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가야, 주말에 어디라도 놀러 가자!”
이제서야 하루노씨의 집사노릇에 익숙해진 넷째 날, 저녁밥을 먹고 난 후 하루노씨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거절합니다.”
그도 그럴게, 주말엔 프리큐어 보거나, 집에서 빈둥빈둥대야 해서 바쁜걸.
뭐 주말과 평일의 차이라고 해도 프리큐어가 하는지 안 하는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만.
“유키노나 가하마를 불러서 가자! 그렇게 정했다면 내일 히키가야가 두 사람한테 그렇게 말해 둬!”
“아뇨아뇨, 제 말 듣고 계신가요? 저는 분명히 거절했잖아요?”
“이 나에게 부정형은 없는걸, 히키가야도 참!”
아니 너는 어딘가의 신의 오른쪽 자리냐. 혀에다 피어싱이라도 하고 있어?
뭐 확실히 거역했다간 천벌이라던가 내릴 것 같긴 하지만서도.
“히키가야, 아가씨와의 약속 그 4번째는 뭐였지?”
약속 그 4번째……라니, 짱구 아니거든요.
“……하아, 알았다니까요. 내일 두 사람에게 말할 수 있을 만큼은 해 볼게요.”
“응! 좋아. 그럼, 난 방에서 할 일이 있으니까, 잘 자렴.”
아무래도 내 대답에 만족한 것 같다.
하루노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방에서 나갔다.
하아, 나도 공부하고 잘까.
“……그래서, 그렇게 된 건데, 어때?”
다음 날 바로 부실에서 어제 있었던 일을 셋에게 말한다. 응? 세 명?
“난 괜찮은데? 유키농은?”
“그렇구나. 특별한 예정은 없어.”
“저도 괜찮은걸요-?”
“아니, 어째서 네가 있는 거야? 학생회라는 건 그렇게나 한가한 거야?”
어째선지 최근에 자주 봉사부에 와 있는 잇시키는 오늘도 당연하다는 듯이 홍차를 마시고 있다.
“아뇨-, 그게 이제 행사라던가 없으니까요 솔직히 그다지 할 일 없네요.”
“그렇지만 여긴 시간을 때우는 곳은 아닌걸….”
하고 말하면서도 유키노시타는 잇시키의 몫까지 홍차를 준비하게 돼버렸다.
참고로 잇시키는 전용 컵도 가지고 있다.
“아, 아무렇지 않게 대답은 했지만, 잇시키는 초대한 거 아닌데?”
“초대한 거 아니었던거야!?”
유이가하마가 놀라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하루노씨가 거진 만난 적 없는 잇시키를 초대할 리 없다.
게다가 가뜩이나 휴일에 외출이어서 귀찮은데, 거기에 귀찮은 녀석을 늘리고 싶지도 않고.
“선배, 보통 그런 말은 선뜻 안 하는데요….”
“아니, 그게 말을 한 사람이 하루노씨니까, 네가 초대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참고로 하루노씨와는 어제 우연히 하교길에서 만났다는 설정이다.
우연히 만났는데 그런 약속을 할까 보냐, 라고 하는 의문은 하루노씨니까. 라고 말했더니 납득해 주었다.
모두 하루노씨에 대한 인식이 엄청나서 속여 넘기기가 편하다.
“……하아, 이런 흐름에서 잇시키만 따돌리는 건 가엽기도 하고, 언니에겐 내가 말해 놓을게.”
“유키노시타 선배애-!!”
“붙지 말도록 하렴.”
“유이 선배 때하곤 반응이 달라!?”
감격에 벅찬 듯한 잇시키가 유키노시타한테 안겨 붙었지만 차가운 반응만이 돌아왔다.
아, 지금까진 유이가하마였으니까, 허용했던 거구나.
뭐, 잇시키는 유이가하마하곤 달리 약삭빠르기만 하고 귀엽지는 않으니까.
“선배? 지금 뭔가 실례되는 생각하시지 않으셨어요?”
어째서 아는 거야?
하루노씨도 그렇고 유키노시타도 그렇고 여자는 전부 에스퍼야?
“그럼 일요일에 역 앞에서 모이자고.”
“그래”
“오케이-!”
“알았어요, 아니 얼버무리지 마세요 선배!”
“그럼 수고했어”
뭐라뭐라하며 잇시키가 뒤에서 떠들고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집에 돌아가면 마왕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런 곳에서 불필요하게 체력은 소모할 수 없지.
-그렇게 해서 일요일.
똑똑
“아가씨? 슬슬 일어나지 않으면 약속 시간에 늦으실 텐데요?”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 잇시키와 약속하 날, 나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하루노씨를 깨우러 와 있었다.
아무런 상관없는 말이지만, 6일이나 지나면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도 익숙해지는구나.
어느 정도냐고 하면 저번에 한번 부실에서 유키노시타를 실수로 아가씨라고 불러서 경찰에 신고될 뻘 할 정도다.
그러고 보니 첫 날 이후로는 하루노씨가 마음대로 일어났기 때문에 깨우러 오는 건 오랜만이다.
……첫날 아침이라던가 생각하니까 떠올라버렸잖아. 젠장. 얼굴이 뜨겁다.
아무튼,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아가씨? 들어가겠습니다?”
조심조심 방에 들어가자 며칠 전과 변함없이 여신 같은 얼굴로 하루노씨가 자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 사람 계속 잠들어있다면 좋겠는데….
“아가씨-!! 아침 이에요-!!”
하루노씨의 손이 절대로 닿지 않을 정도까지 가까이 다가가선 큰 소리로 말한다.
아니, 그 뭐냐, 가까워지면 그거잖아? 나는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거니까.
……사실은 좀 더 가까이 가고 싶다던가 하곤 생각 안 했다고? ㅎㅏㅊㅣㅁㅏㄴㄱㅓㅈㅣㅅㅁㅏㄹㅇㅏㄴㅎㅐ.
“응……어라? 히키가야다. 에헤헤 아침에 눈을 뜨면 히키가야가 있어-.”
어쩐지 잠꼬대를 하고 있는 듯한 하루노씨는 나를 발견하곤 굉장한 미소를 지었다.
평상시의 미소가 <싱긋>정도라면, 지금의 미소는 <니파아->라는 느낌. 아니 어떤 느낌인데.
아무튼 엄청난 미소였다. 보고 있는 이쪽이 행복해질 정도로.
“좋은 아침입니다. 아가씨. 이제 일어나시지 않으시면 약속 시간에 늦으실걸요?”
“응-? 시간?”
왠지 시계를 보고선 얼굴이 파랗게 되어 있는데?
아, 이쪽을 보곤 이번에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백의얼굴 이냐고….
“……히키가야, 혹시, 자는 모습, 봤어?”
끼기긱-하는 소리가 나는 느낌으로 목을 움직여서 이쪽을 바라보는 하루노씨가 벌벌 떨면서 물었다.
“그야 뭐, 깨우러 왔는데 아가씨께서 좀처럼 안 일어나니까요. ……그보다 이제 와서 잠자는 얼굴이라던가 신경 쓰는 거에요?”
“신경 쓰이는 게 당연하잖아!? 우우-, 이제 시집 못 가. 히키가야가 책임 져 주는 거지?”
그러니까 그 얼굴은 하지 말라고. 책임 지겠습니다!! 하고 말해버릴 것 같잖아.
“농담은 그 정도로만 해 두세요. 아, 저 먼저 나갈 테니까요. 문단속 부탁 드릴게요.”
“진짜-, 히키가야 짓궂어…….”
네네, 미안요 미안요-! ……최근 보지 못했는데 이 녀석들… 꽤나 좋아했었는데. (U자공사-일본의 개그맨 - 유행어)
지, 집에 가고 싶어-…….
우리들은 지금 카페에서 티타임 중이다.
오전에는 모두 함께 여기저기 가게에 가서 윈도우 쇼핑을 하고, 애완 동물 가게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 고양이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곤 했지만, 나는 굉장히 힘들었다.
아니 뭐가 힘드냐고 하면, 주위의 시선이 위험해. 유이가하마, 유키노시타, 하루노씨, 잇시키라는 호화멤버에 어째서 내가 붙어있는 거냐고. 어느 정도는 각오를 했었지만, 상상 이상이다….
바늘방석이라고 하는 건 이런 상황을 말하는 거였구나. 코마치, 토츠카, 나에게 기운을 나누어 줘-.
“선배? 괜찮아요?”
안 괜찮아요. 문화제 이후에도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고! 오전만으로도 이렇게나 괴로운 느낌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거절해야 했었다. 멍청한 과거의 나….
“아하하…. 힛키는 커피면 되?”
“오-, 그거면 돼.”
“그럼 나는…. 있지, 힛키, 초콜렛 디스트로이어랑, 스플래시 망고 캐논이랑 뭐가 좋을 것 같애?”
뭐야 그거?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아니 그보다 어째서 달콤한 거에 그런 뒤숭숭한 이름을 붙인 거야?
초콜릿이랑 망고에 무슨 원한이라고 있는 거냐고….
“하루노 선배, 오후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응- 히키가야가 그로기 상태니까 너무 끌고 다니거나 하면 가여우니까-. 가하마는, 어딘가 가고 싶은 곳 있어?”
“으-음, 앗, 하루노 언니 노래 들어보고 싶어요!”
“오옷 좋은걸. 그럼 노래방으로 갈까? 유키노도 괜찮아?”
“어차피 내가 싫다고 해도 듣지 않을 거잖아….”
“그럼 정해졌네! 아, 그 후에 옷 보러 가자! 모처럼 히키가야도 있으니까.”
어라-? 내 의사는?
나만 노래방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지 않았는데?
그리고 하루노씨. 그건 짐꾼이 있다는 뜻이죠? 다섯 명 분의 옷이라던가, 보통은 혼자서 못 든다구요?
결국 둘 다 주문한 유이가하마의 초코렛 어쩌구와 망고 어쩌구는 너무 커서 다섯 명이서 겨우 다 먹을 수 있었다.
이거, 갸루소네(대식가)라던가 그런 사람들 용이구나…. 하루노씨가 진심으로 괴로워하는 얼굴 처음 봤다.
유이가하마 멋져!
“노래방에 오는 건 크리스마스 이후 처음이네-!”
“그렇구나.”
“아-그 뒷풀이 말이지.”
“전 안 부르셨었지만 말이에요? 선배?”
아니, 내 잘못이 아니라니까?
그보다 넌 학생회 사람들이랑 같이 가라고….
“뭐, 괜찮지만요. 선배, 그 대신에요, 담에 저랑 둘이서만 어디라도 놀러 가요!”
“““빠-안”””
에, 세분 모두? 그 눈은 뭔가요?
“하아, 그럴 맘이 생기면.”
“네엣!”
아퍼, 야, 지금 누가 내 정강이 찼지?
“그럼, 모처럼 온 거니까 부르자! 자, 유키농!”
“잠깐만, 유이가하마, 왜 매번 너는 나와 같이 노래 부르려고 하는 거니?”
라고 말하고 있지만 부를 생각으로 가득 차 보이는데요….
노래는 올해 유행했던 겨울왕국의 그거. 확실히 유키노시타는 눈의 여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
“히키가야? 누가 눈의 여왕이라는 거니?”
히익……. 진짜로 내 마음 속 읽는 거 그만 두지 않을래?
정말 무섭다니까.
“우응- 실컷 불렀어-. 하루노 언니 역시 노래도 잘 하시네요!”
“안 그런걸-. 가하마도 잘 하던데! 그치? 히키가야?”
나한테 이야기를 돌리지 말아줘….
덧붙여서 우리들은 지금 노래방에서 나와 하루노씨가 추천하는 옷집으로 향하는 중이다.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는 몇 번인가 같이 노래방에 가본 적이 있으니까 그거지만 하루노씨가 불렀던 노래는 의외였다.
틀림없이 요즘 유행하는 밝은 노래를 부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 예상을 뒤엎고 애틋한 실연에관한 사랑노래만 잔뜩 불렀다.
아니, 당신 절대로 실연이라던가 한 적 없잖아요! 라고 태클조차도 걸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묻어났고, 잘 불렀다.
뭐라고 해야 할까, 갭?이 엄청나서 하루노씨의 이면의 얼굴을 몰랐더라면 분명히 좋아하게 되서 차여버렸겠지……. 차여버리는 거냐.
잇시키? 잇시키는 예상대로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약삭빠른 선택을 했다. 뭐, 잘 부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할까 이 멤버에서 노래 못 부르는 녀석이 있을 리가 없지. 여차하면 아이돌 그룹으로 해서 데뷔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도착한 것 같다.
“그럼, 히키가야는 잠시만 저기 보이는 곳에서 빈둥대면서 기다리고 있어!”
어? 여성용 옷 가게서 혼사서 서서 기다려야 하는 거야?
그거 무슨 고문인데….
“선배, 이거 어때요?”
“응? 괜찮지 않냐? (아무래도)”
“힛키, 저기, 이거, 그, 어떠…려나?”
“아, 어어, 어, 어울리는데?”
“에헤헤….”
“뭔가 반응이 다르지 않아요!?”
아니, 그게 너, 나한테 물어보러 오는 거 지금 몇 번짼지 아냐….
안 그래도 아무래도 상관없는(괜찮은)데 몇 번이나 물어보러 오면 그야 당연히 대충 대답하게 되는 건 당연하잖아.
“응응. 히키가야는 인기만점이구나-.”
농담은 그 엄청난 철가면 만으로만 해줬으면 한다.
“그럼, 모처럼 히키가야도 있으니까 패션 승부라도 할까!”
““““패선 승부?””””
“그래, 뭐어, 패션 승부라고 하기보다 미스콘테스트 같은 느낌 이려나? 서로 옷을 골라 입고는 누가 제일 예쁜지 히키가야한테 심사해달라고 하는 거지.”
“잠, 왜 내가….”
“그리고 우승자한테는 뭐든지 한가지 히키가야가 부탁을 들어주는 걸로!”
저기, 잠시만. 그건 나한테 하나도 메리트가 없잖아.
아니 그보다 이 멤버로 그런 거하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는 거 아니잖아….
“뭐든지….”
“선배를 노예로……?”
저기요? 잇시키씨? 뭔가 이상한 단어가 들렸는데요?
어째서 두 사람 모두 그렇게 하려는 의욕만만인데? 큭, 두 사람이 함락 된 지금, 최후의 보루는 유키노시탄가.
아무튼, 이 녀석이라면 보상에도 관심 없을 거고, 하루노씨를 따를 생각도 없을 테니 괜찮겠지. 부탁한다고!
“하아, 또 언니는 그런 쓸데없는 “유키노, 지는 게 겁나?” ……알았어. 받아들여주겠어.”
빨라! 함락되는 게 너무 빠르잖아….
라고 할까, 전부터 생각했었지만 너 도발에 너무 약하지 않냐….
“그럼 정해졌네! 30분 후, 여기 탈의실 앞에서 고른 옷 들고 집합이야!”
어? 진짜 하는 거야?
봐주라고……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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