.”

 

 

난 좋지 않다고오오오오오오오.
왜 그렇게 싱긋싱긋 웃고 있는 건데. 니코니코니하라고. 젠장. 당신의 하트에 러브니코 하라고오오오오.
내가 생각에 몰두하고 있자, 잇시키는 팡팡 하고 침대를 두드렸다.
흠, 그건 여기 와서 앉으라는 제스처였지.
그렇기에 내가 침대에 가서 앉고, 그와 동시에 잇시키는 몸을 일으켰다.

 

이로하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장해요. 선배”


그렇게 말하곤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만 둬. 이거 부끄럽다고. 그러고 보니 전에 유이가하마도 이렇게 했었지. 꽤나 침착하게 되고, 기분 좋구나. 이거.
내가 코노하마루(나루토 등장인물)화하고 있는 동안, 잇시키는 옳지옳지, 하며 내 머리를 계속 쓰다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손은 갑자기 멈추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내가 돌아보는 것보다도 먼저, 몸에 강한 힘이 가해진다.

 

이로하 “에----잇!”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생각이 쫓아가지 못했다. 몸에 부드러운 감촉이 퍼진다.
아무래도 옆으로 침대에 쓰러진 것 같다.
내가 혼란스러워 하고 있자, 다시 힘이 가해져선 내 몸은 반대로 돌아 잇시키와 마주보게 되었다.
바로 앞에, 잇시키의 얼굴이 있다.

 

이로하 “이대로 자요, 선배.”

 

하치만 “무으, 슨 말인헷”


엄청나게 동요한 나머지 씹어 버렸다.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한번 하곤 호흡을 정돈한다.


하치만 “나, 나는 이 방에서 잔다고 해도 바닥에서------”


그런 내 말을 가로막듯이 잇시키의 팔이 나를 감싼다.
그 행동에 더욱 내 고동은 빨라진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다른 세계선으로 와버린 거야? 하지만 리딩 슈타이너는 발동하지 않는데!?
그대로 잇시키는 꼬물대며 아래로 내려가선, 내 가슴 부근에서 멈추곤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미안 잇시키. 나에겐 파후파후* 해줄 가슴은 없어….

*가슴에 얼굴을 묻게 해주는 서비스

 

이로하 “…………싫어, 졌나요…?”

 

하치만 “어?”

 

이로하 “…이런 거 하는 여자는, 가볍고, 비치 같아서, 싫은, 가요…?”

 


………………………….
역시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나.
딱히 가벼운 여자가 싫다는 게 아니다. 그런 여자앤 애니메이션 같은데 많기도 하고, 그런 여자는 히로인과는 대조적인 존재로 취급 받는 일이 많으니까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이기도 하고.
다만, 이 녀석이나 유키노시타나, 유이가하마는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게 돼버린다.
내가 입을 다문 채로 있자, 잇시키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로하 “………확실히요, 선배가 말씀하신 대로였어요. 저, 그런 말들, 평소에도 사용하고 있었는걸요. 그런 단어나 대화는 누구와도 분위기를 살릴 수 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곤란하지도 않으니까요.”

 

 


얼굴을 묻은 채로 있었으니까 그 표정은 볼 수 없지만,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상상) 있을 정도로는 잇시키를 이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요, 하며 잇시키가 말을 이었다.

 

 

이로하 “선배를, 선배를 좋아하게 되고 나선 그런 말은 하지 않아요! 남자애들과도 놀지 않구요! 그게, 저요………선배와 사귀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으니까요….”

 


나는 그저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더욱 세게 나를 끌어안는 팔, 더 세게 강하게 가슴에 묻는 얼굴, 이건 잇시키의 약삭빠름 같은 게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일 것이다.

 

 

이로하 “……그러니까요, 싫어하지 말아 주세요. 미움 받아버리게 되면, 이젠, 사귀는 것도, 얘기하는 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저, 그렇게 되면 살아갈 수 없어요….”

 

 

무거워!!
이런 건 거진 80% 강제잖아.
이래서 상냥한 남자인 주인공은 사람이 죽는 건 곤란하니까 히로인 보다 이런 여자애를 선택하는 거구나.
하지만 결국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히로인과 골인, 클리셰네요. 알고 있습니다.

 

 

하치만 “……말이 심해.”

 


이로하 “어랏? 이렇게 말하면 99%의 남자는 넘어올 텐데요….”

 


…………연기였던 거냐…orz.

뭐 연기였던 건 맨 마지막뿐이지만.
………그보다 그게 아니라면 무리니까. 안 그러면 내가 살아가지 못하게 될 것 같으니까 그렇게 있어줘.

 


하치만 “아쉽게 됐네. 난 그 1%에 속하는 사람 인 것 같다.”

 


칫, 하고 혀를 차는 잇시키.
그것도 연기지? 그렇다고 해줘.
10초 정도의 침묵.
잇시키가 내게서 전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기에, 나도 이젠 포기했……지만, 아직도 심장은 고동치고 있다.
그렇지만 최대한 노력해서 평온한 듯이 잇시키한테 말을 걸었다.

 


하치만 “…………그, 뭐냐. 미안해. ………싫다던가 하고 말해서.”

 


이로하 “호에?”

 

하치만 “그, 그냥 딱히 네가 싫다던가 한 게 아니라, 그런 걸 말하는 녀석이 싫은 것뿐이니까, 그런 말을 하면 너도 싫어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그런 뜻이거든, 정말로 네가 싫다던가 할 리가 없는 거니까. 으, 어, 그러니까…….”

 

나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되어버린 말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니, 진짜로 나 말이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내가 조용히 있자, 잇시키는 살짝 고개를 들고,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본다.

 


이로하 “그러니까, 좋아, 하나요…?”


하치만 “……어?”

 


이로하 “싫은 게 아니라면, 좋아하나요? 그게 아니라면 보통인가요? 보통이라면 보통 중에서도 상, 중, 하에서 어느 정도에요? 선배가, 선배가 저를 좋아하게 될 가능성은 있는, 건가요…?”

 


말 끝으로 갈수록 목소리가 줄어들어 간다.
아래서 내 눈을 응시하는 잇시키의 눈동자엔, 불안과 기대, 그 외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잇시키는 다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면서, 내가 대답하기 보다도 먼저 선배, 하면서 상냥하게 물었다.

 

 

이로하 “좋아한다는 건,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으,우우우우…. 연애적으로 좋아한다는 의미라면, 지금 당장 만나고 싶다던가, 이야기 하고 싶다던가, 언제나 함께 있고 싶다던가, 뭐 그런 게 아닐려나?
이,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부끄러운데….

 


이로하 “분명히요, 누구보다도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재미있다던가, 함께 있고 싶어, 라던가요, 지금 당장이라도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던가 하구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세요?”

 


하치만 “에스퍼냐…. ……그게 아닌 거야?”

 


이로하 “틀림없이 맞을 거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걸요. 하지만요, 지금은 달라요. …………그러니까, 선배는 제가 싫으신가요? 아니면 보통인건가요?”

 


하치만 “안 싫어해. 그리고, 딱히 보통인 것도, 아냐…….”

 


그러니까 그거 좋아한다는 거잖아!!
…………모르겠다고. 단지, 잇시키하고 있으면 훈훈하고, 따듯해 지니까….
뇌에서 하치만 보완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잇시키가 현실로 데리고 돌아왔다.
위험했어, LCL화 할 뻔 했다고.

 

 


이로하 “그, 그그그그그, 그렇다면요! ………그 좋아한다는 게, 그거와 다른 좋아한다는 게 되었을 때에, 고백, 해, 주세요….”


하치만 “고, 고백은, 이미 네가 했는데….”


이로하 “네에?”


묘하게 가련하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얼굴을 들곤 노려본다. 너 무슨 소릴 하는 건데? [삐---------]래? 같은 눈이다.
응, 뭐라고? 겁나 무서운데요….
잇시키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노려보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잇시키 “선배 바보죠? 죽고 싶어요? 보통 고백은 남자가 하는 거잖아요-? 아-, 하지만 문자나 전화는 안 돼요. 얼굴 보면서 말해 주세요. 그, 그렇게 해주시면 저, 저도 기쁘, 니까요….”

 

혼자 말하면서 그런 미래를 상상한 걸까. 잇시키는 뺨을 붉게 물들이곤, 크흠. 하고는 다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하치만 “어, 어어, 알았어….”

 

잘 모르겠지만 일단 대답 해 둔다. 아니 모르겠다, 라고 하는 건 고백에 대한 게 아니라, 좋아한다는 감정에 대해서다.
연애적인 사랑, 에 이것 말고 다른 좋아한다는 게 있는 걸까.
아니, 분명히 있는 거겠지. 아마 그게 지금 잇시키가 품고 있는 것일 거고, 그것과 같은 걸 가지고 나에게 와라, 하고 말하고 있는 거니까.
그렇다고 해도, 도대체 그건 뭐지? 만나고 싶다. 도 아니고, 함께 있고 싶다. 도 아니다.
…………………………………핫!!!!
좋아한다 = 야한 걸 하고 싶어, 인 건가?!
와았습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앗!!

 

 

 

 


이로하 “그럼, 피곤하니까 자도록 해요-, 선배 전등 꺼주세-------아뇨, 역시 제가 끌게요.”

 


잇시키가 몸을 일으키며 나를 왼손으로 누른 채로, 오른손으로 전등 스위치를 껐다.
갑자기 세상이 어둠에 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치만 “저기, 진짜로 이대로 잘 거냐…. 난 진심으로 바닥에서 자는 게 좋----크흑”

 

 

누워있는 내 몸에 강한 충격이 온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잇시키가 내 위로 무너진 것이었다.
목에 팔을 감은 채로, 쇄골에는 잇시키가 내쉬는 숨이 닿는 게 느껴진다.
안돼, 위험해 이건!
하복부에 혈액이 몰린다. 위에는 잇시키의 배 근처가 대어져 있다.
그만, 그만 해! 이 이상의 테마를 실행시키는 건 필요 없으니까!!!

 

 

하치만 “너, 너,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나오는 녀석…이었냐…?”

 


이로하 “무슨 말씀이세요-? 그저 몸이 떨려서요, 쓰러졌던 게 우연히 선배 위였을 뿐인데요-?”

 


하치만, “큭, 무, 무거워. 그러니까 비켜줘….”

 

이로하 “어라? 저요, 공기처럼 가벼웠던 게 아니었어요?”

 

하치만 “아, 아냐……앗, 크훗, 공기보다, 가벼, 운 건 내 존재, 니까, 됐으니까, 거기서 비켜.”


이로하 “우우-, 조금만 더 이대로 있고 싶은데요-.”

 


으어, 벌써 반쯤은 서버렸다고!
진짜로 비켜 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이 녀석.
여기선 남자 하치만, 힘을 보여줄 때다!
오른손을 잇시키의 머리에 올리곤, 왼손으로 잇시키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이로하 “엇? 서, 서서선배?”

 

 


그대로 오른쪽으로 힘을 가하곤, 잇시키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후우, 이걸로 만사 해결이다.
게다가 떨어졌을 때도 고려해서 머리에 쿠션이 되도록 오른손으로 받쳐 주는 나. 우와~ 엘레강트하잖아.
나도 이걸로 이탈리아 신사에 들어갔다고, 아니 잠시만, 내가 이탈리아 신사가 되어 진지하게 행동한다고 한들, 수요가 있을려나?
아니, 있지! 서양 사람들은 사람을 얼굴로 판단하지 않으니까!! 마음만 있다면, 그걸로 OK. 그렇기에 나라고 한들 인기 있을 수 있어!
그보다 나 힛키니까, 사람과 접촉할 리 없잖아…. 얼굴 이전의 문제였어….

 


이로하 “이, 있죠 선배….”

 


하치만 “어?”

 


이로하 “………이 손…요….”

 

 

응? 나와 잇시키의 얼굴이 이상하게 가깝다.
현상을 머리 속에서 정리 해 본다.
처음부터 잇시키는 내 목에 팔을 감고 안고 있었다. 나는 이래선 안되겠다고 생각하곤 잇시키의 머리와 허리에 손을 감고는….
허, 헛! 완전히 껴안고 있는 거잖아!

 

 

 

하치만 “미안, 손 땔 테니까 머리 조금만 들어 줘.”

 

이로하 “싫어요”

 

하치만 “알았어. …………뭐? 아니 머리 들어주는 거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이로하 “방금 전에 알았다고 하셨잖아요-.”

 

하치만 “아니, 그건 이런 반응을 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으니까…. 뭐 그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머리 좀 들어줘.”

 

이로하 “싫어요.”

 

하치만 “………그럼 내 맘대로 빼 낼 거다.”

 

이로하 “……그 표현은, 왠지 야한 말 같아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로하 “뭐 어때요-. 이대로 있어도 좋잖아요. 아니면 싫으신 건가요-?”

 

하치만 “싫다던가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것보단 언제까지 내 가슴에 얼굴 파묻고 있을 건데, 떨어져.”

 

이로하 “누, 누가 이런 얄팍한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고 하는 건가요? 진짜 얄팍해서 여자 같으니까요, 전-혀요, 이런 믿음직스럽지 못한 몸은 인기 없어요!”

 


하치만 “야, 그런 말 할 거면 당장 떨어져.”

 


이로하 “싫어요.”

 


하치만 “참 나. 날 디스할거면 떨어져 주지 않겠냐? 아니 떨어져. 좋은 말 할 때 떨어져.”

 

이로하 “제가 붙어있다는 전제로 말씀을 하셔도 곤란해요….”

 

하치만 “너 정말….”

 

 

어이가 없는 걸 넘어서서 감동해버렸다.
이제는 내 인생에서 있을 리 없는 이 상황에 익숙해져 버렸다.
흥분이라던가 이런 건 이미 사라져버렸다. 그래. 거진 깨달음의 경지다. 선인 모드 터득했다고요.
그렇기에 내 하복부도--------아, 아직 의식을 집중해서는 안 되는구나.

 

 


이로하 “좋은, 거잖아요….”

 

하치만 “엉?”

 


잇시키의 목소리는 매우 가늘고, 애잔했다.
호오호오하고, 잇시키가 말을 할 때마다 잇시키한테서 느껴지는 날 숨이, 내 가슴을 간질였다.

 

 

이로하 “좋은, 거잖아요. ………좋아하는 사람이, 병문안을 와주고, ……업어도 주고요……죽도 만들어 주고……같이 한 방에서, 한 이불 안에서, 같이 잠들려고 하는걸요…. ………좋은 거잖아요. 이 정도는. 다른, 건, 요, 참을, 테니까요, 이 정도는….”

 

 

하치만 “어, 어어, 그럼 되는…거지…?”

 

이로하 “네에-, 이것도 간병이니까욧.”

 

 

얼굴을 부비부비하며 내 가슴에 꼭 눌러오는 잇시키가 솔직하게 귀엽다고 느낀다.
아, 이런 일을 코마치나 토츠카도 해줬으면 좋겠다.
코마치한테 말하면 해 줄 것 같은데, 토츠카한텐……, 안 돼, 상상한 것만으로도 코피 뿜을 뻔 했다.

 

 


하치만 “………간병이라면, 어쩔 수 없나….”

 

이로하 “네엣, 어쩔 수 없는 거에요-.”

 

그 후에, 서로 대화하는 일은 거진 없었다.
정말 이걸로 좋았던 걸까….
가짜로 사귀고 있다고는 해도, 그건 가짜이지, 진짜로 사귀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둘이서 한 지붕 아래, 한 침대에서 껴안은 채 잠든다. 라고 하는 현상은 뭐란 말인가….
하치만 가짜라곤 해도 사귀고 있는 거니까 이 정도는…. 응? 그럼 어느 정도가 좋은 거고, 어느 정도까지가 안 좋은 거야?

 

 

하치만 “………저기, 잇싴-----”

 


내 가슴 언저리에서 쌔근 쌔근, 하고 일정한 리듬으로 소리가 들리는 걸 깨닫고는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무래도 잇시키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든 것 같다.
아무튼 왠지 짙은 하루였다.
……………나도 자자….

 

 

 

 

 

---------------정신이 드니, 나는 꿈 속이었다.
사람은 자고 있는 동안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와는 다르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 뇌구나. 필경, 내일 일어났을 때엔 노력했다는 증거로 이런저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와있겠지.
……………아니, 노력해도 보답 받지 못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하지만, 분명 내일 눈을 떴을 때엔 잊어버리고 말겠지만, 지금 뇌가 보여주고 있는 꿈은 분명 좋은 거겠지------

 

 

 

 

 

 

 

---------------------------겨울, 오늘 날씨 맑음.
잇시키 간병이 있었던 토요일도 이미 2일이나 지나, 오늘은 우울한 월요일이다. 1월도 얼마 안 있어 끝난다.
2월이 되면 겨울이 막판 스퍼트를 내서 날씨가 굉장히 추워진다.
그 전날의 폭풍 속의 전야라고도 말하고 있는 건지, 오늘은 정말이지 하늘은 빛나고, 구름은 한가로이 떠 있고, 쌀쌀하긴 하지만 아침부터 활동하기 좋은 날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세상이 빛으로 가득한 가운데, 나, 히키가야 하치만은 감기에 걸려있었다.

 


-----------역시 나답다. 언제나 세계와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는 남자다. 으-음, 이렇게 말하면 멋있지만, 맨날 세상을 등지고 있는 남자야, 하고 말한다면 뭔가 촌스럽구나. 아니 촌스럽다고 할까 괴로워진다. 그런 악역이 있다면 살포시 안아줘 버릴 것 같은데------

 


아무튼, 열이 높은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평소대로 자전거로 학교에 가고 있는 거지만, 어째선지 스쳐 지나가는 학생들의 시선이 따갑다.

 

 


이로하 “서-언뱃!”

 


자전거 정류장에 자전거를 두려고 할 때 뒤에서 어깨를 두드리는 걸 느껴, 돌아보자 거기엔 잇시키가 서 있었다.
………뭔가 가까워….

 

 

하치만 “여어, 잘도 나라고 알아봤네.”

 

이로하 “그야 당연하죠-. 선배 오늘 엄청나게 눈에 띄니까욧.”

 

하치만 “엉?”

 


뭐? 등에서 칠흑의 날개 같은 거 나온 건가? 이런, 숨기려고 했었는데….
딱히 테일즈 시리즈의 칠흑의 날개가 아니다. 뭐 그 녀석들은 꽤나 좋아하지만.

 

 

이로하 “그게요, 선배 오늘, 평소보다 눈이 더 썩어있구요-, 거기에 마스크도 하고 있으니까요, 완전 수상한 사람처럼 보이는 걸용”

 


하치만 “씻꺼,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로하 “역시 저랑 껴안고 자서 그런 걸려나요-?”

 

하치만 “읏?!”

 


새빨개지는 얼굴을 무시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다행이다. 아무도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일단 안심했어.
잇시키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장난끼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녀석, 나를 놀리면서 재미있어하는 거군….
모처럼 귀중한 휴일에 이 녀석의 간병을 해줬는데, 이 녀서어억….

 

 

하치만 “너 말이다. 이런 데서 그런 말 하지 마. 곤란해지는 건 너라고?”

 


내가 주의를 담아 당부해도, 잇시키는 응후후-, 하고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들을 생각 없는 거군….
하아, 하며 마음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자전거에서 가방을 꺼내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잇시키도 뒤에서 타타탓 발소리를 내며 따라오고 있었지만, 곧장 내 옆에 나란히 섰다.

 

이로하 “만약 선배가 열 때문에 못 일어나게 되면요, 제가 간병하러 가 드릴게요-.”

 

 


하치만 “오지 마.”

 


이로하 “네?! 잠깐만요, 그거 무슨 말씀이신 거에요-옷!”

 

하치만 “시끄러워. 다른 녀석들이 보잖아.”

 

이로하 “………별로 상관없잖아요…….”

 

하치만 “……내가 못 일어나게 되면 코마치가 간병 해 줄 테니까.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줄 순 없지.”

 

이로하 “우와아-, 변함없이 시스콘인 건, 당황스러움을 넘어서 감동해버릴 정도네요-.”

 

냅 둬.

 


……………이 녀석이 간병해 준다고? 가족 외의 여자 애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불 속에 틀어박히고 싶어지니까, 그만 둬. 진짜로.

 


하치만 “그럼, 1학년은 저쪽이잖아.”

 

이로하 “앗, 네네, 그럼 선배, 나중에 봐요.”

 

 


그렇게 말하곤 잇시키는 타박타박 발소리를 내며 자신의 교실로 향한다.
………저 녀석이랑 같이 있는 걸 누군가가 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아마도 그건 무리겠지. 전 교생이 등교하고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그보다, 누구도 착각할 리 없는 건가. 이런 눈이 썩고, 마스크를 낀 수상한 사람 재현도 100%인 녀석이랑 같이 있으면 위협받고 있다던가 하고 생각할 게 뻔하다. 이젠 누군가가 선생님한테 이야기 해선 주의를 받는 부분까지 보였다. 뭐야 그거, 나 불쌍해….

 

 

 


교실에 들어가니 다채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부터, 이 아침에 있는 토크는 이젠 소음 수준이다. 특히 나 같은 외톨이에겐 소음일 뿐이지만, 아마도 겨울 방학이 끝나고, 이제 곧 3학년이 된다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거겠지. 3학년이 된다고 하는 건, 당연히 이 반도 아니게 된다는 거다. 그 말은, 올해 1년간 생긴 친구와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다.
그렇기에 마지막 순간을 즐기는 듯이, 아니 오히려 그때가 올 것이라는 걸 머릿속 한 켠으로 몰아내듯이, 떠들고 있는 이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우습기도 하다.
반이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고등학교라는 좁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만나자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오히려 이 녀석들은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친구와, 논다던가, 놀지 못하던가, 아무래도 상관없는 거겠지. 결국엔 자신이 놀 수 있고 즐겁다면 되는 거다. 즉, 타인은 자신을 즐겁게 해줄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뭐, 아무튼 즐겨 줘. 너희들 같은 녀석들은 반드시 실패 할 것이다. 가까운 미래로 보자면 수험 같은 거 볼 때던가 말이지. 즐거운 추억 만들기에 몰두한 나머지, 인생의 전환점에서 쓰라린 추억을 만들 것이다.
아무튼, 그런 어리석은 리얼충 녀석들이 없다면 나 같은, 햇빛을 볼 리 없는 어둠의 주민들은 보상받지 못한다.
그래, 너희들이야 말로 나를 즐겁게 해줄 도구인 거다.

 


사키 “아까부터 왜 기분 나쁜 얼굴 하고 있는데?”

 

 


이런, 나한테서 세어 나오는 어둠의 기운(오라)을 다른 어둠의 주민이 느낀 것 같다.
이 녀석의 이름 카와나미, 아니 카와토모, 아니 카와모토? 카, 카와, 카와 어쩌구 사키다. 그러니까 카와사키 사키다(뭐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하치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냐?”

 

사키 “마스크, 하고 있는데. 감기?”

 

하치만 “보통 감기 예방하는데도 마스크 쓰잖아.”

 

사키 “좀 전에…, 자전거 주차장에서, 학생회장이랑, ㄲ, 껴, 껴껴, 껴안고 ㅈ, 자, 잤 잤다던가…했잖아……….”

 

하치만 “   ”

 


내 인생 끝났다.

 

사키 “…………왜, 거짓말 하는 건데?”

 

하치만 “……듣고 있었냐….”

 

사키 “따, 딱히 듣고 싶어서 들은 건 아니니까. 너, 네가 마스크 쓰고 있었으니까 말 걸려고 다가갔는데 학생회장이랑 이야기 하고 있는 게 들렸을 뿐이니까. 일부러 들으려고 한 게 아냐……………아니, 오히려 듣고 싶지 않았고….”

 

 

하치만 “……별로, 별 거 아냐. 그냥 그 학생회장이 조금, 별난 망상 하는 버릇이 있을 뿐이니까. 그 녀석이 말한 건 신경 쓰지 마. 아니, 가능하면 잊어줘.”

 

사키 “하, 하지만….”

 

 

 


머뭇머뭇 거리지 마.
평소엔 드센 여자가 머뭇머뭇 대고 있으면 이쪽은 몸부림 쳐버린다고! 아침부터 야한 망상 해서 즐기게 되니까!!!

 

사키 “………………뭐,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믿을게….”

 


뭐, 뭐야? 뭐냐고 오늘 이 녀석의 파괴력은?!
그 말을 한 뒤, 뺨을 살짝 붉히지 마. 나도 모르게 눈을 뗄 수 없게 되잖아. 진짜로 공략하고 싶어지니까!!
잠시 동안 카와사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사키 “………왜, 왜엣?”

 

하치만 “응? 아, 아아, 미안. 아, 그, 뭐냐-, 뭐랄까 묘하게 신뢰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해서. 내가 너한테 신뢰받을 만한 뭔가를 했었나….하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

 


사키 “따, 딱히 신뢰 같은 게!! ……그, 그냥 다른 녀석들 보단 신용 할 수 있고, 꽤나, 의지도, 되고….”

 

하치만 “어, 어…그래….”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오늘 이 녀석은.
이, 일단, 이 분위기는 뭔가 위험해.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지만, 시계를 흘끗하고 보곤, 카와사키에게 시선을 되돌린다.

 

 


하치만 “이, 이제 슬슬 HR 시작할 걸.”

 

사키 “아, 그래……그럼, 나중에….”

 


하치만 “어, 어어….”

 


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카와사키는 나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위, 위, 위험해애애애애애!!
뭐가 위험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위험하다.

 

 


…………아침부터 피곤하다.
이래선 감기는 오래 갈 것 같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고 있는 동안, 히라츠카 선생님이 들어와선 HR이 시작되고, 끝이 나 있었다.

 

 

역시 겨울이다.
아침, 점심은 그렇게나 포근포근 따듯했는데, 저녁이 되고 태양이 지기 시작하자 단번에 차가워졌다.
아니, 단지 나만 추운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감기 때문인지, 아니면 앞으로 부실에 가야 해서인지, 아마 답은 후자겠지.
왜냐하면 토요일에 내가 잇시키네 집에 병문안 갔다는 걸 유이가하마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뭐, 하지만 유이가하마가 가라고 해서 간 거니까, 이건 별로 몰아 세워질 일은 없을 거다.
다만, 무슨 일이 있었어? 하고 물어본다면, 그건 내 인생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나는 이 질문을 받게 된다면 우선, 틀림없이 말문이 막혔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사후의 카니발이다.
그리고 이 화제가 된다면 분명, 유이가하마는 그 질문을 할 것이다.
이건 분명해.
그런 불안을 가슴에 안은 채, 봉사부의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언제나처럼 한 소녀가 마치 그림처럼 앉아있다.
그 소녀는 나를 보자마자 바로 휴대폰을 꺼내곤 귀에 댄다.
잠깐마아아아아아아아안!!!

 

 


하치만 “나다.”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곤 얼굴을 드러낸다.
그러자 그 소녀는 전화기를 귀에서 살짝 때곤 누구? 라는 느낌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키노 “누구니? 신종 나야 나 사기 일려나?”

 

하치만 “얼굴을 완전하게 보여 준 상태에서 나야 나 사기라던가 안 하거든. 그래선 80먹은 할머니도 못 속여.”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자리에 있는 의자를 당기면서 앉자, 유키노시타가 다시 말을 걸어온다.

 

 

유키노 “미안하지만 거긴 히키가야라고 하는 두꺼비(히키가에루)과의 생물의 자리란다. 그가 왔을 때 곤란할 테니 다른 자리에 앉지 않겠니?”

 


하치만 “너 말이다….”

 


유키노 “왜 그러니?”

 

하치만 “내가 히키가야 하치만이다. 잘 기억해 둬.”

 

유키노 “무슨 말을 하는 거니? 히키가야는 확실히 눈이 썩어있고, 지금도 썩어가는 것 같지만, 너 정도로 썩어있진 않아. 히키가야의 눈은 죽은 생선 같은 눈이지만, 그 정도니까. 네 눈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단다.”

 


하치만 “감기 걸렸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유키노 “놀랍구나. 죽은 사람도 감기에 걸린다니, 너에 대해서 논문을 쓰면 노벨상은 타놓은 거겠네.”

 

 

후훗하며 코웃음을 내는 유키노시타.
사람을 매도하면서 기뻐한다니, 사람으로써 어떻다고 생각하냐….
그렇다고 해도 유키노시타는, 왠지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있다.

 

하치만 “뭐냐? 너 오늘 선명도 어떻게 된 건데? 하늘색 초과해버린 거 아니냐?”

 

유키노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나열하는 건 그만두지 않겠니?”

 

하치만 “그보다 너, 아까 나보고 두꺼비과라고 했지?”

 

유키노 “사실이잖니.”

 

하치만 “그런 사실 없거든? 그리고 그렇다면 너, 그 뒤에 그라던가 하고 말했지? 두꺼비를 그라고 부르다니, 너도 사실은 그건 거지?”

 

 

유키노 “……………………………”

 


말이 없어진 유키노시타의 얼굴에 핏기가 서린다.
이겼다….
후, 후후, 후하하하하하핫!
이겼다. 이겼다고, 유키노시타한테!!

 

 


유키노 “……………기억하고 있으렴. 머지않아 태어난 걸 후회하게 해 줄게.”

 

 


위험해.

유키노시타를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유키노시타는 흥, 하고 외면하곤 다시 독서로 돌아갔다.
나도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으려고 하며 살짝 유키노시타를 살펴보니, 그녀의 입꼬리는 조금 올라가 있었다.
잠시 후 부실 문이 열리고 유이가하마가 얏하로- 하면서 평소처럼 이상한 인사말과 함께 들어왔다.
그 후엔 평소와 다름 없었다.
아무래도 유이가하마는 자신이 금요일에 말했던 걸 잊어버린 듯 하다.
역시나. 바보 여자.
아무튼 그 덕에 난 다행이었지만….
그러는 동안 하교 멜로디가 울리곤, 각자 그 교실을 뒤로했다.

 


유이 “힛키-!!”

 

자전거 주차장에서 자전거에 열쇠를 꽂고 이자, 유이가하마가 저기 앞쪽에서 종종 걸음으로 이쪽으로 다가온다.
내 곁에 오자마자 약간 숨을 가다듬곤 에헤헤- 하고 미소를 짓는다.

 

 


하치만 “왜? 볼일 이라도 있어?”

 

유이 “응-, 오늘은 이로하랑 같이 돌아가는 거야?”

 

하치만 “아니, 그러자고 약속은 안 했는데….”

 

 

유이가하만 활짝, 웃으면서 그러엄! 하며 말했다.

 


유이 “같이 돌아 ㄱ-------”

 

하치만 “싫어”

 

유이 “즉답!? 아무리 그래도 말이 끝날 때까진 기다리라구!!”

 

하치만 “그랬다간 내일이 되어버리잖아.”

 

유이 “나, 그렇게 말하는 거 안 느리거든?!”

 

하치만 “……그래서 무슨 일인데.”

 

유이 “에헤헤-, 같이 돌아 가자. 힛키.”

 

하치만 “싫어”

 

유이 “도대체 왜 그러는 건뎃?!”

 

하치만 “…………너 버스잖아.”

 

유이 “응-, 그렇긴 한데에………좋아. 그럼 다다음 정류장까지만이라도 좋으니까.”

 


하치만 “다음 정류장이면 안 되는 거냐….”

 

유이 “에-, 그럼 금방이잖아. 아니면, 싫어?”

 

 

으으-, 아무래도 물러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이 녀석이 이럴 때엔 무슨 말을 해도 안되니까….
여기선 내가 굽힐 수 밖에 없겠다….
그렇기에, 조그맣게 한숨을 쉬곤, 알았어.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이가하마와 같이 걷기 시작하고부터 얼마 안 있어, 유이가하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유이 “왠지 의외였어. 힛키가 끝까지 싫어! 라고 안 했으니까.”

 

하치만 “어딘가의 누구씨가 전혀 물러서 줄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까.”

 

유이 “곤란하네, 그런 사람.”

 

하치만 “정말이지. 모처럼 빨리 집에 가서 코마치의 포옹을 받으려고 생각했는데.”

 

유이 “그런 거 하고 있는 거야?! 그거 이미 보통 남매가 아닌걸….”

 

하치만 “바보. 치바의 남매는 이게 기본(Default)다. 코우사카하고 그런 연인이 돼버리는 정도니까.”

 

유이 “누구야 그 사람. 전혀 보통이 아니라구! 그거!”

 

 


정말이지 어째서 남매 사이에 결혼 할 수 없는 거냐고….
그렇지만 법적으로 결혼이 용납되지 않을 뿐이고, 사귀는 거라면 적혀있는 게 아닌 게 아닐까.
어라? 그럼 좋잖아? 나 여동생을 사랑해도 완전 OK인거 아냐?
운 좋게도 동생한테 배빵 먹여서 동생을 심한 표정 짓게 하는 소꿉친구도 없고.
어라? 내 인생, 사실은 장밋빛 아냐?
나, 승리한 그룹이었어….

 

 

 

 

하치만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인데, 뭔가 고민이라도 있어?”

 

유이 “으으응, ………그냥 힛키, 감기 걸렸구나- 하고 생각했으니까….”


하치만 “그럼 더욱 날 빨리 돌려보내줘야 하지 않냐?”

 

유이 “그치만……이로하하구, 무, 문병 말고, 다른 거! ……한 걸까….하구….”

 

 

흐-음, 그 말은, 토욜일에 있었던 일을 들려달라는 건가. 그렇군.

 

 

하치만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야한 일은 없었어. 그냥 죽 만들어 주고, 그런 거 했을 뿐.”

 


유이 “야, 야한 거 생각 안했거든! ……앗, 그래두 역시 문병뿐만 아니라 간병도 해 준거구나. …………좋겠다….”

 


………나, 난청이 아니니까 그런 말 하면 들리는데. 그만 해. 진짜로.
지금 당장 간병 해버린다?

 


뭐, 실제론 죽만 만들어 준 게 아니라, 업은 채로 화장실도 데려다 주기도 했고, 결국엔 그 녀석의 집에서, 한 방에서 한 이불 아래서 껴안은 채로 잔 거지만…. 어라? 언제부터 내 인생 미연시가 된 거야?
그 후론 그저 묵묵히 걷고 있을 뿐이었다.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사람 한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만이 비어있다.
유이가하마의 발걸음에 맞게 천천히 걷고 있었지만, 문득 보니 약속했던 다다음 버스 정류장이다.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유이가하마는 약간 내 앞까지 걸어가고, 돌아보지 않은 채로 말을 걸어왔다.

 

 

유이 “안, 그래두, 병문안 가라고 말한 건 나기도 하고, 힛키, 눈은 썩어있지만 상냥하니까 분명히 간병도 해주겠지, 하고 생각했으니,까, 응, 그러니까, 하나도….”

 


하치만 “……………”

 


몸을 빙글, 하고 뒤돌아 본 유이가하마는 아하핫, 하고 웃고는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나는 그저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다.
유이가하마의 말에 조금은 나를 디스하는 말이 섞여있었지만, 어째선지 난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고, 그래선지 평소라면 신경을 세우면서 경계했던 행동을 쉽사리 그녀에게 허락해 버리고 만다.

 

 

 

 


유이 “…………………힛키, ……………나, 말야, ……힛키를,……좋, 아해….”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자, 다시 유이가하마는 몸을 180도 돌려 나에게 등을 돌렸다.

 

 

유이 “미, 미안. 이런 거 지금 말해도 민폐라고 할까, 아니, 나두 지금 말할 생각은 하나두 없었다고 할까, 그러니까, 이왕이면 죽는데 가져 갈려고 했다고 할까….”

 


무덤까지겠지. 바보.

 


유이 “그게-, 그치만 힛키 변했네-. 예전이라면 내가 이런 말 하려구 하면, 배리어! 같은, 그런 느낌으로 벽 만들고 있었는걸-.”

 


……그랬지. 정말 얼마 전까지의 나라면, 너한테 이런 말을 하게 두지 않았을 거다.
유이가하마는 아하하하……하고 힘없이 웃으면서 약간 고개를 숙였다. 그 어깨는 너무나 작고, 약해 보인다.

 

 

유이 “………정말이지, 왜, 아무런 말도 안 해주는 거야……?”

 


그 작은 어깨는, 흐느끼며 조금씩 떨고 있었고, 아래로 향한 주먹은,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이 “……미안, 정말 이런 거, 민폐였네…. 힛키는 가짜라곤 해도 이로하랑 사귀고 있구, 그렇게 하라고 한 건 나하구 유키농이니까, 그런데도, 이런 말 들으면 힛키도 곤란하겠다…. 아, 아하하, 나, 분위기 읽는 것만이 유일하게 잘하는 건데, 지금은 전혀 못 읽고 있었지. 미안해. 힛키…. 하지만, 대답만은, 들려준다면, 기쁠, 것, 같애….”

 


그렇다. 나는 말 해야만 한다.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와, 그리고 잇시키와 마주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기에, 그녀들의 마음으로부터, 나는 이제 도망 칠 수는 없는 거다.
그녀들의 말을 잘 듣고, 마음을 받아들이고, 그에 전력으로 부응해야만 한다.
…………정말, 대인 관계라는 건, 상대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끔직하게도 힘든 일이구나….
그렇지만 나는, 이 녀석들한테서, 도망치지 않아!

 

 


하치만 “………유이가하마, 여길 봐.”

 


유이 “…………거기 보면, 좋은 대답, 해줄 거야?”

 

하치만 “……글쎄. 여기 볼 때 까지 말 안 해.”

 

유이 “괜찮은걸. 이대로도. 어차피 돌아올 말 따윈 알고 있으니까…. 일부러 마주 볼 이유는…없잖아.”

 

 

하치만 “나한텐 있어. 아마, 답은 네가 상상하는 대로 일 거야. 좋은 대답은 아냐.”

 

유이 “그럼----------”

 

하치만 “그래도! ………너희들하곤, 제대로 마주 봐, 야만, 한, 다고, 생각 해….”

 


지금까지 도망치기만 했다.
나는 나로써, 나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여러 가지 일로부터 도망치겠지.
도망치는 게 나쁜 거라곤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바뀌는 것도, 결국은 현재로부터의 일탈, 즉, 도망치는 거다.
나의 이런 말장난 역시, 당연히 도망치는 거겠지.
하지만, 역시 도망 칠 수는 없다. 이 녀석들과의 일이라면.

 

 


하치만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를 도망치게 하지 마….”

 


유이 “힛키….”

 


유이가하마는 다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조금 눈물이 고인 눈을 감고는, 미소를 지었다.

 


유이 “역시, 변했구나….”


하치만 “…글쎄. 하지만 넌 바뀌었을 지도 모르겠네.”

 

유이 “어? 나?”

 

하치만 “좀 전에 네가 말 했잖아. 지금, 전혀 분위기 읽지 못했다고.”

 

유이 “아, 그러고 보니…. 그랬을 지두…. 응, 나도 변했을 지도 모르겠네.”

 

 

사실, 이 녀석은 변했다.
분위기를 읽을 수 없다고 하는 게 아니라,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유이가하마가 변했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다.

 


사랑에 사랑하는(지금 사랑을 하는, 내 모습이 멋져-라는 여자애) 여자애 유이가하마 유이.
상냥한 아이 유이가하마 유이.
뭐든지 열심히 하는 게 유이가하마 유이.
쓸데없이 분위기를 파악하는, 아니, 파악하게 되어 버리는 게 유이가하마 유이.
덜렁대고, 바보 같은 게 유이가하마 유이.
요리는 파괴적이고, 금전 감각은 똑 부러진 리얼충 유이가하마 유이.
가슴 크고, 남자를 착각하게 만들어 버리는 비치 같은 게 유이가하마 유이.

 

 

 

 

 

 

………하지만, 그래도….


유이가하마 유이는 언제나 태양처럼 밝고, 누구보다 따듯하다.

 

 


분명, 나도 몇 번이나 의식하고 있었던 거다.
실제로, 언젠가 이 녀석이 다른 녀석과 사귀고 있는 장면이라도 보게 된다면, 그 날은 하루 종일 울 자신이 있다.

 

하지만, 나는….

 

 

하치만 “너하곤 사귈 수 없어. 미안해.”

 


나는 고개를 숙이곤, 그렇게 말했다.
유이가하마한테 용서를 받을 때 까진, 이 머리를 들 순 없다.
왜냐면, 나는, 그 여름 축제, 아니 그 외에 여러 부분에서 이 녀석의 마음을 피해왔기 때문이다.
적당한 이유를 붙여서 도망쳐 왔었다.
확실히, 고백을 받았다면 유이가하마와 사귀는, 그런 미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미래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내 이기적인 생각으로, 유이가하마가 바랬던 미래를 망가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용기를 내서 고백을 해 준 그녀를, 나는,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라는 이유로 찼다.
그리고, 그런 나를 지금까지 몇 번이나, 도와 주었다.
그러한 감사도 담은, 사죄이다.
그보단 이젠 유이가하마한테 엎드려 빌어도(도게자) 될 정도구나. 아니, 이젠 엎드려 빌어야 해.
아-, 정말이지. 어째서 그렇게나 아미와 타이가는 귀여운 거냐고. 살아가기 힘들어.
앗, 나하고 타카스의 눈 닮았지? 양키 타카스와 좀비 히키가야균…. 안 닮았네. 응. 전혀.

 

 


유이 “그렇구나….”

 

틀림없이 유이가하마는 울어버릴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내 눈 앞까지 다가와선 숙인 내 머리를 살짝 만지곤, 부드럽게 어루마졌다.
이 녀석한테서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건 2번째다.

 


……어? 어째서 찬 내가 쓰다듬어지는 쪽이야?

 

 

유이 “역시, 꽤 아프구나, 좋아하는 사람한테 차이는 건….”


꽤 아플 정도로, 나 같은 녀석을 좋아해 주셔서(감사합니다.), 정말이지, 감사의 말 밖엔 할 게 없다.
하지만, 하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유이 “힛키, 고마워.”

 


하치만 “어(헤)?”

 

예상치 못한 유이가하마의 말에,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가 나와 버렸다.
여기서 으응(호에)? 이라고 말하지 않는 게 역시 나답다. 아니, 내가 말하면 이미 그거지. 응, 진짜 그거. 엄청나게 기분 나쁘군.

 

 

유이 “이런 거, 확실하게 눈을 보고 말하고 싶다던가, 뭐랄까 힛키 다워서, 말야. 힛키 같으니까.”

 


………그러니까 나 다운 게 뭐냐고….
편의점 잡지 코너에 가면 표지에 굵은 글씨로 써있는 거냐….
그보다 나,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보물 같은 거 없어. 이해 받지 못하는 겉 마음(타테마에)뿐이라면 자격이 있지만….

 

 

유이 “확실하게 말 해 주는 게, 역시 좋구나. 아프지만. 왠지 시원 하다구 할까….”

 


하치만 “……그런가”

 

 

약간의 침묵
이럴 때, 나는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저,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는 것 말고는, 난 할 수 없다.

 

 

유이 “역시 말야, 이로하를, 좋아해?”

 

 

몇 번이나 들었던 질문.
그 때마다 얼버무려서, 대답하지 않았던 질문.
하지만, 유이가하마한테 고백 받곤, 알았다.
아니, 이젠 좋아하고 있었다는 건, 인정한다. 당연히 연애적인 의미에서.
이번에 알았다, 고 하는 건 잇시키가 말했던 ‘그 좋아한다는 게, 그거와 다른 좋아한다는 거’에 대한 거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서야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하치만 “아아”

 


유이 “…………그렇구나…. 힛키, 고개, 들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든 순간, 톡하고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가슴에 부드러운 감촉을 느낀다.
아래를 보자 유이가하마가 달라붙어있다.
등에 감은 팔에는, 힘이 없다.
흑, 하고 자그맣게 오열하는 소리가 들린다.

 


유이 “흑, 흡, 있지, 힛키…. 만약, 만약에 말야, 내가, 흐흑, 조금만 더, 빨리, 흑, 고백, 했, 었, 다면, 어떻게, 되었, 을까…?”

 

 

하치만 “………글쎄다….”

 


이 녀석도 알고 있는 거다.
분명 우리들이 사귀고 있을 미래가 있었을 거란 걸.
하지만 더 이상, 이 세계선에선 그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있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말한다 한들, 우리들은 이젠 어쩔 도리가 없다.
그걸 유이가하마 자신도 알고 있기에, 그 자그맣던 오열은 점점 커져서 마침내 유이가하마는 내 가슴 안에서 성대하게 울었다.
여기저기 오가는 사람들이 우리들 보곤 했지만, 딱히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이 녀석의 눈물을, 나는 전부 받아들여야만 하니까.
나는 그대로 울고 있는 유이가하마의 머리를 살짝 한 손으로 안는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건 무정한 것이었기에,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멀리서 버스가 오는 게 보인다.

 


하치만 “………유이가하마, 버스, 왔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유이가하마는 조금씩 울음을 그치곤, 그리고 오열을 억누르며 내게서 떨어졌다.

 


유이 “흑, 미, 미안해 힛키. 교복, 젖어버려서….”

 

 


하치만 “아니, 괜찮아. ……이제, 괜찮냐?”

 

유이 “…응,읏,”

 

버스는 이제 수십미터 정도 앞까지 와 있었다.
유이가하마가 그걸 보고는, 눈에 고인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는다.

 

 

유이 “있지, 힛키. …만약에, 내가, 언젠가 다른 누군가하구 사귄다면 말이야, 힛키 어떻게 생각해?”

 

하치만 “…………”

 

정말 싫다. 아니, 찬 건 분명히 나지만. 네, 나지만요.
그렇지만 싫어. 뭐랄까, 그, 응. 싫어.
나의 침묵에, 살짝 웃는 유이가하마가 발길을 돌린다.
그 모습과 동시에 버스가 정차하곤, 푸슛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유이 “그렇담, 다행이야.”

 

하치만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유이 “응. 하지만 다행이야. 그게 힛키다우니까.”

 


그러니까, 나다운 게 뭐냐고.
편의점 잡지(이하 생략)

 

 

 

유이 “그럼, 내일 봐. 힛키.”

 

하치만 “……그래”

 

 

유이가하마가 버스를 타자 문이 닫히고 버스는 떠나갔다.
유이가하마는 버스 뒤에 앉아 뒤돌아서 손을 흔들고 있었고, 나도 거기에 손을 들어 대답했다.

 

 

 


------------그날 밤은 얼어 붙었다.
낮에는 그렇게나 햇살이 따듯했는데….
하지만, 어째설까?
추울 텐데, 계속해서 가슴 근처가 따듯하다.
흠, 오늘도 좋은 꿈을 꿀 것 같다….

………………………응. 아마도.

 

 

 

 

 

-------유이가하마를 찬 날로부터 며칠이 지나, 오늘은 금요일.
잇시키한테서 옮은 감기도 마침내 히키가야균한테 먹혀버린 것 같고,----얼마나 강력한 거냐. 히키가야균. 이제 슬슬 쉬라고…. 뭐, 배리어도 뚫을 정도니까….-----꽤나 산뜻하다.
유이가하마의 관계도 걱정이 되었지만, 찬 다음 날에는 서로 평소처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왤까? 유이가하마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내 마음은 차기 전에 비해서 훨씬 더 깔끔(Clear)하다. 뭐, 그러니까, 양호하다.
부활동도 순조로이 평소와 같았고, 아니 오히려 이전까지 이상으로 있을 수 있다. 아무튼 치바 횡단 고민 상담 메일은 여전히 검호 장군으로부터 많이 오고, 그 덕에 슬슬 짜증이 폭발할 것 같지만….
한마디 더 하자면 잇시키와는 화요일과, 수요일, 집에 함께 돌아갔다.

 


…………………흠.
그리고 현재. 금요일 마지막 수업이 끝난 후,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불려가 잔소리를 듣고 동아리로 향하는 길이였을 것이다.
이런 표현을 한 건, 그렇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본래 일어날 리 없는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 고민이라는 건 지금 내가 놓여져 있는 상황이다.
설명하자면 길어지니까 그만두도록 하자.
간단히 말하면, 미우라한테 끌려가고 있다.
…………엇? 뭐야 그거 뭔지 모르겠어….
응. 아니 정말로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니까 지금 고민하고 있는 거지.
단지 너무나도 순순하게 말을 듣는 내가 너무 불합리해서 울고 싶어진다.

 

 

유미코 “히키오, 잠시만 따라와.”

 

 

히라츠카 선생님의 잔소리가 끝나 교무실을 나서려고 하자, 교무실 앞에 미우라가 서 있었고, 나를 흘끗 보면서 그 말만 하곤 먼저 걸어갔기에 나도 주저하면서도 뒤를 따랐다.
내가 교무실에 들어갔을 때, 미우라도 안에서 다른 교사와 이야기 하고 있었다.
거기서 눈이 마주쳤던 걸 기억하고 있다.
응…그러니까, 음. 이거 그거구나. 빤히 쳐다보는 거 아냐. 너. 진짜 맞는다? 확? 뭐 그런 건가…. 뭐야 그거 무서워….
뭐 당연히 여왕님 나아-님께 거스르다니, 최하위 카스트인 나에겐 무리한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나, 정말 어떻게 되는 거지…?

 


하치만 “……야, 미우라. 어디까지 가는 건데?”

 

유미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곳”

 

 


으어, 진짜로 맞는 건가?
뭐, 여차하면 무릎 꿇을 수 밖엔.
이런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실제로 이 미우라 유미코는 그 정도로 난폭하진 않다.
외형은 뭐, 정말 요즘의 JK(여고생)이라는 느낌으로, 톱 카스트, 그 말투와 태도, 때때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은 여왕님 같지만 그렇다고 포악무도한 건 아니다.
지금까지 몇 번인가 이야기 한 적이 있었고, 종종 여자 애 같기도 했다.
그렇게 느껴졌던 건 유키노시타한테 논파 당해, 울어버렸던 일이 있고부터였지.
아, 나도 이 여왕님의 우는 얼굴이 보고 싶었는데….

 

 

유미코 “이 쯤이면 되려나…. 히키오 여기.”

 

흠, 확실히 사람이 없다.
아아, 정말이지 이제 나 어떻게 되는 거냐고….

 


하치만 “………그래서, 무슨 일인데? 빨리 안 하면 유키노시타한테 살해당하는데….”

 


미우라는 내 말을 무시하고 응-, 하고 조금 고민하고 나선, 입을 열었다.

 

유미코 “나-아, 역시 이런 거 하는 건 그다지 안 좋아하지만, 요 근래 유이, 무슨 일 있었어?”

 

하치만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유미코 “역시 나-아하고 유이는 언제나 같이 있잖아? 그러니까, 사소한 거라도 유이가 변했단 걸 알 수 있어. 그리고, 대게 유이가 변했다고 하면 너와 관련된 일이잖아?”

 

 


하치만 “…………………”

 

 


뭐, 아무튼 이제 짐작이 가는 건 한가지 정도 밖에 없다.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 바뀐 걸까?
그 날 이후로 보고 있지만, 유이가하마는 그다지 변한 것 같이 보이진 않는다.
적어도 나쁜 변화는 볼 수 없었다고 생각은 하는데….

 

 


하치만 “……어떤 식으로 변했어?”

 

 

유미코 “뭐? 지금 묻고 있는 건 나-아 인데? 뭐, 괜찮아. 뭐랄까 굉장히 여자애다워졌다고 할까, 귀여워졌다고 할까, 뭐, 그런 느낌.”

 

 


우선은 안심했다.
나쁜 변화였다면 어떡해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응? 그렇다면 왜 이 녀석은….

 

 

하치만 “그거 좋은 일이잖아. 귀여워져서 손해 볼 건 없잖아.”

 


유미코 “………”

 


내 솔직한 의견으로 대답하자, 미우라는 조금 말이 없다가 나를 노려본다.
어? 나 방금 해선 안 되는 말을 한 건가?

 

 


유미코 “나-아가 듣고 싶은 말 알고 있어?”

 

하치만 “유이가하마가 여자애답게 된 이유잖아? 화장이라도 하고 있는 거 아냐?”

 

유미코 “아아아아! 정말이지! 나-아가 묻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니까!”

 

하치만 “미, 미안. 어, 그, 그러니까, 그래서 미우라씨는 뭘 듣고 싶으신 건가요…?”

 

뭐? 이 녀석 바보? 시비 걸고 있어? 라고 말하는 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하아, 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곤 나를 빤히 쳐다본다.

 

 


유미코 “유이하고, 사귀고 있어?”

 

 

하치만 “……………뭐?”

 

 

그러자 몇 미터 앞의 복도 끝쯤에서 쿵하고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미우라도 거기로 관심이 쏠린다.
무언가가 다급히 움직이고 있다.
치마를 입고 있으니까 여자애. 아무래도 짐을 떨어뜨린 것 같다.
바쁘게 흔들거리는 헤어 슈슈로 묶어 올린 머리.
아아, 누군지 알아버렸다고요….
카와…어쩌구다. 그거 알고 있는 건가?
미우라가 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엿듣는 거 아냐 이 새꺄! 라고도 말하려는 걸까? 라고 생각했지만, 미우라는 카와어쩌구가 있는 곳까지 가서, 함께 떨어진 물건을 주워 모은다.
우와, 위험해. 나-아님 진짜 좋은 사람….

나도 그쪽으로 향한다.
내가 도착했을 때엔 떨어진 물건은 다 주운 것 같았고, 두 사람 다 모두 탁탁 소리를 내며 스커트에 손을 털고 있었다.
카와어쩌구사키, 앗, 카와사키다(뭐 처음부터…이하 생략) 카와사키는 약간 눈을 내리뜨고는, 뺨을 붉히며 미우라를 향한다.

 


사키 “고, 고마워….”

 

유미코 “어? 당연하잖아?”

 

진짜 멋져….

 

하치만 “…그래서, 뭐 하고 있었는데?”

 

 

사키 “아, 아닛, 딱히 뭘 하던 건! 그, 그냥 지나가고 있었어. 딱히 네가 유이가하마하고 사귀고 있다던가, 진짜로, 전혀 들을 생각 없었고, 듣고 싶지 않았지만 우연찮게 그런 소리가 들렸을 뿐이니깟!”

 


하치만 “………그러니까, 듣고 있었던 거네.”

 

사키 “……………미안….”

 

 

하치만 “뭐, 딱히 들어서 곤란하다던가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보다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다니, 이 근처, 수업 외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잖아? 너 방과후에 혼자서 이런 곳에 오는 거야?”

 


사키 “그, 그럴 리 없잖아! 사실은 교무실 가려고 했는데 네가 여기로 걸어오는 게 보이니까, 뭐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서….”

 


하치만 “어, 어어, 그래….”

 

사키 “으, 응….”

 


왠지 언색한 분위기가 된 것도 잠시, 미우라가 이야기에 끼어들어온다.

 

 


유미코 “뭐야아-, 왜 둘이서만 얘기하는데? 나-아도 있는데? 그보다 너희 둘 사이 좋은데?”

 

사키 “뭐, 뭐어?! 이, 이이, 이 녀석하곤 하나도 사이 안 좋거든! 너야 말로 이 녀석이랑 이런 곳에서 단 둘이라니 어떻게 된 일인데?!”

 


유미코 “뭐? 나-아하고 히키오가? 어떻게 생각해봐도 있을 수 없잖아. 너, 눈 나쁘지? 히키오 정도로 썩어버린 거 아냐? 안과 갔다 오는 게 어때?”

 


사키 “뭐?”

 

유미코 “뭐?”

 


언제 여기에 링이 생긴 거냐고…. 지구가 링인 거야? 그보다 너희들 벌써 전투태센데? DG세포에 감염 된 거야?

 

 

그보다 너희들, 싸우는 데 하나하나 나를 디스할 필요는 없지 않냐?
나는 필드에 서 있지도 않은 데도 HP 고갈 될 것 같은데? 역시 지구 전체가 링인 거지? 그치?
아니, 그건 그냥 냅둬도 되니까, 아니 되는 건 아니지만, 좀 전에 너희들 떨어진 물건 주워주면서 고맙다는 말까지 했잖아….
그랬던 게 어째서 순식간에 이렇게 된 거냐고….

 

 

하치만 “……너희들 좀 진정하고 이야기를….”

 


유미코, 사키 “뭐?”

 


으어, 설마 했던 합체 공격! 분명 혼도 사용하고 있을 테니까 공격력은 2.5배겠지.
나, 장갑도 운동성도 HP도 치명적으로 보스보로트보다 약하지만, 수리비는 비싸니까 그만 해.
이래선 완전히 오버 킬 이군….

 


유미코 “히키오, 너 누구 편인데?”

 

하치만 “어? 뭐? 편?”

 

사키 “됐으니까 어느 쪽?”

 


하치만 “아, 아니 난 언제나 중립인데, 아니 오히려 중립이라기 보단 아무 대도 포함되지 않는 공기 같은 존재니까….”

 

이제 그만 해애애애애애애애!
그렇게 무슨 말 하는 거야? 얼굴 눌러버린다? 같은 눈빛으로 보지 말아줘.
아직 건담 파이트, 레디, 고-! 라고 말 안 했으니까!!
그런 때에, 나에게 천사가 강림했다.
멀리서 힛키! 하고 부르는 학생이 있다.
틀림없이 유이가하마다.
그대로 종종걸음으로 유이가하마가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 와서 우리 셋의 얼굴을 두리번거리며 바라본다.
그리고 왜 그러지? 같은 느낌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궁금하다는 듯이 입을 연다.

 

 

 


유이 “이런 곳에서 셋이서 뭐 하고 있었어?”

 


아니, 너하고 사귀고 있냐고 미우라가 물어보던데…. 하고는 말 할 수 없다.
그건 너무 무신경하니까.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버려두고, 미우라가 유이가하마 앞으로 걸어간다.
야, 설마…하고는 생각하지만 하지마.
아무리 미우라가 진실을 모른다고는 해도, 유이가하마가 그걸로 상처 입으면 어떡할 건데…!

 

 

유미코 “역시 나-아, 남몰래 이러는 것 싫어, 유이, 히키오랑 사귀고 있어?”

 

 

유이 “………어?”

 


설마 유이가하마도 그런 말을 들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아-, 말해버렸다. 미우라씨….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던 것 같고, 유이가하만 쿡쿡하며 미소를 지었다.

 

 

 

유이 “사귀는 거 아냐. 그게…나, 힛키한테 차여버렸는걸.”

 


사키 “어?”

 

 


어째서 거기서 네가 반응하는건데….
그보다 유이가하마, 그거 말 하는 거야? 말 해도 되는 거야? 뭐 난 말 해줄 친구 없지만.
유이가하마는 에헤헤, 하고 수줍은 듯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유이 “저번 월요일에 돌아갈 때 말이야, 힛키한테 고백했어. 그렇지만 나, 차였어. 그게 힛키, 더 중요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걸.”

 


사키 “엇?”

 


그러니까 왜 네가 반응하는 건데….
그보다 유이가하마, 그거 말하는 거야? 말해도 되는 거야? 난 허락 안 했는데.
유이가하마의 말을 미우라는 외면하지 않은 채 가만히 바라보며, 조용히 듣고 있었다.
유이가하마의 말 뒤에 숨겨진 마음조차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유이 “그러니까, 유미코가 말한, 그런 관계가 아냐.”

 

 


유이가하마는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찬 본인 앞에서 그렇게까지 시원하게 웃으면 역시 좀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그 미소가 아직 본심에서 나온 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찬 다음 날, 유이가하마하는 평소처럼 등교해선, 평상시처럼 지내곤 있었지만, 그 눈매는 약간 붉게 부어있었으니까.
그 말을 받아들인 미우라는 잠시 동안 유이가하마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후에 몸을 약간 돌려 나한테로 시선을 옮겼다.
미우라의 눈빛은 날카롭고, 친구를 찬 남자가 어느 정돈지 판단해보는 것처럼 전신을 노려본다.
우우…. 무서워요….

 

 


유이 “유, 유미코…?”

 

 

그런 미우라를 보다 못한 유이가하마가 말을 건다.
그걸 계기로 한건지 미우라는 시선을 다시 유이가하마한테로 돌린다.

 

 


유미코 “……그래. 뭐, 유이가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걸로 됐고, 히키오 말대로 딱히 나쁜 변화가 아니고, 사귀든지 안 사귀든지, 나-아들과의 관계가 틀어지지만 않으면 그걸로 됐어. 그것 보단, 유이가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거면, 괜찮아….”

 

 

유이 “유미코….”

 


유미코 “…아-, 왠지 피곤해-, 하야토 부활동 끝나는 거 기다렸다가 같이 노래방이라도 갈까. 유이는 어쩔래?”

 


유이 “응-, 난 오늘은, 버스, 려나….”

 

유미코 “그래. 그럼 나-아, 갈게. 또 봐. 유이.”

 

유이 “응!”

 


그렇게 말하곤 걸음을 땐 미우라였지만, 발길을 돌려 내 앞에 와선, 얼굴을 귓가에 댄다.
야 그만 해. 키스 해버린다?

 

 

 

유미코 “이 이상 유이를 울리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하치만 “………어어”

 


내 대답을 듣고 미우라는 나에게서 떨어져선 입가에 작게 미소를 띄우곤 그 자리를 떠났다.
너무 멋지잖아요. 나-아씨.
내가 반해 버릴 것 같다….

 


아마 미우라도 유이가하마의 눈가가 부어 있던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뭐, 여자는 다른 사람의 변화에 민감하니까.
긴 머리의 여자애가 머리카락을 2.3cm 정도 자른 것도 알아채는 그 관찰력….
그거 엘리트 요원이라던가, 스나이퍼에 임명되는 거 아닐까….
아무튼, 그렇기에 이 이상 울리지 마라는 명령이다.
그 미우라가 말 한 이상, 반드시 이 명령은 지켜야겠지. ……아님 내가 죽어.

 

 


유이 “방금, 유미코와 무슨 얘기 했어?”

 

하치만 “……별거 아냐.”

 

유이 “에엣-! 엄청 신경 쓰여! 가르쳐 줘-! 힛키!”

 

하치만 “야, 잡아 당기지 마. 자, 부활동 가자.”

 

진짜아!! 하면서 토닥토닥 두드리는 유이가하마를 뒤로하고, 부실로 걸어가려고 하자 반대편에서 어깨를 잡혔다.

 

 


하치만 “뭐냐….”

 


사키 “뭐냐가 아냐. 잠시만. 너, 그, 조, 조, 조조, 좋아하는 사람, 있다는 거야…?”

 

 


하치만 “…………뭐어….”

 

사키 “그, 그그그그래, 알았어. 바, 반드시 상대도 네가 고백해 줬으면 하고 생각할 테니까. 빠, 빨리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기, 기다릴 거니까….”

 

하치만 “어? 어어….”

 

사키 “그, 그럼 갈게. 다음에….”

 

하치만 “아, 어….”

 

이런 말을 하고는 카와사키는 히죽대면서 경쾌하게 복도를 걷고 있었다.
………뭐야 그 녀석, 고장 난 거야?
그런 카와사키를 나와 유이가하마는 이상한 듯이 바라보고는, 부실로 향했다.

 

 

………아니, 정말이지. 카와사키, 어떻게 된거야……?

 

 

유키노 “어머, 늦었구나.”

 

부실 문을 열자, 예의 인 것처럼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의자에 앉아 한 손에 책을 들곤 그렇게 말했다.

 

유이 “에헤헤-, 유키농 기다렸지!”

 

유키노 “아, 아니 별로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추워-! 하면서 유이가하마하는 유키노시타한테 뛰어든다.
유키노시타는 그게 성가신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지만….
……………나는 가벼운 백합(유루유리)는 좋지만, 진한 백합은 좀….
그렇지만 이 둘이라면 왠지 눈에 좋을 것 같다…..

 


하치만 “……여어.”

 


그걸 옆에서 보면서 나도 내 자리에 가방을 둔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유루유리하고 있던 유키노시타가 흐음? 하고 턱에 손가락으르 대곤 고개를 갸웃한다.

 


유키노 “이상한걸. 어딘가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하치만 “……그거 환청일걸. 병원 가 보는걸 추천해.”

 

유키노 “……또…. 게다가 히키가야인 것 같은 목소리야. 분명 그는 3년 전에….”

 

하치만 “야, 그만 해. 마음대로 날 고인으로 만들지 마.”

 


아무래도 오늘의 유키노시타는 절호조인 것 같다.
변비라도 나은 걸까?
유키노시타는 흐흥, 하고 입가에 미소를 띄운다.

 


유키노 “그렇다고는 하지만 오늘은 꽤나 늦었구나. 혹시 이 곳의 위치를 잊어버린 거니?”

 

하치만 “아니거든. 잘 알고 있어.”

 

유키노 “히키가야. 좋은 걸 알려줄게. 개와 같은 동물은 귀소본능이라고 하는 게 있어. 하지만 너에겐 그게 없잖니. 그러니까, 너는 개 이하란다. 똥개가야”

 

하치만 ‘…………하나도 좋은 거 아니잖냐. 그거….”

 

 


정말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아직 유키노시타는 말을 다 하지 못한 것 같다.

 


유키노 “하지만 네게 있어선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걸.”

 

하치만 “어디가…. 좀 더 했으면 저기 창문에서 뛰어내릴 뻔 했다고.”

 

유키노 “그게, 너에겐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게 없잖니? 그래서 너에게 [똥개]라는 칭호를 주었단다.”

 


위험해. 오늘 이 녀석은 진짜 위험해.
하지만 엄청나게 재미있는 듯 하다.
사람을 말로 괴롭혀놓고는 즐거워하다니, 근성이 삐뚤어져도 너무 삐뚤어졌잖아.
그리고 유이가하마도 유이가하마다.
이렇게 말을 주고 받는 걸 보면서 싱글싱글 웃고 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린 걸 보면서 즐거워하다니, 근성이(이하 생략)

 

 

유이 “응, 거기까지-! 오늘은 유키농의 승리-!”

 

하치만 “이거, 승부였던 거냐…. 나, 앞으로도 지기만 할걸…. 진짜로.”

 

유키노 “유이가하마, ‘오늘은’이라고 하면 어제는 내가 진 것 같잖니. 아무튼, 승리라면 그걸로 좋지만….”

 

승부하는 일이 되면 불타오르는 여자네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유키노시타가 끓여준 홍차를 셋이서 마시고, 몇 번인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동아리를 끝냈다.
겨울의 추위도 지금의 이 공간만큼은 차갑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동아리가 끝나고.
밖은 이미 어둠에 삼켜져, 하늘엔 달이 뜨고 그 아래를 걷는 사람의 하얀 숨을 바람이 가로채간다.
그런 건조한 밖을 현관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 이렇게나 추울 것 같은 곳을 자전거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몇 분 후의 미래를 생각하면 각오를 다져야만 했다.
가방에서 장갑을 꺼내 착용하곤 머플러를 감는다.
겨울의 추위여! 정정당당하게 승부 하잣!!
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며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 뒤에서 머플러를 당겼다.
………누구야, 지금부터 나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야만 한다고.
뒤를 돌아보자, 거기엔 만면의 미소가 나를 맞아주었다.

 

 


이로하 “서언-뱃”

 

 


에헤헤헤- 하고 웃는 잇시키의 얼굴을 보자 입가가 풀어질 것 같다.
그렇기에 근육이 풀어질 것 같은 얼굴에 힘을 주고, 지극히 평온함을 유지하며 잇시키를 보았다.

 

 

하치만 “………뭐야 잇시키냐.”

 

이로하 “뭐야 라니, 너무해요! 모처럼 선배의 귀엽고 귀여운 여친이 말을 걸고 있는데욧-.”

 

하치만 “가짜지만 말이지.”

 

이로하 “…귀엽다는 건 부정 안 하시는 건가요?”

 

하치만 “어? 앗, 아니, 그건, 뭐, 응. 어….”

 

이로하 “………”

 


결국 둘 다 얼굴이 새빨개진다.
큭, 내가 뭐라고 말한 거람!
하지만 잇시키는 정말로 귀엽다. 언행은 좀 약았지만 얼굴이 귀여운 건 확실하다.
대체로, 못생겼다고 해도 본인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뭐, 난 신사니까.
신사적으로 행동할 그런 상대가 없지만서도….

 

 

하치만 “…………그, 그래서, 무슨 일인데? 오늘도 같이 돌아갈,까?”

 

이로하 ‘………네네, 네엣! 당연하죠!”

 


하치만 “……그래. 그럼 난 자전거 가져 올 테니까 먼저 가서 기다려 줘.”

 

 

그렇게 말하고 내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다시 잇시키한테 머플러를 잡아당겨졌다.

 


하치만 “왜…?”

 

이로하 “……이제 슬슬 괜찮지 않아요?”

 

하치만 “…뭐가?”


질문에 질문으로 질문을 되돌린다.
잇시키는 헤아려요…라고 말하고 싶은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지만 굳이 먼저 말하지는 않는다.
아니, 그게, 부끄럽잖아….

 

 

 

이로하 “…여러 사람들이 본다고 해도요, 괜찮잖아요. 당당하게 보여주면 되잖아요….”

 


하치만 “………”

 


생각대로다.
하지만 미안한데 잇시키. 나는 여기서 꺾일 수는 없어.

 

 

하치만 “……우리들은 그렇게 당당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어필 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니잖아. 지금 우리는 가짜니ㄲ---”

 

이로하 “아아아아아! 정마알! 가짜, 가짜, 가짜, 가짜! 제가 뭐라고 말해도 선배는 그 말뿐이네요-!!”

 

하치만 “이, 잇시키씨?”

 

이로하 “그렇게 가짜, 가짜, 가짜하구 말하시면 저요, 초초해진다구욧!!”

 

하치만 “………응, 뭐라고?”

 


아니, 거기서 그 말을 기다렸다! 같은 얼굴을 하면, 이렇게 밖엔 되돌려 줄 수 밖에 없는 거지?
아아, 나도 드디어 코다카 선배의 친구가 되는 건가-.
그보다 어째서 요조라, 남의 집에서 모나피-하고 있는 거야? 이 하치만, 무심코 몸을 숙입니다.

아니, 그게 생각해 보라고.
내가 우리집의 욕실을 열었더니 미소녀(토츠카)가 내 이름을 부르며 모나피하고 있다 던지-.
이제 그거, 몸을 숙인다던가 할 문제가 아냐.
나도 그 자리에서 모니피 해 버릴 거다.
우리집 목욕탕에서 토츠카가 모나피, 우리집 목욕탕에서 토츠카가 모나피……구, 구후후후후, 와았습니다아아아!!
그런 나의 천재적인 망상도 잇시키의 말에 갑자기 지워져 버렸다.

 

 

 

이로하 “바, 바바, 방금 껀 아니에요! 잊어 주세요! 그보다 그럴 때는 흘려 들어주세욧! 그래서 선배는 외톨이에다 눈이 썩어있는 거라구욧!”

 


하치만 “어째서 내가 디스당하고 있는 건데….”

 


진짜 어째서 이 녀석들은 하나하나 나를 디스하지 않으면 기분이 안 풀리는 거야?
나를 좋아하긴 해? 좋아하는 상대 앞에선 솔직하지 못해서 마음과는 정반대의 말을 해버리는 거야? 뭐야 그 츤데레 템플릿. 이 세상은 츤데레 투성이잖아….
앗, 하지만 데레는 없군. 그렇다면 츤 폭풍이네. 뭐야 그거 살기 힘들어………orz.

 

 

이로하 “라고 할까요, 그럼 선배는 이 관계가 만약에 가짜가 아니게 되면요, 당당하게 같이 돌아가 주시는 건가요-?

 

하치만 “…… 아니겠지.”

 

이로하 “하아, 안되겠다. 이 선배….”

 

하치만 “시꺼. 자, 몸 차서 또 감기 걸릴라. 빨랑 가자.”


이로하 “그 때엔 또 간병 해 주세요오”

 

하치만 “………글쎄다.”

 

 

 

무후후-하며 웃는 잇시키를 두고 서둘러 자전거를 가지러 간다.
아, 제길….

 


두근이 가슴가슴대는 내가 한심해….

 


이로하 “선배-애”

 

하치만 “…………”

 

이로하 “무시 하시는 거에요?”

 

하치만 “……왜?”

 

이로하 “아무것도 아니에요-옷”

 

하치만 “………”

 


학교에서 나오고부턴 계속 이런 상태다.
쓸데없이 이름을 부르면서 반문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란 말만 한다.
그래서 무시하기로 정한 게 조금 전.
그렇다고 해도 특별히 이상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래서 더 이상하다고 생각이 되는데.
에헤헤- 하고 웃으며 옆을 걷고 있는 잇시키를 흘깃 보고, 한숨 섞인 숨을 뱉어낸다.

 

 

하치만 “잇시키.”

 

이로하 “네에?”

 

하치만 “너 이번 주는 3일이나 나하고 같이 집에 돌아가는데, 지루하지 않냐?”

 

이로하 “응응? 그 말은요, 그러니까 선배는 저하고 있는 게 지루하다, 고 하시는 거에요?”

 

하치만 “그게 아냐. 반대다. 자랑은 아니지만 난 내가 먼저 화제를 꺼낼 수 없으니까, 이렇게 너를 데려다 주는 동안, 넌 지루하지 않아?”

 

 


꽤나 솔직한 질문이었다.
아니, 잇시키의 호의는 지나칠 정도로 충분히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상대에게 호감을 품고 있어도, 이야기를 하면 지루하거나, 매번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해서 자신이 가진 소재가 없어지면 다시 침묵…. 여기에 진저리 나서 헤어진다는 건, 자주 듣는 이야기다.
커플끼리 가는 유원지도 그 중 하나다.
그런 일이 리얼충들 사이에서도 다반사처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외톨이인 내라면 더욱 그렇겠지.
하지만 내 질문에 잇시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로하 “선배는…… 역시, 바보죠?”

 

 


하치만 “뭐?”

 

나 방금 뭔가 바보 같은 말을 했나?

내가 으으음…하면서 방금 전에 내가 했던 말을 검토하고 있자, 잇시키는 쿡쿡 웃으면서 다시 앞을 본다.

 


이로하 “그게요, 딱히 선배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바라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평소에 누구와도 말 할 수 없는 선배한테 그런 걸 요구하는 게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가혹하잖아요!”

 

하치만 “………네 말이 가혹한 건데….”

 

 


뭐, 그건 일리 있다.
외톨이나 니트, 히키코모리 같은 평소에 햇빛을 쬐지 않는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타인과 대치했을 때, 좀처럼 말하지 못하는 건 그런 경험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 커뮤장애 같은 게 아니다.
그런 같다 붙인 것 같은 병명을 인정 할 것 같냐!
그저 우리에게 햇빛을 쬐게 해 주지 않는, 이 어둠에 물든 사회가 잘못된 거다!! (책임전가)
그건 그렇고 나는 잇시키한테 한가지, 다시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하치만 “그리고 잇시키. 나는 누구와도 말 할 수 없는 게 아냐. 말 하지 않는 거다. 나는 고고한, 한 마리 늑대,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인 외톨이니까. 그 부분은 틀리지 마라.”

 


이로하 “……헤에-.”

 


진심으로, 진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흘려버렸다.
큭, 이러니까 리얼충은!!
크흠, 하고 잇시키는 작게 헛기침을 한 후, 이야기를 계속한다.

 

 


이로하 “선배는 저랑 해변에서 석양을 배경으로요, ‘서-언배~ 기다려 주세요오~, 아하하하하’같은 게 하시고 싶어요?”

 

흠. 상상해본다.
해변에서 나를 쫓아오는 밀짚 모자와 흰색 원피스 차림의 잇시키.
음….이건 꽤나….
그리고 그런 잇시키한테 쫓기는 나….
나도 만면의 미소와 썩은 눈동자로 ‘빨리 와, 잇시키이! 하하하하하핫’ ……위험해, 기분 나뻐….

 

 


하치만 “………아니네, 진짜로.”

 

이로하 “무엇을 상상하셨던 건가요….”

 


크흠, 이번에는 나의 헛기침.

 


하치만 “그런데 넌 어떤데? 역시 그런 뭐랄까, the 청춘! 같은 거 동경하고 있는 거 아냐?”

 


이로하 “응-, 저도 지금은 그런 거 전혀 생각하지 않네요-. 제가 지금 사귀고 있는 건 선배니까욧!”

 

하치만 “………왠지 미안하네. 네가 동경하던걸 부숴버려서….”

 

이로하 “엣?! 앗,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요옷! 저기,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응-, 그, 선배하고 있는 건, 그런 생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요, 저한텐 행복, 하달까요, 뭐랄까요………서, 선배?”

 


내가 침묵하고 있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잇시키가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보지마. 진짜로 지금 보지마.
진짜로, 분명히, 얼굴 새빨갈 거니까 보지마!
그런 나의 옆모습을 보고, 자신이 지금 말한 걸 머리 속에서 되새겨본 것인지, 잇시키의 얼굴도 순식간에 붉게 물든다.

 

 

 

이로하 “바, 방금 말은요, 그게, 그러니까….”

 

아와와와, 하고 허둥대고 있는 잇시키를 곁눈질로 보고 있으면 왠지 이렇게 수줍어 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져서, 무심코 입가가 느슨해 질 것 같다.
아니, 사실은 느슨해져 있었던 거겠지.
그걸 잇시키가 지적했으니까.

 

 

이로하 “잠깐만요, 왜 웃으시는 거에요-!”

 

하치만 “안 웃었어.”

 

이로하 “선배가 히죽대고 있으면 기분 나쁠 뿐이니까요, 그만 하세요. 저주 받을 것 같아요.”

 

하치만 “너무해….”

 

 

 

그건 심하잖아?
내 미소를 본 사람은 저주받는다니, 어둠의 조직에서 정식으로 제안을 받는다거나 하는 거 아냐? 나.
다신, 오컬트 같은 건, 말하게 두지 않겠다!
크흠, 하고 잇시키가 다시 헛기침을 했다.

 

 

이로하 “아무튼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선배하고 있으면서 아무 말 없는 건요, 별로 신경 쓰지 않구요, 오히려 OK, 웰컴! 언제든지 와라! 라는 거에요!”

 


하치만 “어, 어어….”

 


그 후, 잠시 동안 침묵이 두 사람을 감쌌다.

 

 

 

이로하 “그럼 선배, 이쯤에서 가 볼게요.”

 

하치만 “………그래”


언제나 헤어지는 곳.
평소보다 조금 더 느릿느릿하게 걷고 있었을 텐데, 정신이 들면 벌써 이 곳이다.
……왠지, 빠르네….
그런 걸 생각하면서도 걸어가는 잇시키의 등을 잠시 동안 바라보면서, 나도 집으로 가는 길에 오른다.

 

 

 

 

……이대로 괜찮은 건가?

 


잇시키와 헤어진 후, 몇 번이나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잇시키와 지금의, 임시 연인의 관계가 되었을 때부터.
처음에는 내가 답을 낼 수 있을까, 라고 하는 게 걱정이었다.
다음엔 내가 좋아한다고 하는 것을 이해 할 수 있게 될지 아닐지.
그리고 지금은,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언제 전할까.
그러 일로 고민하고 있다.
이런 경험은 전에도 있었다. 오리모토와의 일로.
그리고 그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겼다. 라고 말하면서 나는 다시 도망치고 있다.

 

 

잇시키와 헤어지고 나서 약 10분.
묵묵히 자전거를 끌면서 걷고 있던 다리는 멈춰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지금, 내 다리는 멈춰있는 거지?
나는 기본적으로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일 것이다.
대중한테 상식이라는 것을 무리하게 주입받곤, 거기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놈들과는 다르다.
그런 놈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탓하고 남의 힘에 의존하여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는 주제에 매번 입밖에 내는 말은 자신이 훌륭한 사람인 듯 한 단어다.
자신이 질 것 같으면 즉시 감정론을 들어선 논리의 벽을 박살낸다.
그런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놈들은 내가 불편하게 여기는 인간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성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건 그, 유키노시타 하루노에게 이성의 괴물이라고도 말해진 적이 있다는 걸로도 증명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도 지금의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그 공원에 와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항상 억지이론이라는 이름의 일그러진 논리를 펼치고, 셀 수 없는 트라우마를 바탕으로 이성의 화신이 되었을 내가, 지금 이렇게 그런 벽을 부수고 여기까지 왔으니까.
잇시키한테, 고백 받았던 공원.
아니, 실제로 처음 고백 받은 건 그 헤어지는 길 근처였는데.
하지만 잇시키와는 아까 헤어졌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핑계가 아니다.
어째선지 여기에 와 있었던 것이다.

 

 

 

 

 

----------분명, 저 벤치에 앉아있는 그녀도-----

 


공원 출입구에 대충 자전거를 세우고, 벤치에 자리잡고 있는 그녀, 잇시키 이로하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면서 문득 생각한다.
이런 때는 뭐라고 하면서 말을 거는 게 정답인 거지?
‘여어’? 으음, 잘난 척 하는 것 같은데.
‘얏하로-’? 어딘가의 비치가하마냐고.
음. 역시 이럴 땐 궁금한 걸 솔직하게 물어보는 게 무난하겠지.

 

 


하치만 “뭐하고 있어?”

 

이로하 “히잇?!?!”

 

 

잇시키는 내가 말을 검과 동시에 몸을 경직시키곤, 기기기기긱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음, 아무래도 난지 몰랐던 것 같다.

 

 


이로하 “서, 선배?! 놀래키지 마세요!!”

 

하치만 “아니, 내가 걸어오는 소리 났잖아….”

 

이로하 “전혀 안 났어요! 아아, 정말, 진짜 무서웠다구요-.”

 

하치만 “발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스텔스 힛키 강력한 거냐….”

 

이로하 “그, 그렇다고 할까 말을 거는 게 너무 서투르잖아요. 상대가 알지도 못하는데 갑자기 의문으로 말을 걸다니, 그저 안타깝기만 한걸욧”

 

하치만 “……미안….”

 


하면 안 되는 거였나. 그렇게 말 거는 건….
일단은, 여러가지로 시뮬레이션 했는데….
뭐, 이전에 자이모쿠자도 ‘아무리 본관이라도 그건 좀 깨는 레벨’이라던가 뭔가 하고 말했었지……. 아아, 그 돼지녀석 때리고 싶다….

 

 

 


이로하 “……그래서요, 선밴 왜 왔어요-?”

 

하치만 “아-, 아니, 뭐, 그냥, 그거다. 왠지 모르게? 같은 거.”

 

 


내 대답이 석연치 않은 듯, 빤히 나를 쳐다본다.
뭐, 이게 대답이라고 하기엔 역시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채로 여기에 온 것 또한 사실이다.

 

 

 

하치만 “아니, 정말로 나도 모르게-라고 할까, 정신이 들어보니 여기에 있었다. 같은 그런 느낌인데.”

 

내가 사실을 말하자 잇시키는 얼른 자신을 부둥켜 안는다.

 


이로하 “영혼이라던가 하는 그런 거에요? 잘 생각해보세요. 저하고 해어진 뒤에, 차에 치이거나 하시진 않았어요?”

 

하치만 “아니거든. 확실하게 저기에 자전거도 두고 왔으니까.”

 

이로하 “정말로 거기에 자전거가 있다면 좋겠네요….”

 

 

 

야, 하지마. 불안해지잖아.
평소에 좀비라던가 하고 불리고 있으니까, 살짝 걱정되잖아.
눈이 썩고, 게다가 리얼 좀비라니, 진짜 위험하니까…. 엣, 진짜 아니지?

 

 

그 후, 어째선지 찾아온 침묵에 기분이 나빠져서, 나도 벤치에 주저 않았다.
잇시키가 아무런 말도 할 기색이 없었기에 내가 말을 걸었다.

 

 

 

하치만 “그래서, 너야 말로 왜 여기 있는데?”

 

이로하 “선배한테 제 행동의 이유를 하나하나 알려줘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하치만 “나만 이야기하는 건 손해 본 기분이니까. 무슨 일이든 WIN-WIN이 바람직하잖아? 그러면 전쟁도 일어나지 않을 걸.”

 

이로하 “또 선배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이론인가요.”

 


아니 알고 있잖아.
뭐 실제론 그렇지 않으니까 지금도 내전이라던가 그런 게 일어나고 있겠지만. 플레어단의 보스가 말했다고.
뭐, 전세계의 사람들이 외톨이가 되면 전쟁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나의 초 완벽이론에 도달할 수 없는 시점에서 안되지만.
나의 세계를 이끌어갈 사람으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자, 잇시키는 하얀 숨을 토해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로하 “저도, 왠지 모르게, 요….”

 

 

어딘가 여운을 남긴 듯한 말에 나 역시 빤히 잇시키를 쳐다본다.
그 시선을 눈치채곤, 쿡쿡하고 웃었다.

 

 

 

이로하 “…………사실은요, 선배와 헤어진 후, 늘 여기에 와서 20분 정도 멍하니 있는걸요-. 왠지는, 잘 모르겠, 지만요….”

 


하치만 “…………”

 

다시 찾아온 정적이, 겨울 추위와 맞물려 내 안에 강하게 쌓인다.
…………그런, 거겠지.
이 녀석의, 지금의 감정의 원인이 나라는 게 명백하다.
아니, 만약 그게 아니더라고 해도, 이대로 이 관계를 지속하면 결국 문제가 찾아온다.
미루면 미룰수록, 심각해진다….

 

 

이로하 “왠지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마치 앓고 있어요- 어필을 하고 있는 사람 같아서 싫으시죠- 죄송해요.”

 

하치만 “그렇진 않아….

 

이로하 “그럼, 다행이지만요….”

 

하치만 “아아….”

 


임시(가짜) 연인관계.
솔직히, 기분은 좋다.
나는 지금 잇시키한테서 일방적으로 호의를 받고 있다. 그렇기에 임시관계다.
잇시키의 그 마음이 식어버리면 거기까지지만, 이 관계가 되어서 이 녀석의 태도나 행동을 보고 있으면 그런 일은 지금으로서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몇 년이 지나도 내 말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까지 있다. 뭐야 그거 나 엄청 사랑 받잖아….
아니, 농담할 때가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잇시키를 상처 입히고 있는 것이다.
잇시키에게 지금의 이 관계는 답답할 것이다.
흔히 말하는 친구이상, 연인 미만이 지금의 우리들이다. ……친구 없으니까 친구 이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치만 “………저기, 잇시키….”

 

이로하 “네?”

 

겨울 밤은, 주변은 어둡고 공기는 차며 세상에서 소리가 없어진 것처럼 매우 조용하다.
그렇기에 우리들의 목소리는 아무리 작게 중얼대도, 서로에게 들릴 것이다.
마치 세계 그 자체가 우리들이 나누는 말에 귀를 곤두세우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까지도 생각된다.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잇시키의 목소리에 감싸주는 것 같은 상냥함이 있는 것도 알 수 있다.

 

 

하치만 “………네가 말한 거, 내 나름대로지만, 꽤 진지하게 생각해 봤어.”

 

이로하 “제가 말 한 거요?”

 


으음? 하고 턱에 손가락을 대고는 생각하는 잇시키.
헤아려 줘. 나 스스로 말하는 건 창피하니까.
하지만 잇시키는 뭐에 대한 건지 잘 모르는 것 같이, 응….하고 소리를 내며 고민하고 있었다.

 

 

하치만 “……그, 저, 그거다. 조, 조, 조,좋아, 한다고 하는 기분이 어떤 건가 하는 그런 거.”

 

이로하 “아, 그거 였나요. 왠지 선배하곤 이야기 많이 했으니까요-, 어떤 이야긴지 몰랐어요.”

 

 

 

후우, ‘좋아한다’는 단어를 말하는 데 조금 땀이 흘렀다고, 나의 초식력도 상당하군.
일본에선 지금, 초식계 남자가 인기 있지?
나도 아마 그 분류에 들어가니까, 즉, 나도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오늘부터 나도 인생이 장밋빛이구나- (먼 눈)
………………초식남의 어디가 좋은 건데?
실제로 내가 초식계 남자로 분류되어있다고 치면, 내가 여자라면 나 같은 놈은 절대로 싫다. 죽어도 싫다.
그보다 뭐냐고 ~~계, ~계라니….
뭐든지 전부 분류하지 않아도 되니까.
뭐? 조만간 도감에 “인간과, 올리브 오일계’라고 적히는 거야?
……………뭐냐고 올리브 오일계 남자는………미친 것 같은 느낌은 나만 그런 건가?


하치만 “그래서, 네가 말했던 ‘다른 조, 좋아하는’거 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의 대답이 나왔어.”

 

이로하 “그런, 가요……… 그럼, 들려주실 수 있나요?”

 

하치만 “………그 전에, 너한테 말해야만 하는 게 있는데….”

 

이로하 “뭔가요?”

 


잇시키의 머리에는 ?표시가 떠 있었다.
음, 역시 모르는 것 같다.
나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입을 열었다.

 


하치만 “………유이가하마한테서, 고백, 받았어….”

 

이로하 “엇”

 

하치만 “미안. 좀 더 빨리 말했어야 했는데….”

 

이로하 “…………”

 

하치만 “……그래서, 말인데, 그, 나는----------”

 

이로하 “듣고 싶지 않아요!!”

 

하치만 “---------유이가ㅎ………엇?”

 

 


갑자기 들려온 고함소리에, 평소와 다르게 놀라고 만다.

엇? 왜 고함친 거야?
잇시키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잇시키는 고개를 숙이곤 세게 움켜 쥔 손이 무릎에서 조금씩 떨고 있다.
……………이거 설마….

 

 

 


이로하 “듣고 싶, 지 않아요…. 결국엔, 역시 계속 같이 있고, 계속 선배를 생각했던 유이가하마선배를 선택하는 거네요…. 그야 그렇겠네요. 저 같은 건, 요 근래에 선배와 알게 되었을 뿐이구요, 큰 추억이라고 해도 학생회 선거나, 크리스마스, 이벤트, 간병, 해 주셨던, 거, 정, 도, 구요…흑….”

 


하치만 “저기, 잇시키? 나는 말이지----.”

 

이로하 “그만 하세요! 제게 신경 써 주셔서, 지금까지 아무 말 안 하셨던 거죠. 아하하, 바보 같네-나. 어째서 빨리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그러니까, 그러니까요……… 죄송해요. 돌아갈게요.”

 

 

엣? 응? 어?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뇌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내가 얼이 빠져있는 동안, 잇시키는 일어서서 내 앞을 지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 손이 완전히 지나가려고 하던 잇시키의 손을 움켜쥐었다.
이럴 때, 분명히 내가 주인공 같은 무언가나, 혹은 마왕 같은 그러한 이야기의 메인 캐스트였다면 손을 잡곤 끌어안거나, 그대로 입술을 빼앗거나 했겠지.
하지만 나는, 히키가야 하치만은 그런 멋진 녀석이 아니다.
저속하고, 타인에겐 손쉬운 녀석이며, 약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하치만 “기다려.”

 

 

이로하 “놔 주세요.”

 

하치만 “아직 이야기 하는 중이잖아.”

 

이로하 “도중이어도 듣고 싶지 않아요! 유이선배가 선배를 좋아한다는 건 전부 알고 있으니까요! 선배가 유이선배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도 보고 있으면 안다구요!! 그래도 저는, 선배한테 고백했어요! 이런 가짜 연인이어도, 저는 기뻤어요! 하지만, 하지만 역시 진정한 연인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요….”

 

 


하치만 “……………”

 


잇시키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새어나오는 오열.
이것 잇시키의 성대한 지레짐작이다.
이야기의 흐름에서 보면, 내가 유이가하마를 찼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평소의 잇시키라면 그 정도는 알았을 거지만.
실제로 알아채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잇시키는 다르다.
이미 이런 이야기의 흐름이라고 하는 과정을 비약하곤, 혼자서 마음대로 답을 내려버릴 정도로 그녀의 마음엔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잇시키를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건, 바로 나다.
고백을 했을 때부터 잇시키는 가만히, 내 대답을 기다려주고 있었다.
분명 불안과 기대, 안타까움, 답답함 등 다양한 감정을 품고는 내 대답을 기다려 주었던 거다.
정말이지, 비치처럼 보이는 여자애는 의외로 한결같구나.
지금 우리들, 두 사람을 감싸고 있는 공기는 확실히 어두울 텐데도, 왠지 감동하고 있는 내가 있다.
무심코 입가가 풀어질 것 같은걸 참았다.
그리고 잇시키의 손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담고는, 일어선다.

 

 

 


하치만 “됐으니까 들어.”

 


이로하 “읏……흑….”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울고 있는 잇시키를 위해서? 그것도 있겠지.
이 관계를 이끌어준 녀석들을 위해서? 그것도 있다.
하지만, 그래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이다.
내가, 내가 이 손을 놓고 싶지 않으니까.


왜냐면------

 

 

하치만 “잇시키. 나는 너하고도, ………아니 너하고는, 가장, 진실 된 것을 원해….”

 

그래서 말하는 거다.
용기를 쥐어짜라. 나.
지금까지 특별히 아무것도 해오지 않았잖아.
확실히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봉사부에 억지로 들게 되고는, 그녀들을 만나서, 바쁜 한 해였다.
하지만 그때까진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힘이라면 아직 남아있어.
용기라면 마음 속에서 자고 있다.
그것을 지금 쓰는 거다.
내가-------원했던 것을 위해서-----.

 

 

하치만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와……진실 된 관계가, 되어 줘…… 그러니까………사, 사귀어, 줘.”

 

 

잇시키의 손을 놓고는 돌아본다.
나 스스로가 이런 말을 다시 말할 날이 올 거라는 것을 뇌 자체가 포기하고 있었던 것 같아서, 잇시키의 눈을 보면서 고백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말했다.
간신히, 말할 수 있었다.
그러는 잇시키는 현상에 머리가 따라잡지 못한 것 같이, 에? 헤? 어라? 후에? 라던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도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이로하 “어? 하지만…어라? 선배, 유이선밴…요?”

 

하치만 “유이가하마는, 그, 거절했어….”

 

이로하 “헤? 에, 하지만, 어째서요……?”

 

 


그걸 물어보는 거야?
좀 전에 내가 말한 걸 잊어버린 걸려나?
정말이지, 이 바보☆
같은 걸 생각하고 있을 여유도 없이, 자신의 얼굴에 피가 몰리는 걸 느낀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들곤, 그 물음에 답한다.

 

 


하치만 “…………그건 그러니까, 그거다. 그…………뭐, 다른, 사귀고 싶은, 녀석이, 있었, 으니까….”

 

이로하 “그럼, 훌쩍, 그럼, 좀 전까지는, 전부, 제, 흑, 착각, 이라는, 건가요?”

 

하치만 “그러니까 이야기를 들으라고 했잖아….”

 

 

울음을 그쳤을 잇시키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여간다.
몇 번인가 손등으로 닦아도 넘칠 듯이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곧 포기했는지 타고 흐르는 눈물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우와아앙-하고 큰 소리로 울면서 내게 안겨온다.

 

 

이로하 “선배~~~~애!!! 다행이야, 다행이에요!!!”

 


나는 처음으로 흐느껴 우는 잇시키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안겨오는 잇시키의 등에 손을 올리고 부드럽게 안았다.

 


하치만 “자.”

 


그렇게 말하곤 벤치에 힘없이 주저 앉아있는 잇키에게 공원 출입구의 자판기에서 산 따듯한 음료를 건낸다.
그 후 한동안 서로 안고 있었지만, 잇시키가 우는 소리를 들은 인근의 아줌마가 무슨 일인지 보러 왔기에 강제로 떨어져야 했다.
…………좀 더 그 안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는데……그 아줌마, 언젠가 반드시 때려줄 거다….

 

 

이로하 “고맙습니다-.”

 


성대하게 울었던 탓인지 아무래도 잇시키는 몸에서 힘이 빠져 버린 것 같고, 힘없이 벤치에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나서 지금.
서로 목을 축이며 한숨을 돌렸다.

 

 

하치만 “진정 됐냐?”

 

이로하 “네, 그, 저기, 좀 전엔 죄송해요. 뭔가 엄청난 착각을 해버려서요….”

 

하치만 “별로 신경 안 써. 대체로 사과해야 하는 건 나지. 미안해. 유이가하마의 일도, 그, 마음을, 전하는 것도, 늦어버려서….”

 

 


이로하 “아뇨,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하니까욧!”

 

하치만 “…그런가.”

 

이로하 “넷, 그래서요 선배, 선배가 찾아낸 ‘좋아하는’건, 어떤 거에요?”

 

하치만 “……그거, 진짜로 말 안 하면 안 되는 거야?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잖아? 그럼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이로하 “안 되요! 절대로, 절대로 안 되요! 정마알! 자, 확실하게 말해주세요!”

 

 


으-음. 아무래도 이 여자애는 나에게 모욕을 받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른바 이게 말해보렴(이성에게 야릇한 말을 하게 만들기)인건가….
싫어, 이 여자. 그런 버릇을 가지고 있다곤 못 들었어!
나, M이 아닌데….
아니, 매일 유키노시타한테서 훈련 비슷한 조교를 받고 있으니까, 이젠 M이 아니라고는 단언할 수 없을지도. 무서운 유키노시타….

 

 

하치만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이로하 “그래도 괜찮아요. 그래서요 선배, 선배에게 ‘좋아한다’는 건 어떤 건가요?”

 


이미 고백도 했다.
아무튼 그 때는 나도 조금 감정적이었기에 말 할 수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냉정해져서,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으면 역시 부끄럽다.
하지만 거기서 제자리 걸음하고 있을 수 있었던 때는 이미 지났다.
이젠 그저 나아가는 것 말고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녀의 시선에서, 말에서, 마음에서, 난 이제 도망 칠 수 없다. 등을 돌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답을 그저 말로 옮긴다.

 

 

 


하치만 “……잘 모르겠어……라는 게, 답이야.”

 

잇시키는 내 대답에 동요하지 않고, 말을 끊지도 않은 채 그저 듣고 있어 준다.
그것 만으로도 왠지 기분이 가벼워져, 말이 쉽게 할 수 있었다.

 

 

하치만 “나는 네가 그 때 말했던 것처럼, 연애적인 호의라는 건 ‘그 상대와 언제나 함께 있고 싶어’와 같은 거라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유이가하마한테 고백 받았을 때 알았다.”

 

아주 약간, 틈을 둔다.
함께 있으면 즐겁다던가, 계속 같이 있고 싶다던가, 그런 게 연애적인 ‘좋아하는’것이라면 나는 이미 봉사부의 그 두 명도 좋아(사랑)하고 있다는 게 된다.
그리고 그렇다면 토츠카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코마치한테 사랑하고 있다는 게 된다.
하지만 잇시키에 대해서는,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뭔가 달라서, 분명히 거기에서 차별화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치만 “그게 ‘좋아하는’거라면 나는 이미 유이가하마나 유키노시타를 연애적으로 ‘좋아하는’ 게 되.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이제 말로는 표현 할 수 없어. 적어도 나한테는.”

 


킬라킬에서도 말했잖아?
이 세계는 잘 모르는 걸로 넘쳐 난다고.
그 잘 모르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건 그 녀석의 소중한 것이 될 것이다.
논리나 이성이나 이치의 범위로는 설명 할 수 없는 것.
그런 것이 분명, 기만으로 넘쳐나는 세상 속에 숨겨진, 아니 숨을 죽이고 있는 진실이며, 진실 된 것이겠지.
아니, 진실된 것이기 때문에, 그건 말이나 논리나 이성으로 표현되어서는 안 되는 거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고 해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나는, 간절히 바란다.

내가 찾아낸 잘 모르겠는 건, 세계 전부가 아니다.
딱히 이런 세계를 지키고 싶은 건 아니니까.
오히려 언제나 나에게는 힘든 이런 세계는 적이기도 한 그런 느낌도 든다.
……세상을 적으로 돌린다던가, 나 엄청나게 멋지군….
나는 세계를 지키고 싶다던가 하지 않고, 바꾸고 싶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바꿀 수 있는 힘 따위도 없고 말이지.
종종 어른들이 말 하잖아?
네 인생은, 네가 주역이라고. 말야.
그 말을 종종 착각 해버린 녀석들이 범죄 같은 걸 일으키는 거겠지만, 그런 녀석들한테 내가 진리를 가르쳐 주지.
네 인생에서는 확실히 네가 주역이다. 하지만, 세상의 주역은 네가 아냐.
이야기가 옆으로 샜지만 결국 내가 찾아 낸 것은 약 30cm정도 떨어진 곳에서 다소곳이 앉아있는 소녀다.

 

 


하치만 “뭐, 그거다. 문득 드는, 어쩔 수 없는 그런 기분이 되어버리는 그런 거. 정말,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이런 대답이라 미안해.”

 

 


이로하 “아뇨”

 


그렇게 대답하며 잇시키는 일어서서 내 눈 앞까지 걸어온다.

 


이로하 “대답, 아직 안 했잖아요….”

 

하치만 “어? 아니, 네 마음은 저번에 들었고, 그리고, 충분할 정도로, 전해졌는데?”

 

이로하 “아뇨, 그건 그거 구요. 이건 선배가 낸 대답에 대한 대답이에요! 들어 주시겠나요?”

 

하치만 “……아아.”

 

이로하 “……저도, 저도 선배가 정말 정말 좋아요! 그러니까요, 잘 부탁드려요.”

 

하치만 “……나야 말로.”

 

서로 약간 수줍어하면서도, 풉, 하고 웃음이 난다.
이걸로 우리의 가짜 관계는 끝났다.
인생이라는 건 싫은 일, 힘든 일이 많다.
이렇게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하는 청춘의 한 가운데에 있을 인간이 이런 식으로 인생이라고 하는 걸 평가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세상은 잔인하다.

………인생은 쓰니까, 커피 정도는 달아야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괴로운 일뿐이기에, 점점 더 트라우마를 만들어 갈 거고,
나는 사람의 성장이라던가, 변화라던가, 그런 걸 믿지 않는다.
그 무엇도 그렇게 쉽게 되진 않는다.
노력을 해도 보상받지 못하고, 정의는 진다.
HONDA의 CM에서도 이런 말 했었지.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도 계속 MAX커피를 마셔야겠다.
하지만------하지만---------

 

 


내 눈앞에 손이 나타난다.

응? 하고 잇시키의 얼굴을 바라보자, 미소를 돌려준다.

 

이로하 “돌아가요, 선-배애”


하치만 “……어어.”


이로하 “모처럼 사귄 거니까요, 손 잡아욧”


하치만 “싫어”


이로하 “즉답!? 잠깐만요, 그거 너무해요-! 정말! 에잇!”

 

일어서 있는 나의 손을, 잇시키가 꼭 잡는다.

 


하치만 “………부끄럽잖아.”

 

이로하 “이제 진짜 연인이니까, 괜찮잖아요-.”

 

하치만 “……그럼, 어쩔 수 없나….”

 

이로하 “네엣!”

 

 


그 손을 나도 잡는다.
서로 얽힌 손, 전해져 오는 체온.
왠지 가슴 근처가 뜨거워진다.
인생은 쓰니까, 커피 정도는 달아도 돼…….
하지만------하지만-----

 

 

 

 

------------이 녀석과 같이 있을 때엔, 조금 덜 단 게,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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