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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Life/Translation

하야마"그래서 네가 싫어. 히키가야"

나에+ 2015. 6. 28.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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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elephant.2chblog.jp/archives/52133403.html


 

하야먀 “그래서 네가 싫어. 히키가야.”

 

[잃어버리고 나서 처음으로 알게 되는 소중함]이라고 한다면 조금 과장된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봉사부는 내게 있어 둘도 없이 소중한 것이었다.
한없이 계속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던 그 때의 평화로운 나날이었지만, 시간은 잔인할 정도로 정확하게 흘러간다.


생명체로써 살아가는 것들에겐 평등하게 부과되는 시간의 경과는, 당연하겠지만 우리들에게 적용된다.
우리들은, 소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미래로 걷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말했었다. [시간이 가장 잔인하면서도 상냥하다]고.
누군가가 말했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을 상냥하게도, 잔인하게도 만드는 건 결국은 인간이다]고.


눈을 감고 봉사부의 일원으로 지내온 고교 시절을 되새겨본다.
몸 속 깊은 곳에서, 마음이 따듯해지는 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였더라면,
난 시간을 상냥한 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다. 즐거웠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던 일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후우, 개운하네. 아, 어서 와 히키가야. 샤워실 빌려 쓰고 있었어.”

 

“………야.”

 

“늦었네. 오늘은 알바가 있었던 거?”

 

“……그렇지.”

 

“그래, 고생했어. 미안하지만 오늘 좀 재워줘.”

 

“재워[줘]라고 한다는 말은, 나한테 허락을 구하고 있는 거지? 내가 너의 숙박여부를 정해도 괜찮은 거지?”

 

어느 틈엔가 내 방의 마스터키를 만들어선, 집주인이 부재인 방에 맘대로 들어와선 맘대로 샤워를 하고, 져지에 T셔츠차림이라는, 잘 준비 만만이 모습으로 어느 입이 그렇게 말하는데.

 

“뭐, 그렇게 딱딱한 말은 하지 말라니까.”

 

“참나. 하다못해 사전에 연락 정도는 해라.”

 

“하하하, 미안.”

 

“…………그래서? 오늘은 대체 무슨 일인데, 하야마?”

 

고등학교를 졸업한 우리들은 각자의 미래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유키노시타와 하야마는 각자 국내에서도 유수한 편차치를 자랑하는 도쿄의 국립대학으로,
유이가하마와 미우라도 각자 도내의 전문대학에.
토츠카는 이전부터 진학하고 싶어했던 유명 사립대학의 사이타마 캠퍼스에.

카와사키는 치바의 국립 대학에 합격하여, 훌륭하게 학문과 가정 일의 양립을 이루어냈다.
자이모쿠자는 우리들 봉사부 3인이 안이한 이유로 진학을 정하지 말라고 매도를 했지만, 그렇지만 가고 싶은 곳이로다, 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진학하길 바랬던 도내의 애니메이션 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나도, 뭐, 그럭저럭 이름이 알려져 있는 유명 사립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합격을 진심으로 기뻐해준 코마치와 부모님에게 집에서 쫓겨나, 도내 아파트에서 혼자 살기 시작한지 벌써 1년 반.
취사와 가사 전반을 해야만 하는 귀찮음과 코마치가 없다는 외로움에 죽어버릴까하고 생각하고 있던 입학 직후의 그 시절.


그러나 인간의 환경적응 능력을 얕봐선 안 된다.


이런 나조차도 반년이 지났을 무렵엔 혼자서 생활하는 것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해서,
정들면 고향이라고 말했던 선인들의 말에 감탄하고 있던 참에, 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도내에 진학하고, 혼자서 살기 시작한 이들 모두가 생활권이 겹쳐있다는 것.
혼자서 살기 시작한 이들이 모두, 서로의 방을 부담 없이 왕래할 정도로 가까이 살고 있었던 것을.

 

 

 

 

 

 

 

 

문득 알게 되었을 땐, 늦어버렸었기에,
처음에 방으로 찾아온 건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였기에,
그 후 자이모쿠자가 오게 되었기에,
유이가하마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하야마가 미우라를 데려오게 되었기에,
어느 새인지 유키노시타도 유이가하마도 하야마도, 그 미우라조차 틈만 나면 혼자서 찾아오게 되어버렸기에,

 

(미우라와 단 둘은 솔직히 좀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있다가 간단 말이지….)

 

2학년이 되고부턴 마찬가지로 도내 대학에 진학한 잇시키도 내방에서 틀어박혀 지내게 되었기에,
어디서 이야기를 들었는지 시로메구리선배로 얼굴을 내밀게 되었기에,

나중에 깨닫고 보자, 내 방은 지역의 커뮤니티 센터로 변해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도, 특히 내 방에 오는 횟수가 많은 게…….

 

 

“피곤하지, 히키가야. 저녁 밥 아직 안 먹었어? 내가 만들 테니까 그전에 샤워라도 하고 와.”

 

이 녀석, 하야마 하야토인 것이다.

 

“주방, 빌린다? 아, 그리고 이 파스타도.”

 

어느 샌지 마음대로 자기집인 마냥 행동하게 되어버렸기에.

 

“좀 있으면 식용유 다 떨어질 것 같은데, 나중에 사올까. 아, 화장지도 사 두는 편이 좋으려나.”

 

내 방의 생활용품의 재고 상황에 나보다 빠삭하게 되어버렸기도 했기에.

………라고 해야 할까, 난 일찌감치 자취생활 기브 업했으니까, 조미료에 관해선 네가 쓰고 있을 뿐이거든.

 

“……………잘 먹었어.”

 

“아, 별거 아냐.”

 

“정말이지, 내 방은 막차 놓쳐가지고 자러 오는 호텔이 아니다만.”

 

“뭐, 미안미안.”

 

“게다가 이 시간이라면 아직 막차 여유 있잖냐. 술자리에서 집에 가는 게 귀찮아졌다고 내방에 오지 말라고.”

 

“하하하, 그러니까 미안하대도. 그보다, 자.”

 

“………? 뭔데 이 상자는?”

 

“유키노랑 유이한테서 들었어. 너, 지난주에 생일이었다면서?”

 

“그래서, 조금 늦었기는 하지만, 생일 축하해. 히키가야.”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은 녀석의 얼굴은, 동성인 내가봐도 넋이 나갈 정도로 멋있었다.

 

“아, 어………고맙다.”

 

“후훗, 무슨 말을.”


얼굴이 뜨거워져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거, 열어봐도 되냐?”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듯이, 이야기를 다른 데로 돌린다.

 

“당연하지.”

 

“이거………손목 시계냐?”

 

비교적 작고 심플한 문자 판에 밝은 갈색의 폭이 좁은 시계줄.

남자용이라기보단 여성을 위한 디자인의, 내가 좋아하는 심플한 시계.

 

“너한텐 화려한 것보단 그런 심플한 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말이지.”

 

“그래도 괜찮냐? 이거, 비싼 거 아냐………?”

 

“결코 싼 건 아니지만, 그렇게 비싸지도 않아. 신경 쓰지마.”

 

“…………고맙다, 하야마.”

 

“………천만의 말씀. 히키가야.”

 

“그럼! 선물도 건내줬으니까………!”

 

짝, 하고 손뼉을 치곤 일어난 하야마의 목적지는 냉장고.

 

“히키가야의 성인이 된 걸 축하하며, 마실까!!”

 

타악하는 소리와 함께, 돌아온 하야마가 손에 들고 있던 캔 두개를 테이블에 놓는다.

좀 비싼 맥주다. 이거.

 

“네이네이, 고맙게 받들겠습니다요.”

 

치익, 하는 맥주소리가 둘, 방안에 울려퍼진다.

 

“……그럼, 히키가야의 20살 생일을 축하하며, 건배!”

 

“건배”

 

 

 

 

 

 

 

 

…………….


…………….


…………….


“으, 으으…….”

 

머리 아퍼.

 

어째서, 나, 바닥에서 자고 있는 거지?


지금 몇시지?


오늘 알바있었나?


그보다 왜 이렇게 방이 엉망인거지?

 

 

 

 


………아아, 머리 아프다.


무거운 몸을 어떻게든 일으켜 세운다.

테이블 위에 놓인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다.
9시 27분.
알바 시프트표를 확인한다.
오늘은 11시 30분부터다.
샤워하고 나서, 방을 정리해도……뭐, 늦지는 않겠다.

 


………응?

………이 손목시계, 대체 누구 꺼지?

 

욱신욱신 둔통이 울리는 머리를 누르곤, 귀를 곤두세우자 일정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가 샤워를 하고 있다.
방에 흩어져있는 다 마신 맥주 캔.
여성용 심플한 디자인의 손목시계.
조금씩,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해낸다.

 

아-.

 

 

그랬군, 어젠 하야마와 둘이서 술 마셨지……….
이렇게 곤드레하게 될 때까지 마신 적은 오랜만이다.
일본 경제와 중동의 분쟁문제 같은 거에 쓰잘때기없는 격한 토론을 했었던 것 같다.


…………그 녀석이랑 술을 마시게 된 후로부터 알게 된 것.
하야마 하야토는, 취하면 다른 사람과 토론을 하고 싶어한다.

 

“………무슨 그런 귀찮은 녀석이 다 있어.”

 

입에 내뱉은 말과는 달리, 내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오늘 알바는 몇 시까진데?”

 

“20시 30분이군. 밥도 먹고 올 예정이니까, 돌아오면 22시쯤일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래. 나도 오후부턴 일이 있으니까, 점심 지나면 집에 돌아가봐야겠는걸.”

 

“미안, 정리하는 거, 못 도와줘서.”

 

“이 정도는 딱히 상관 안 해. 매번 방을 제공해주고 있으니까.”

 

“그럼, 다녀 올게.”

 

“그래, 다녀와.”

 

“……아, 참. 히키가야.”

 

“왜?”

 

“그 시계……어울려.”

 

“시끄러-. 바보.”

 

 

 

 

 

 


…………….

 

…………….

 

…………….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방 근처에 오자, 아무도 없을 터인 방에 불이 켜져 있다.

문 앞에 서자, 방 안에서 새어 나오는 떠들썩한 여자의 목소리.

 

둘……, 셋, 아니 넷인가.

 

문 앞에서 낙담하고 있자, 내가 돌아온 걸 알았는지 문이 열린다.

 

“아, 선배 어서 오세요. 실례하고 있어요-!”

 

………………좀 봐줘. 2일 연속은 아무리 그래도 힘들다.

 

 

 

 

 

 

 

 

말해두지만, 난 지금의 생활이 싫은 건 아니다.

대학교서나, 알바에서 돌아오면 아무도 없을 터인 방에 불이 켜져 있고, 내가 문을 열면 누군가가 어서오라며 인사 해 준다.


시시한 이야기를 하면서 밤을 새우고, 또 다음 하루를 기분 좋게 맞이한다.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허나,
그런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나날이 무척이나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와 같을 정도로 난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열쇠를 꽂고, 방문을 연다.
아무도 없는 방.
새카만 방.
정적이 지배하고 있는 방.

왜? 라고 물어본다면 분명한 대답은 할 수 없지만,
집주인의 귀가를 맞아주는 이 사물들의 고요함이, 무척이나 좋았다.

들고 있었던 가방을 어둠의 세계로 던진다.
형광등을 스위치를 손으로 더듬으며, 스위치를 켠다.

밤의 장막은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지고, 세계는 황금빛으로 휩싸인다.

다녀왔어, 나. 어서 와. 나.
그리고 그런 나를 맞아주는,
침대에서 새근거리고 있는 대학교 1학년.

 

어라-.

 

 

 

 

 

 


“전부터 생각했었는데요,”

 

오물오물, 크레이프를 먹으면서 입을 여는 소악마계 미소녀(자칭).
음식을 먹으면서 말하는 거 아니라고 배우지 않았니? 상스럽구나.(유키노 흉내)

 

“선배, 변했네요.”

 

“응? 어디가?”

 

우물우물, 크레이프를 먹으면서 입을 여는 눈이 썩은계 남자(타칭).

어머 싫어, 나도 상스러운 애였구나.

 

“눈이 탁한 게 사라졌어요.”

 

아무래도 난 유일한 아이덴티티(타칭이지만)를 어느 샌가 잃어버리고 말은 것 같다.

 

“……라고 하는 건 농담이지만요, 아니, 진짜로 탁한 건 사라졌지만요.”

 

깔깔거리며 즐거운 듯이 웃는 잇시키.

불평 한마디라도 해둘까, 하고 생각했지만, 너무나도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기에, 그대로 말하게 둬 본다.


“뭐라고 할까요, 그게, 부위기가 부드러워진 느낌이 들어요.”

 

“그 때의 선배는 접근하기 힘든 분위기가 있었잖아요.”

 

“가시가 돋쳐있다고 할까, 다가오면 벤다!! 같은, 그런. 고고한 존재같은……요?”

 

“그치만 이야기를 해보면 그런 건 하나두 없어서, 꽤나 짓궂은데다, 재미있고, 사실은 의외로 열성적이고 드라이(DRY)한 캐릭터 느낌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속은 엄청 웨트(WET:정에 약한)라던가, 뭘 하고 싶었는지 전혀 몰랐다구요.”

 

“……하지만요,”

 

“……하지만, 지금이라면 알 수 있어요. 그때의 선배의 마음을요.”

 

“사실은 쓸쓸했다.”

 

“사실은 친구를 원했다.”

 

“응, 선배는 사실, 진실된 걸 원했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진실된 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아무리 힘써 보아도, 진실된 건 손에 넣을 수 없어. 애초에, 진실된 건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혹시, 진실된 것이라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지도 몰라.”

 

“무서웠다.”

 

“진실을 아는 것이 무서웠다.”

 

“진실된 게 없다고 하는 드러나 버리고 마는 것이, 무서웠다.”

 

“누구보다도 진실된 걸 바랬으면서도, 누구보다도 진실된 걸 바라는 걸 두려워했다.”

 

“후훗, 꿈 해몽 잘하는 아저씨가 하는, 유명한 그런 말 같네요.”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프로이트 선생님의 말이 아니거든. 인용했을 뿐이다.”

 

“뭐, 구태여 말하자면, 그거네요. 여성에 이상한 환상을 품고 있는 동정…같은 거랄까요?”

 

“………처녀가 경험 전에 남자에 대해 말하는 거 아니다만.”

 

“처, 처, 처처처처처녀 아니거든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선배의 고생은 보답 받았어요, 선배의 고뇌는, 헛된 게 아니었어요.”

 

“진실된 건, 확실하게 있었어요.”

 

“지금 선배야 말로, 진실된 거에요, 유키노시타선배나 유이가하마선배, 하야마선배야말로 진실된 거에요. 저야 말로, 진실된 거구요.”

 

“이것도 전부 다, 선배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 덕분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선배.”

 

“………저기, 선배 제 이야기 듣고 있어요? 듣고 있었어요? 지금 저, 꽤나 멋진 말 했거든요!? 좀 반응이 약하지 않아요!?”

 

“응? 아아, 듣고 있어. 응.”

 

“엄~청나게 건성이거든요!!”

 

 

크아악-! 하고, 머리를 덥석 잡고는, 거칠게 문지르는 잇시키.

아니, 사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근데 말이지,

그런 걸 말이다,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런 말을 들으면 말이다, 좀 부끄럽잖아.

 

 

“그만 잘래요! 진지한 이야기해서 손해 봤다구요!! 침대 빌릴테니까요, 선밴 바닥에서 주무세요!!”

 

“아니, 그만 잘래요, 가 아니거든. 집에 가. 너.”

 

“잘 거에요!! 잔다고 하면 잘 거에요!!”

 

꾸물꾸물, 카디건을 벗고, 양말을 벗고는 내게 던진다.

 

“야! 벗은 옷은 개어두라고 했잖아.”

 

“안녕히 주무세요!!”

 

“야 너…….”

 

아무래도 잇시키씨는 꽤나 화가 나신 것 같다. 미안.

 

 

 

“할 수 없지, 나도 잘까.”

 

잇시키가 선물로 가져온 크레이프의 마지막 한 입을 입에 밀어넣는다.
벗어 던진 카디건을 가볍게 개어두고,
바닥에 누워서 형광등을 리모컨으로 끈다.
…………아, 이런. 자기 전에 이 닦아야 하는데.
이미 늦었다. 뭐 괜찮겠지. 어쩔 수 없어.

 

 

온 몸에,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달콤한 기분.
그건 과연, 크레이프 때문일까, 아님 잇시키의 말 때문이었을까.

 

“잘 자라.”

 

“……………안녕히 주무세요, 선배.”

 

 

 

 

 

 

 

 

“힛키는 말야, 백조 같은걸.”

 

“…………뭐?”

 

“겉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안 보이는 곳에서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라던가.”

 

“갑자기 왜 그러는데. 대화의 맥락을 좀처럼 잡을 수 없어서 쫄았거든.”

 

“응후후-!”

 

“너……좀 많이 마신거 아니냐, 유이가하마.”

 

“괜찮아, 괜찮아! 힛키하구 마시는 것도 오랜만이구, 오늘은 잔뜩 마시자-!!”

 

지난 주에도 내 방에 왔었는데요? 유이가하마씨??

 

“처음에는 말야, 아아, 정말 서툰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응응? 무슨 소린데?”

 

“백조 말야! 힛키 이야기!!”

 

“어, 어어….”

 

“언제나 다른 사람의 일만 생각하곤, 자신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아.”

 

“다른 사람 일엔 언제나 전력을 다하면서, 자신의 일에 대해선 전혀 신경도 안 쓰니까.”

 

“누군가를 위해서………라고, 누구보다 생각하고, 누구보다 열심인데도, 아무도 평가해주지 않아.”

 

“정말이지, 손해만 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

 

“사실은 굉장히 싫은 기분, 괴로운 기분인데도,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게 있어도 그걸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않고, 혼자서 괴로워해서.”

 

“언제나,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고 있어서,”

 

“나 말야, 그런 힛키가 좀 싫었어.”

 

“………알고 있었어.”

 

“힛키는, 좀 더 다른 사람들에게 평가 되어야만 해. 인정 받아야 만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어.”

 

“………알고 있었어.”

 

“그치만, 그런 힛키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최근 생각하게 되었어.”

 

“알고있………어??”

 

“모두가 힛키의 고민을 알지 못해도,”

 

“모두가 힛키의 노력을 보고 있지 않아도,”

 

“모두가 힛키의 좋은 점을 모른다고 해도,”

 

“나만은, 힛키를 보고 있자. 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그렇게 생각하게 되니까, 왠지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어.”

 

“그러니까 난 말야, 나만은, 말야….”

 

“언제까지라도, 쭉, 계속, 힛키가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고 있을 거니까.”

 

“에헤헤.”

 

얼굴 가득히 미소 지으며 엄청난 걸 말씀하시는 유이가하마.

이건 나의 자만일까, 기분 나쁜 착각인 걸까.

 

아니, 그건 아냐.

유이가하마는 알고 있는 걸까.

그래, 네가 말하고 있는건, 마치-----------

 

 

“앗, 힛키! 안되겠어!!”

 

지금까지 그렇게나 흥냐 흥냐, 히히거리면서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던 유이가하마가 갑자기 일어선다.

 

“…………왜 그래.”

 

“나, 토할 것 같애!!”

 

“………화장실 다녀와.”

 

화장실로 뛰어가는 유이가하마.
이윽고 들려오는 구역질소리.

 

주르르르르르륵-

 

 

………천 년의 사랑도 식어버리는 순간.
아니, 난 딱히 이 정도로 식어버리진 않지만 말이지.

왠지 뭔가 좋은 말을 했지만, 거기서부터의 갭 때문에 조금 식겁했을 뿐이거든?

 

아니, 조금 식겁했다는 건 뭐냐고, 그 의미 알 수 없는 말은.

 

애초에, 천 년의 사랑이라던가 하고 말했지만, 그건 그거니까. 다른 거니까. 말장난 같은 거거든.

…………라니, 난 자기가 자기에게 변명하고 있냐.

 

“……훗, 하하핫.”

 

“아하하하하하핫!!”

 

“으에에에에에에엑.”

 

…………….

 

…………….

 

…………….

 

“……좀 괜찮아졌냐?”

 

“……응. 조금은.”

 

“너무 마셨어.”

 

“........응. 그렇네.”

 

“바보냐 너.”

 

“……시끄러워.”

 

“물, 마실래?”

 

“………응, 마실래.”


“아우…………, 기분 안 좋아(나뻐).”

 

“기분이 안 좋다구(나쁘다구), 힛키.”

 

“자업자득이라고. 어쩔 수 없어.”

 

“힛키 기분 나뻐.”

 

“그 말은 어폐가 있으니까 하지마.”

 

“힛키 진짜 기분 나뻐.”

 

“………악의밖에 안 느껴지게 되었거든, 야.”

 

“후후훗.”

 


“아-, 재미있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유이가하마의 한마디가 귀에 남는다.

 

“힛키는 말야, 지금의 생활, 즐거워?”

 

그런 거 당연하잖아.

 

이런 멋진 여자애한테서 마음이 전해졌고,

그렇게나 많은 친구들한테 둘러싸여선,

쉴 틈도 없을 정도로 시끄러운 매일매일이.

 

“………재미없을 리가 없잖아.”

 

“아-아, 어째서 이런 말밖에는 하지 못하는 걸까-.”

 

말과는 정반대로, 기쁜 듯이 웃는 유이가하마.

그래, 이런 날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좋겠다만.

 

 

 

 

 

 

 

 

녀석들이 내 방에 오는 건 시간으로 치면 오후 10시를 지났을 무렵이 많아서, 그대로 자고 가는 것 까지 세트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알바가 있냐고 물어보는 메일이 와서, 오늘은 없다고 답장했을 때에도, 그녀가 오는 시간도 그 정도이지 않을까하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후 7시를 지났을 무렵에 초인종이 울렸을 때 조금 놀랐다.

 

그렇다고는 해도, 구태여 무시할 이유도 없었기에, 순순하게 방 안으로 안내한다.

 

 

“안녕, 히키가야. 한 잔 어떠니?”

 


여기, 하며 짐이 들어있을 토트백을 들어다 보이는 여성.

그 여성의 이름은, 유키노시타 유키노.

 

토트백에서 앞부분이 나와있었기에, 그것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유키노시타가 선물로 가져온 건, 일본주 한 병과 안주로 보이는 건조물 몇 점.

 

일본주는 그다지 마셔본 적이 없지만, 딱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모처럼 가져온 거고, 감사히 얻어먹도록 하자.

 

작은 잔 같이 멋진 건 없고, 차갑게 하는 것도, 뜨겁게 하는 것도 귀찮다.

그렇기에, 적당한 컵에 상온 그대로 2잔을 따른다.

 

“그럼, 건배.”

 

“그래, 건배.”

 

따랑, 하는 마른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진다.

 

컵에 따른 양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분위기를 띄우려는 뜻도 포함해서, 한 번에 마신다.

 

“……맛있네, 이거.”

 

“어머, 그러니?”


맛의 차이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일본주를 마셔본 적도 없고, 애초에 내 혀도 그렇게 사치스럽지는 않다.

다만, 그래도 유키노시타가 가져온 쌉쌀한 맛의 이 술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맛있는 거라는 건 알았다.

 

“그렇게 말 해준다면, 언니가 기뻐 할거야.”

 

“응? 왜 하루노씨가 나오는 건데?”

 

“이 술, 언니가 준거니까.”

 

“좋은 술이 들어왔어. 히키가야도 분명히 맘에 들어 할 테니까, 둘이서 마시라면서.”

 

그렇게 말하는 유키노시타의 얼굴은 무척이나 기뻐하는 듯해서,
그 미소는 너무나도 눈부셔서,
그런 그녀를 보고 있으면 무척이나 행복한 기분이 되어버려서,

하지만, 그런 마음을 입에 담는 건 정말이지 볼품없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기에 난, 최소한의 말로 그녀를 위로한다.

 


“그런가, 다행이네.”

 

내 뜻을 살펴준 건지, 그녀도 눈을 가늘게 만들곤, 단 한마디의 말만 내게 돌려준다.

 

“………그래.”

 

서로 비워진 컵에, 2잔째의 술을 부어준다.


 

오늘 유키노시타는 드물게도 말이 많다.

 

또, 언니가 또 시시한 장난을 쳤다느니, 대학교의 남자들한테 헌팅을 당했다더니,

내용은 그야말로 넋두리와 같은 내용이었지만, 그걸 말하고 있는 모습은 무척이나 즐거운 것 같아서,

마치 초등학생이 그날 있었던 일을 엄마한테 즐거운 듯이 보고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자기 자신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던, 언니의 뒤를 쫓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인형과 같은 17년간의 인생의 공백을 되찾으려는 기세로.

 

그녀는 너무나도 생생하게, 삶을 구가하고 있었다.


19살이 되고, 점점 어른스러워진 외모와는 반대로, 소녀처럼 순진한 마음.

그런 그녀를 안주 삼아서 마시는 술이다. 맛이 없을 이유가 없잖아.

 

응? 미성년자가 술 마시지 말라고?

그런 세상 모르는 듯한 말은 하지 말라고.

 

“그래서, 언니도 정말이지, 또 하야토에게…….”

 

“………저기, 내 말 듣고 있는 거니? 히키가야.”

 

“………아아, 듣고 있어. 듣고 있으니까.”

 

“어떠려나. 아까부터 내 말은 건성으로 들으면서 생각에 빠져있던 것 같았는걸?”

 

…………뭐야, 알고 있었던 거냐고. 라고 할까, 알면서도 이야기를 하고 있었건 거네요.

유키농, 얼마나 얘기하고 싶었던 거농?

 

“아니, 조금 너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

 

“뭐, 뭐어………!?”

 

“너, 변했구나, 하고 생각이 들어서 말야.”

 

“………….”

 

만났을 무렵의 유키노시타는, 타인이 다가오는 걸 허락하지 않는, 얼어붙은 엄숙한 분위기가 있었다.

친구나, 동료 따윈, 자신에겐 필요 없다고, 그렇게 말하는 듯한 긴장된 분위기가 있었다.


그랬던 게, 지금은 어떨까.

 

늠름한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 때와 같이 타인에게 향한 가시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이름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 같았던 얼어붙은 겨울같이 차가운 표정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당시의 나는 유키노시타에게 동경과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녀같이, 고상하고 고고한 존재를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었다.

허나, 뚜껑을 열어보면, 그런 건 그저 속임수(가짜)였을 뿐이었던 셈이기에.

내가 품었던 제멋대로의 유키노시타의 모습이야말로, 그녀 자신을 깊게 상처 주고 있었던 것이었기에.

그런 빌려온, 거짓된 자신과의 결별이 생긴 것이라고, 지금의 유키노시타를 보면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변한다고 하는 건, 슬픈 것일까.

 

변한다고 하는 건, 잃어버린다고 하는 것일까.

 

변한다고 하는 건, 배신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때의 나는, 우리들은, 변하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변하는 일 없는, 상냥함을 가장한 기만과 거짓으로 가득 찬 공허한 도피를 원했다.

 

그런 잘못됐던 관계를 끝낼 수 있었던 지금이니까 말할 수 있다.

 

변한다고 하는 건, 아무것도 무서워할 게 아니란 걸.

 

물론,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변화라고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갈지도 모른다.

 

바라건대, 미래의 나여. 모쪼록 그때엔 무서워하지 말고 받아들여줬으면 한다.

 


“…………나, 변한 것 같니?”

 

“아아, 너 변했어. 유키노시타.”

 

“후후후, 그래. 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분명 히키가야 덕분이야……….”

 

“………아니, 히키가야 때문이네.”


“…………나?”

 

“그래, 너 때문이야,”

 

“내가 이렇게 되어버린 건, 전부 너(당신) 때문.”

 

“…………그러니까, 책임을 져주었으면 해.”

 

“당신은, 언니를, 하야토를 구해주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날 구해줬어.”

 

“아담과 이브에게 주어진 금단의 열매처럼, 판도라가 열어버리고 만 상자 안에 남겨진 희망처럼.”

 

“회색이었던 나의 세계에, 당신은 선명한 색채를 주었어.”

 

“세상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인지는, 몰랐었는걸.”

 

“지금은 말이야, 정말로 매일매일이 너무 재미있어.”

 

“이런 재미를 알아버리고 만 이상은, 이제 다시 그 무렵으론 돌아갈 수 없어.”

 

“유이가하마가, 잇시키가, 미우라가, 모두가 없는 그 때라니, 돌아갈 수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네(당신)가 없는 그 무렵이라니, 돌아갈 수 없어.”

 

“……좋아해. 좋아해. 히키가야.”

 

“다른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좋아해.”

 

“………어머, 조금 나답지 않게 말을 너무 많이 해버렸네. 미안해.”

 

“사과할 거 없어. 딱히 별로 곤란하거나 한 건 하나도 없으니까.”

 

“조금 과음 해버리고 말았네. 그래서 입이 가벼워져 버린 건지도 모르겠구나.”

 

“그렇담 어쩔 수 없지, 술에 취한 거니까.”

 

“그렇구나, 나, 취해있는 걸지도 모르겠는걸.”

 

그래, 술이라고 하는 편리한 대용품으로.

평소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도, 쉽사리 입에 담게 되어버리는 이상한 마력이 있다.

 

그런 마법의 물에 의존하는 건 나쁜 것일까.

소중하게 여기고 있기에, 좀처럼 말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친하다고 생각하기에, 입에 담는 게 꺼려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말을,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는 거니까, 난 나쁜 건 아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녀들에 대한 나의 취기는, 눈 뜨는(일어나는) 일이 없겠지.

라니, 모양 빠지는 걸 생각하거나 하기도 한다.

안돼, 이건 절대로 입에 담아선 안 되는 부끄러운 거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하여 밤은 깊어 간다.

 


……………결국, 유키노시타가 가져온 하루노씨의 추천 술은 하룻밤 만에 비어버렸다.

 

 

 

 

 

 

 

 

 

[가위 바위 보]하는 구호와 함께, 모두 일제히 팔을 내민다.
몇 회의 무승부를 지나고, 승패가 정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바위를 내민 가운데, 가위를 내고 있는 사람이 둘.


그래, 나와 미우라 유미코다.

 

“아자-! 그럼, 힛키랑 유미코, 사오는 거, 부탁할게!”

 

“사러 가는 것 정도라면 인색하게 할 필요는 없었지만, 승패를 정하는 거잖니.”

 

환호를 하며 승리를 기뻐하는 유이가하마와, 잘난듯한 표정으로 승리를 자랑하는 유키노시타.

 

“아, 그럼 선배, 전 하겐다즈 딸기로, 부탁드릴게요.”

 

“아, 난 녹차 맛이 먹고 싶은걸.”

 

술을 더 사러 가는 이야기였는데, 조속하게도 탈선한 주문을 하기 시작한 잇시키와 시로메구리 선배.

 

“미안, 히키가야. 집주인인데 이런 역할을 맡겨서.”

 

아니, 진짜 정말이라니까.

 

 

 

 

 

 

 

 

 

“가, 감사합니다-…………….”

 

피로리로리롱-하는 전자음과 점원 누나의 지친 목소리를 들으며 편의점을 뒤로한다.

오른손에는 주류가 들어간 비닐봉지, 왼손에는 아이스크림이나 무거운 안주가 들어있는 비닐봉지.

그리고 미우라의 오른손에는 건어물 같은 비교적 가벼운 안주가 들어있는 비닐봉지.

 

“…………방금 언니 말야, 분명히 질겁하고 있었지.”

 

“그야, 이렇게나 사면 말이지….”

 

“그보다, 다들 너무 마시는 거 아냐?”

 

“아니, 그것보다도 내 방에 너무(자주) 모인다니까, 너희들.”

 

다다미 6장반 크기의 부엌 하나 딸린 내 방. 그런 좁은 공간에 몇 명이나 모여있는 거냐고.

 

“어쩔 수 없잖아. 가게에서 마시는 건 요즘 연령 확인하는 게 엄격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말이지…….”

 

“뭐어, 어때?”

 

“이렇게 히키오 방에서 모두 모여 마시는 거, 굉장히 재미있으니까.”

 

“……….”

 

그렇게 멋진 얼굴로 그런 말을 들어버리면, 돌려줄 말이 나오지 않는다. 비겁한 녀석.

 

“이래선 내일 이웃집에 사과하러 가야만 하겠네…….”

 

너무 시끄럽게는 하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소란스럽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웃집이라니, 그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수수해 보이는 여자애?”

 

다행히도 내 방은 모서리 부근에 있어서, 인접한 방이 하나 밖에 없는 게 구원이기는 하다.

 

거기에 이웃집 여성은 비교적 차분한 분으로, 이쪽의 들뜬 분위기에도 이해를 해주는 것 같……………

………잠깐, 야.

 

 

“어째서 네가 이웃집 사람을 알고 있는데?”

 

“………뭐? 알고 있는 게 당연하잖아? 뭐야? 히키오는 이웃집 사람들과 교제한다던가 하는 거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타입?”

 

흘겨보는 듯한— 말이 아니라 “깨는데-.”라고도 말하는 듯한 눈으로 노려봐진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니, 인사라던가 엄청나게 하고 있거든. 보통으로 이웃과 잘 지내고 있다는 건데.”

 

“그래, 그럼 딱히 상관없지만.”

 

아니아니,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어째서 네가 내 방의 이웃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냐는 건데.”

 

아, 아까랑 같은 걸 말하고 있다. 어딘가 바보 같은데, 나.

 

“……뭐?”

 

반면 미우라는, 내가 말하고 있는 거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모습으로 대답한다.

 

“아니, 그게 히키오랑 아는 사이잖아? 히키오의 방에 박혀 있는 나아도, 다른 애들도 인사 안 하면 실례잖아.”

 

……으-음. 역시 이 녀석은 이상한 곳에서 확고하구나.

 

“힛키오의 방을 찾아왔을 적에, 종종 스쳐 지나가거나 하니까.”

 

“진짜냐.”

 

“인사도 할 겸 가볍게 잡담도 하는데 당연히.”

 

“진짜?”

 

“우리들 이름도 알고 있는 것 같고.”

 

“야, 진짜로?”

 

“그래서 말야, 이건 나아의 상상……이라고 할까 감인데.”

 

“응?”

 

“그 사람, 아마도 히키오한테 반한 것 같은데.”

 

“뭐? 설마.”

 

“아니, 꽤나 진짜로.”

 

“……야, 진짜?”

 

듣고 싶지 않았던 진실.

매일 얼굴을 맞대곤 인사하거든. 알바하고 돌아오면 다녀오셨어요, 라고 말해준다고.


……………앞으로 어떤 얼굴로 대하면 되는 거냐고. 이 자식아.

 

“그렇다고는 했지만, 아직 그렇게 진심인 것 같지는 않고, 어딘가 좋은데- 하는 정도의 레벨이라고 생각하지만.”

 

“어, 어어…….”

 

“뭐, 아직 그런 단계니까, 히키오도 평소처럼 대하면 된다고 생각해.”

 

“반대로 이상하게 의식하는 것도 자의식과잉 같아서 소름 끼치니까.”

 

 

그게 가능하다면 고생하지 않으니까, 은근슬쩍 어려운 말을 해주는군. 이 녀석.

 

“………단지, 말야.”

 

“만약 그 사람이 히키오한테 진심이 돼서, 진심으로 어프로치해오면 말이야.”

 

“………그 때는 도망치거나 얼버무리지 말고, 당당하게 받아들여주었으면 해.”

 

아아, 그렇다. 이게 미우라 유미코라고 하는 사람이다.
그 화려한 외관과는 정반대로, 마치 엄마라도 되는 것 같은, 돌봐주고 싶어하는 성격.

고압적이며 가시도친 말투를 해도, 그다지 적이 없는 이유.

그녀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평가한다. 그게 십여 년의 친구여도, 방금 만난 낯선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필터링하지 않고, 자신의 심정에 따라 정직하게 그 사람을 평가한다. 그게 미우라 유미코인 까닭.

 

그런 사람이 친구라고 인정해주는 자신이, 그저 자랑스럽기만 했다.

 

그렇기에, 배신은 용서받을 수 없다.

 

그녀는 내게 도망가지 말라고 했다.

 

그건 바꿔 말하면, 내가 도망칠 것 같은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평가 해 주었기 때문인다.

말하자면, 미우라 유미코로부터 히키가야 하치만에게의 신뢰의 증거.

 

그 신뢰를 배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 알았어. 노력할게.”

 

“흥!!”

 

“윽!!”

 

미우라의 로우킥이 내 정강이에 박혔다. 아퍼. 잠깐만, 진짜 아프니까.

 

“노력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지켜. 바보야.”

 

노력했었지만 무리였습니다…가 허용되지 않는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가 전부인 거다.

아니, 꽤나 터무니없는 걸 말씀하여 주시는군.

 

“………알았어, 그런 때가 오면 도망치지 않고 받아들일게. 그러면 되잖아?”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라는 거야. 바-보.”

 

쿡쿡, 하고 즐거운 듯이 웃는 미우라.

 

“대체로 말야, 히키오 너, 좀 자각 하는 편이 좋을걸?”

 

“응? 뭘?”

 

“………그거,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진심인 게 당연하잖아.”

 

“………….”

 

왼손을 이마에 대고, 깊게 한숨을 쉬는 미우라.

아니 안 해도 되니까. 그런 나 지금 기가 막혀요, 라는 어필은 안 해도 되니까.

 

“그래서, 대체 무슨 말인데.”

 

“아-, 이거 진짜인가. 성가시네.”


칫,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멋진 여성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역시 무서워요 미우라씨……….

 

“………너 말야, 꽤나 인기 있는 거 알고 있어?”

 

“어? 누가?”

 

“그러니까 너라고. 히키오. 히키가야 하치만이 인기가 있다고 말하는 거야.”

 

하하하 이 녀석. 빼먹고 있다고.

 

“나아, 대학교 친구들로부터 자주 남자 소개시켜달라는 말을 듣는데.”

 

“그 중 70에서 80%가 하야토에 관한 거지만, 나머지2, 30%는 너에 관한 거야.”

 

“엄청나네, 하야마. 인기만점이잖아.”

 

“토우스!!”

 

“아읏!!”

 

왼손 집게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찔린다. 이상한 소리가 나와버리고 마니까 하지 마.

 

“그런 농담은 됐으니까.”

 

“네……….”

 

“너, 원래 얼굴은 나쁘지 않고, 옛날처럼 나쁜 눈초리나 어두운 분위기도 없어졌으니까.”

 

“지금 히키오, 무척이나 좋은 느낌이라고 생각해. 진짜.”

 

“가끔말야, 도내에서 너하고 만나서 차 마시거나 하잖아? 아마 거기서 보여진 것 같은데.”

 

“그런 거니까, 넌 나아한테 감사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정도야.”

 

“어? 난 전혀 소개 받았던 적이 없는데?”

 

“네가 진심으로 소개해달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소개시켜 줄 거야. 나아의 친구들, 모두 좋은 애들이니까.”

 

“근데, 너 그럴 생각 전혀 없지? 그러니까 나아가 거절해두고 있는 거야.”

 

“네 본심은 그 셋 중에 한 명이잖아?”

 

“이건 나아의 제멋대로인 생각이지만, 그 셋이라면 누구랑 사귀든지 히키오는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해.”

 

“다만, 누군가를 고른다면, 남겨진 두 사람은 확실하게 체념시켜줬으면 해."

 

“……그게 너의, 그 셋으로부터 마음을 전해 받았던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니까.”

 

“만약 잘못해서 셋에게서 모두 차일 것 같은 일이 생기면, 나아한테 말해줘.”

 

“나아가 그 셋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애를 소개시켜 줄 테니까.”

 

“………미우라.”

 

“응?”

 

“네 마음은 정말 기쁘지만, 나, 이미 사귀고 있는데?”

 

“엇.”

 

“엇.”

 

“진짜로?”

 

“진짜로.”

 

“누, 누구랑?”

 

“잠깐, 귀 좀….”

 

“으, 응…….”

 

속닥 소닥 속닥…….

 

“………어, 그렇구나.”

 

“……다른 두 사람은 이거 알고 있어?”

 

“알고 있는 게 당연하잖아. 네가 말한 대로, 그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으니까.”

 

“흐-응, 그래. 그래도 지금의 관계를 계속하고 있는 거구나.”

 

“세 사람이 바랬던 거야. 물론 나도.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라면서.”

 

“…그래, 그런가.”

 

“………히키오, 그 때의 일, 수학 여행 때 있었던 거, 기억해?”

 

“토베랑 에비나하고 있었던 일?”

 

“어.”

 

“히키오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때의 나아는, 무서웠어.”

 

“토베가 에비나한테 고백하고 차여서, 그것 때문에 그 관계가 부서지고 말아버리는 게.”

 

“라고 했지만, 너희들은 그걸 태연하게 극복했다고 하는 거구나.”

 

“그야, 남은 두 사람으로 보자면, 여러 가지로 짐작 가는 게 있을지도 몰라. 그래도 그 애들은 도망가지 않았어.”

 

“뭐라고 해야 할까, 그 때의 나아와 우리들이, 바보 같네.”

 

“………아니, 그런 건 아냐. 그렇게 생각하는 게 보통이야.”

 

“사실은, 그 때의 너희들을 진심으로 경멸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얄팍한 허울뿐인 관계에 집착해선 뭐가 되냐고 하면서.”

 

“하지만, 자신이 같은 입장에 처했을 때, 난 너희를 바보 취급할 수 없게 되었지.”

 

“그런 모순을 품은 거짓 관계를, 발렌타인 이벤트 때 하루노씨에게 바보취급 당했을 때, 난 반박할 수 없었어.”

 

“잘못됐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어. 하지만, 난, 그 잘못을 바로잡는 게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말 할 수 있어.”

 

“그때의 그 관계는 잘못되거나 한 게 아니었다. 내가, 우리들이 진실된 것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고.”

 

“그건 진실된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과정의 하나였던 거야.”

 

“태어나면서 완벽한 인간 따윈 없어. 진실된 것을 바라곤 곧장 손에 넣을 수는 없어.”

 

“나나 하루노씨는, 그걸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답을 너무 서두르고 있었던 거야.”

 

“즐거운 것, 재미있는 것만이 있었던 건 아냐.”

 

“그런 것보다 몇 배 괴로운 일, 슬픈 일이 있었어.”

 

“하지만 그것들을 넘어왔기에, 지금의 우리들이 있어.”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게 있어. 말을 해도 잘 전해지지 않는 거도 있고.”

 

“서로 마음이 잘 전해지지 않고, 속타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어. 싸움이 된 적도 있었고.”

 

“그걸로 된 거야. 다들 자신의 의사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야. 누군가가 말한 걸 되새길 뿐인 인형이 아냐.”

 

“그런 전부를 합쳐서, 지금 우리들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괜찮아. 싸우는 일이 있어도 당연한 거야. 엇갈리는 게 있는 게 당연한 거야.”

 

“변해버리고 마는 걸, 잃어버리고 마는 걸 두려워하는 건 잘못된 게 아냐.”

 

“언젠가 변화나 이별은 반드시 찾아와. 원하지 않아도. 그 녀석들은 반드시 찾아와.”

 

“문제라고 해야 할 건 그쪽이야.”

 

“변해버리고 만걸 받아들이라곤 할 수 없어, 잃어버리고 만걸 잊으라고는 말 할 수 없어.”

 

“그래도, 우리들은 지금을 살아야만 해.”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어도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아. 미래에 희망을 가져도 그건 불확실한 거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언제까지라도 버리지 말고 가지고 있어. 잊을 수 없다면 언제까지라도 계속 기억하는 거야.”

 

“곧바로 답이 나오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언젠가는 답을 내야만 해.”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 우리들의 사정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계속해서 강제로 짐을 떠넘겨오겠지.”

 

“그렇다고 해도, 우리들은, 도망치는 게 허락되지 않아. 짐을 떠넘겨지고는, 내려두는 건 허락되어도, 짐을 받아 드는 걸 포기하고 버리는 건, 허락되지 않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깊게 생각하는 것. 결국 우리들에게 허용된 건 그것뿐이야.”

 

“그것이야 말로, 지금을 살아가는 자기 자신의, 자기와 같이 지금을 살아가는 동료들에 대한 단 하나의 성실함이라고 생각해.”

 

“미우라, 넌 그걸로부터 도망치는 건 하지 않았어.”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눈물로 얼굴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면서도, 넌 자신의 두려움과 줄곧마주봐왔어.”

 

“그 결과가 현재(지금)야.”

 

“그러니까……. 괜찮아. 네 고민은 매우 소중한 거였어. 그것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어.”

 

“지금의 너를 구성하고 있는 훌륭한 과거의 하나라고.”

 

“…………난 그렇게 생각해.”

 

“……………”

 

미우라의 멍한 표정에,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다.

………저질러 버렸다.


히라츠카 선생님의 설교하는 버릇이 옮아버리고 만 건지, 좀 말을 많이 해버렸다.

 

“………흐응.”

 

“미안, 좀 말이 많았네. 잘난 척 해버렸어.”

 

“왜? 딱히 사과해야 할 건 아니잖아?”

 

“그렇게 말 해준다면야……뭐, 고맙지.”

 

“오히려 좋았어. 네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히키오, 너도 꽤나 좋은 남자잖아.”

 

“그치?”

 

“핫, 우쭐대지마. 바보.”

 

“그럼, 떠든 탓에 시간 잡아먹어버렸어. 서둘러 히키오의 방으로 돌아갈까-.”

 

“아아, 그렇네.”

 

둘이서 나란히 밤길을 걷는다.

고등학교 시절로 보자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광경이지만, 틀림없이 이건 현실이다.

 

수천, 수억의 사람들 중에서 이 녀석들과 만날 수 있었던 기적에 감사를.

 

싸구려틱한 J-POP의 가사와 같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살랑, 흔들거리는 여름의 아지랑이. 그런 손에 넣을 수 없는 공허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진실된 관계.

 

그건 지금, 확실하게 내 손안에 있고,

내가 양 손에 들고 있는 짐의 무게를 새삼스럽게 느껴지게 했다.

 

 

 

 

 

 

 

 

심야, 문득 눈이 떠진다.

 

잠시 졸았던 머리를 누르곤 몸을 일으키자, 거기엔 참담한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그만큼의 대 연회 이후다, 유키노시타와 미우라가 자기 전에 쓰레기를 정리하는 걸로 되었던 기억이 있지만, 이 모습을 보자면 둘 다 도중에 힘이 다해버리고 만 것 같군.

 

내일 정리하는 거 귀찮겠다며 기분이 좀 나빠져있었는데, 누워있는 사람의 숫자가 한 명 부족한 것을 알게 된다.

 

어째설까.

 

내가 눈을 뜬 건, 정말이지 그저 우연이다. 그때까진 죽은 것처럼 잠들어있었을 터이다.

그렇다고 하는데, 이상한 확신이 있다.


그 녀석이 날 부르고 있다는 확신이.

 

 

 

 

 

 

 

 

소리가 나지 않게 발끝으로 걷는다.

자고 있는 녀석들을 밟지 않도록 걸어나가, 자고 있는 녀석들을 깨우지 않도록 현관문을 연다.

 

밖에 나와서, 그 녀석이 있을 게 분명한 아파트 정문으로.

 

과연, 그 녀석은 내 예상대로 거기에 있었고,

예상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 일어났나. 잠깐 여기서 한잔 더 안 할래? 히키가야.”

 

“건배”

 

“건배”

 

“그건 그렇고, 오늘은 꽤 마셨네. 다들 취해서 곤드러진 건 처음이잖아?”

 

“좀 너무 들떴어. 이래선 다들 내일 괴로울 걸.”

 

“뭐 어떠냐. 우리도 내년엔 3학년이니까. 뒤로 미뤄졌다고는 해도, 취직활동이 보이는 구만. 다들 알고 있는 거라고. 이런 날들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라….”

 

“그렇지, 그래서 다들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잖아. 미래가 되어서, 지금의 생활이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을 적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사람의 인상은 매일 꾸준히 갱신된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성장을 하고 있으면 알게 된다.

 

언제였을까. 히라츠카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대학에 진학하고 친구하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생겼다. 아르바이트처에서도, 친구라고 부를 만한 것이 생겼다.

 

그 시절의 나와 비교하면, 꽤나 사교적으로 되었구나, 하고 감탄한다.


그래도, 아니, 그렇기에.

 

그 시절의, 우리 셋의 봉사부를 회상해보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따듯한 느낌과 조금의 적막감이 가슴에 생긴다.

 

자신의 가슴에 물어보자.

 

그 시절의 매일 매일에, 후회는 있었던 걸까.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자.

 

그런 게, 있었을 리가 없다고.


지금의 나에게 있어, 그 시절의 추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라는 대답을.

 

“그러고 보니, 술 사러 간 후에 돌아와서부터 유미코의 기분이 묘하게 좋아서 말이지. 히키가야, 뭔가 했어?”

 

“아니, 딱히?”

 

“진짜? 수상한데.”

 

“뭐냐 하야마, 너 혹시 질투라도 하는 거냐?”

 

“아아, 그래.”

 

“푸흡!”

 

“……진짜로?”

 

“그래, 꽤나 진심으로.”

 

 

 

 

 

 

 

 

“히키가야, 한 개피 피워볼 생각 없어?”

 

그렇게 말하며, 하야마는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낸다.

 

“너……, 언제부터 담배 같은 거 피우게 됐냐?”

 

“아니, 난 안 피워, 저번에 소부고에 얼굴 내밀었을 적에 히라츠카 선생님한테서 받은 거야.”

 

“남자끼리 멋있는 대화를 하고 싶을 적에, 상대와 같이 피우라면서.”

 

과연, 그래서 세븐 스타인건가. 정말이지 그 사람답다.

 

“나도 피우는 건 처음이니까, 너도 같이 하자고.”

 

“그래그래.”

 

미개봉 비닐을 뜯고,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다.

크게 숨을 들이켜서, 연기를 폐 속으로 채워간다.

 

“콜록, 콜록, 으-음, 맛있지는 않네.”

 

“뭐 괜찮아. 자, 히키가야도.”

 

나도 하야마를 따라서, 담배 한 개피를 물었다만…….

 

“………야, 라이터도 넘겨.”

 

“미안, 방금 걸로 가스 다 써버린 것 같은데.”

 

“뭐? 무슨 말인데, 그럼 못 피우잖아.”

 

“바-보, 불이라면 여기에도 있잖아.”

 

톡톡, 하고 하야마는 자신이 물고 있는 담배를 검지로 찌른다.

 

……………야야, 진심이냐.

 

“멋 부리면서 대화를 하고 싶은 기분이니까. 같이 하자고.”

 

얼굴을 가까이 하고, 서로 물고 있던 담배로 입을 맞춘다.

크게 숨을 들이마셔서, 하야마의 담배에서 불씨를 받는다.

 

“시가 키스, 담배(시거렛) 키스라고 하는 것 같은데.”

 

“좀 너무 폼 잡은 것 같은데, 나하곤 안 어울려.”

 

“그래?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말을 들어도, 전혀 기쁘지 않다.

 

“히키가야………, 너, 담배 피운 적 있어?”

 

“아니, 없는데. 너하고 마찬가지로 오늘이 처음이다.”

 

“그래, 어딘가 폼이 잡혀있어서. 왠지 히라츠카 선생님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무슨 얘기 중이었지? 아 그렇지, 내가 널 얼마나 싫어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였나.”

 

“그런 이야기였냐?”

 

하야마의 말 치고는 하야마답지 않은 농담이다.

허나, 그런 나의 생각은 곧바로 잘못됐었다고, 깨닫게 된다.

 

“아아, 그런 얘기였을거야.”

 

정말이지, 자신의 학습 능력이 없다는 것에 당황하게 된다.

하야마답다는 건,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하고.

 

“언제나 넌 그랬어.”

 

“네가 말하는 것, 네가 하는 건 전부 올발랐어.”

 

“네가 일어날 때마다, 난 날 부정하게 되었지.”

 

“언제나 넌 올바르고, 언제나 난 잘못하고 있었다.”

 

“………알겠어? 내 기분을? 나라고 하는 인간의 존재방식을, 인생의 모든걸 부정당한 내 맘을?”


“그럴 의도는 없어. 그런 건 아냐. 넌 그렇게 말하겠지.”

 

“알고 있어. 그런 건. 나의 이 생각이 그저 독선(이기적)이라는 것 정도는.”

 

“그래도 말이야, 안 돼. 머리와 마음이 이어지지 않아. 이론으론 알고 있지만, 마음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아.”

 

“네가 누군가를 구할 때마다, 네가 누군가를 바꿀 때마다, 너 스스로가 상처 입을 때마다, 난 줄곧 부정당해왔었어.”

 

“………그래서 난 네가 싫어. 히키가야.”

 


……………라니, 끝내주는 미소로 어처구니 없는 말을 들었다.

 

유키노시타 유키노가 어둠을 품고 있었던 것처럼, 유키노시타 하루노가 어둠을 품고 있었던 것처럼.

하야마 하야토라는 남자 역시, 커다란 어둠을 안고 있었다.

 

절대로 서로 용납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 남자와 그 사상.

하지만 사실은, 나와 이 녀석의 그건 같은 곳에서 비롯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진실된 걸 바랬기에 기만을 혐오하는 남자.
진실된 것을 얻을 수 없다면, 기만을 추구하는 남자.

출발점만을 본다면, 당사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그 차이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의 속마음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던 그건, 우연히 다시 마주쳤을 적에는 이젠 완전히 별개의 사상이 되어 있었다.

두 개의 사상이 만났을 때, 그건 즉, 하야마 하야토라고 하는 인간이 내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내가 하야마 하야토라는 인간의 이상적인 상태의 역린을 만졌을 때.

 

그 때, 하야마는 어쩌면 나에게 조금이나마 공감했을지도 모른다. 동료의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무의식적이었겠지만, 그건 분명, 나도 마찬가지였을 터이다.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하고, (누구와도) 알 수 없을 거라고 포기하고 있었던 자기의 이상.

그 길을 같이 갈 사람이 나타난 것이라고 서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상대의 이상에 닿아보면, 그건 전혀 다른 것이었기에,

 

그건, 얼마나 잔인한 것이었을까.

 

기대를 했었기에, 꿈을 꿔버리고 말았기에, 그것이 배신당했을 때의 상실감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사랑했기에 미움이 100배라는 말처럼, 아련했던 몽상은 칠흑의 불길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아아, 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나와 하야마 하야토가 그렇게까지 반목하고, 서로를 혐오한 이유.

라고 까지 할 것도 없다.

 

그건 그저, 동족혐오였던 것이다.


제풀에 웃음이 복받친다.

 

“큭, 크큭, 크크크큭……….”

 

아, 안돼, 아직 웃으면 안돼, …………참아야 해, 그, 그렇지만……….

 

참고 있었지만 완전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인지, 이상한 웃음소리가 입 사이로 새어 나온다.

이거에는 아무리 하야마라도 좀 깨는데.

아니, 그렇지 않아. 그런 경우가 아니다.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리셋시킨다.

 


“그래, 넌 나를 싫어하는 군.”

 

“생각해보면 전에도 같은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근데 말이다, 하야마……….”

 

“내가 더 널 싫어한다고.”

 

그렇게 단언하자, 둘 사이에 퍼지는 침묵의 세계.

잠깐 지나서, 하야마가 뜻을 이해했다.

 

“………풉.”

 

“핫, 하하하핫.”

 

“아하하하하하하핫.”

 

하야마의 웃음에 덩달아, 참지 못하고 나도 터뜨려버리고 만다.

 

“아핫, 하하하하하하하핫!!”

 

심야 주택가에 울려 퍼지는 젊은 두 남자의 웃음 소리.
이 무슨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행동인지.

 


“………뭐야, 너도 알고 있었냐.”

 

“뭐, 그렇지.”

 

“시시한 이유로 반목하고 있었네. 우리들.”

 

“시시하다던가 하는 게 아니라고, 그런 일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거지.”

 

“………그렇게 항상 내려다보는 시선 같은 부분도 히카가야의 싫은 점인데.”

 

“…………그렇게 항상 점잔 피우는 부분도 하야마의 싫은 점인데.”

 

다시 웃음을 내뿜는 우리들.

 

“………히키가야, 난 너와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나도, 너와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야마.”

 

그러자, 갑자기 주먹을 내밀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친구(AIBO).”

 

“………에, 그거, 나도 해야만 하냐?”

 

“말 했잖아. 오늘은 폼 잡고(멋 부리고) 싶은 기분이라고.”

 

그런 건 하야마가 하니까 폼이 나는 거고, 내가 하면 단지 어딘가 아픈 애가 되어버리고 마는데.

뭐 그렇지만, 같이 하는 것도, 인색할 건 없지.

 

왜냐니, 나도 지금 맹렬히 폼 잡고 싶은 기분이니까.


“……아아, 나야 말로. 친구(AIBO).”

 

주먹과 주먹, 남자끼리의 거친 키스.


내 주먹의 첫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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