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유이가하마 귀찮아
"어, 저기이..... 가하마씨?"
"가하마씨 아니거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비워진 맥주잔이 테이블에 내리꽂혔다. 흐트러진 경단 머리, 취객 특유의 붉어진 얼굴, 한때 미소녀라 불렸던 그녀의 이런 모습을 대체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예전의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분명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분명 그녀를 이 지경으로 취하게 만든 무언가가 있었을 거라고.
"저기, 좀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냐?"
"아직, 끅..... 완전 부족해. 아, 죄송한데요, 생맥주 한 잔 더 주세요."
내 충고는 무시한 채, 술에 취해 난폭해진 여성-유이가하마 유이는 특히 정중하게 점원에게 주문을 고했다. 그렇다. 그녀를 주정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에 빠뜨린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그걸 설명하려면, 시간을 조금 되돌릴 필요가 있다.
"저기, 힛키, 아니 듣고 있어?"
"듣고 있어. 엄청 듣고 있거든. 벌써 다섯 번은 들은 것 같은데."
내가 달래듯 말하자, 유이가하마는 갓 나온 맥주에 입을 댔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해진 걸까, 그리고 왜 그녀는 이토록 심하게 취한 걸까. 사건의 발단은 한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금요일, 오후 7시. 본래는 정시 퇴근이어야 하지만, 왜 이 시간에 사무실을 나섰는지는 후줄근한 정장에 물어보면 알 것이다.
"아--. 더워...."
'찜통더위'라는 말은 도쿄의 여름을 위해 존재하는 말인 것 같다. 넥타이를 풀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 녹초가 된 몸을 질질 끌 인도를 걷는다. 열섬 현상은 당연히 이곳 신주쿠까지 덮고 있었고, 쿨비즈 덕분에 재킷은 입지 않았지만 어이 없을 정도로 덥다.
그래서, 라고 하기엔 지독한 변명 같지만. 문득 눈에 들어온 이자카야 간판과, 맥주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온다. 솔직히 회사 회식은 질색이다.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반복되는 상사의 옛 영광 이야기, 선배들의 무용담..... 그래서 밖에서 술을 마시는 것 자체에 좋은 추억이 없다. 빨리 집에 가서 몸을 회복해야 하지만, 나는....
"어서 오세요-!"
왜 불쑥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린 걸까? 그 활기찬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말도 안되게 지쳐 있었다. 그와 동시에, 쉴 틈조차 없었던 탓에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다. 즉, 몸이 맥주를 원하는 것이다. 가게 안은 주말답게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카운터는 만석. 겨우 비어 있던 2인용 테이블로 안내받았는데, 입구 쪽에서 미안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지금 만석이라서요...."
흥, 타이밍이 안 좋았군. 마지막 한 자리는 내가 차지했다. 하하하하!.... 하고 속좁은 인간 무브를 시전하며 소리가 난 쪽을 본다. 아무래도 여성 혼자 온 손님인 것 같다. 익숙해 보이는 정장차림, 연분홍색 머리, 축 처친 경단 머리........어? 경단 머리?
"유이가하마?"
"어....힛키?"
무심코 말을 건넨 그 인물은, 유이가하마 유이가 틀림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동아리 동료이자,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 눈이 마주친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우리를 보며, 안내를 하던 점원도 곤혹스러워한다.
"아, 일행이셨나요?"
"아뇨, 아니에요."
"엇, 잠깐만.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너무한 거 아니야!?"
아니 응. 확실히 그건 너무하긴 하다. 유이가하마를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지만, 착실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실랑이를 보고서 점원은 유이가하마를 내 맞은편 자리로 안내했고, 그녀는 흥하고 토라진 채 내 앞에 앉았다.
"아..... 뭐, 오랜만이다."
".....응. 힛키. 바빴으니까."
생맥주 두 잔을 주문하고 말을 걸자, 그렇게까지 기분이 나쁘진 않은지 부드러운 목소리가 돌아온다. 유이가하마와는 사회인이 된 후에도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다. 하지만 입사 초라 업무에 쫓겨, 휴일도 반납하고 일에 필요한 지식을 머릿속에 욱여넣는 나날이었다. 유이가하마로는 몇 번 기분 전환 삼아 놀러 가자는 연락이 왔었지만, 그녀와 만나는 것은 거의 1년 만이다.
재회가 사회인 2년 차에, 게다가 우연이라니. 이런 모습으론, 유이가하마에게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고 해도 할말이 없는 상황이다.
"미안해. 여러 번 불러줬는데."
"아---, 응, 뭐 이렇게라도 만났으니까 괜찮아."
우연히 만났는데 이걸로 용서해주다니, 가하마씨는 착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곧바로 맥주가 들어왔다. 일단은 건배해야지.
"어, 그럼 재회를 축하하며. 건배."
"건배-!"
가볍게 잔을 부딪히고, 황금빛 액체를 목구멍으로 흘려 넣는다. 역시 한여름에 마시는 맥주야말로 최고, 잔의 절반쯤 마시고 눈 앞을 보니---
"꿀꺽, 꿀꺽..... 푸하아!"
왠지 유이가하마씨는, 맥주를 단숨이 들이켜 버리셨습니다.
"저기요-! 생맥주 한 잔 더 부탁드려요!"
유이가하마는 내 시선을 알아챈 기색도 없이 바로 다음 주문을 입에 담고 있었다.
와, 정말 사내같이 술 마시는 모습, 아니 대학 시절에는 달달한 칵테일을 홀짝홀짝 마시기만 했었는데, 대체 오늘은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괜찮아?"
"응? 뭐가?"
유이가하마는 도착한 맥주를 받아들며, 어리둥절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얼굴은 붉어지지 않았지만, 술에 그다지 강하지 않았을 터.
"아니, 속도가 빠르길래..... 거기에 혼자 술 마시러 오는 것도 의외고."
".....나도 혼자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구."
쿡, 하고 자조적인 웃음을 짓더니, 유이가하마는 다시 한 모금, 두 모금 맥주를 마셔나간다.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 같다. 서로 사회인이니, 뭐 여러가지 일이 있겠지.
"뭐, 푸념 정도는 들어줄 수 있는데."
"음--.... 힛키한테는 별로 안 말하고 싶은데."
라고는 하지만, 이 흐름이라면 결국 듣게 될 것 같다. 에휴, 하고 생각하며 나는 맥주잔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
......라는 이유로 서두로 돌아간다. 유이가하마를 거칠게 만든 원인, 그것은.
"저기, 그렇게 연애 경험 없는 게 이상해!? 처녀인게 뭐가 나빠!?"
----즉, 이런 것이다.
회사 여자 선배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유이가하마에게 연애 경험이 전무하다는 사실이 탄로 났다. 그 후로 회식 때마다 여자들의 가십거리가 되고, 일하는 중에도 놀리는 듯한 말을 듣는 게 스트레스라고 한다.
"야, 유이가하마....."
"아---. 그 눈. 알거든? 귀찮다고 할 때의 그 눈 이잖아. 역시 처녀가 귀찮은 거지!"
아니요, 세상에는 처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 완전 괜찮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말이에요, 유이가하마씨..... 목소리가, 너무 커요. 아까부터 OL 누나들이 걱정스러운 듯 쳐다보고 있고, 번쩍번쩍 빛나는 대머리 아저씨는 저를 엄청나게 노려보고 있다고요. 진짜 좀 바주세요.
".....뭐, 나도 연애 경험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
"거길 신경 쓰라구!"
마구 날뛰는 유이가하마 한테서 베엣, 하고 물수건이 날라왔다. 아니 '거길'이나리, 대체 무슨 뜻인데.
"나, 귀찮은 애인가... 부담스럽나...."
그리고는, 달아올랐던가 싶었는데 갑자기 진정 모드로, 그리고 훌쩍훌쩍 모드로 넘어 간다. 확실히 이 정도로 취하면 상당히 귀찮다. 감정의 널뛰기가 너무 심해서 따라갈 수가 없으니까.
".....일단, 너 너무 마셨어. 나가자."
"에에-, 아직, 맥주 남았는데에...."
이 이상 마시면, 아무리 봐도 자력으로 귀가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계산을 마치고 유이가하마를 가게에서 끌어내자, 후끈한 열기가 뺨을 스친다. 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지만, 역시 유이가하마의 발걸음은 불안정하다.
"자, 어깨 빌려줄게."
"우으...., 미안...."
유이가하마가 기대는 자세가 되자, 그리운 향기가 코 끝을 채웠다. 그녀가 학생 때부터 자주 뿌리던, 감귤계열의 향이었다.
"저기, 힛키."
"응?"
"부담스러운 애, 싫어해?"
".....몰라. 사귀어 본 적 없으니까."
"역시 이 나이에 처녀인 건 이상한가?"
"야, 너....."
아니 진짜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대체 오늘 하루 동안 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몇 번을 답해야 하는지.
"그렇게 신경 쓰이면, 당장 버리면 되잖아."
혹시 나도 취한 걸까. 무심코 그런 한 마디가 입 밖으로 튀어나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유이가하마는 털썩하고 발걸음을 멈추더니, 유령과 같이 부정적인 아우라를 내뿜으며 나를 본다.
"힛키가...."
".....어?"
"힛키 이 바보오오오오오오!!"
퍽퍽, 하고 만화처럼 내 가슴팍을 때린다. 전혀 아프지는 않은데, 하지만 배가 맥주로 출렁거리니 좀 살살 때려줬으면 좋겠다.
"야, 야....."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좋아하는 사람하고가 아니면 싫단 말이야!"
"......그럼 좋아하는 사람을 만들면...."
"만들지 않아두 이미 있거든!"
유이가하마는 하아, 하아하고 숨을 몰아쉬며, 눈물 어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지끈, 하고 가슴이 아파오고, 마음속에 잔물결이 일렁인다.
"그, 그럼 대시하면 돌아봐 주지 않을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어.... 생각, 하는데"
"상대방, 엄청 둔감하다구?"
"그럼 알아차릴 때까지 할 수밖에...."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어, 응...."
"그래. 알겠어."
대체 뭘 알겠다는 걸까. 유이가하마는 내 셔츠 자락을 잡아당기더니, 노려본 채로 말한다.
"힛키, 집까지 데려다 줘."
"뭐.....?"
지금 그걸, 말하는 건,
"부탁이야, 데려다 줘."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어도 사귀지 않았던 우리들이, 이성 친구 사이여야 할 우리들이....
"진심이냐."
결코 마지막까지 부숴서는 안 될 관계가, 손개서는 안 될 상자의 뚜껑이.
"진심이야."
전부 부서지고, 상자 속 내용물이 날아가 버린다.
".....대시, 하고 싶으니까."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어딘가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리고 만다.
~~~
참새가 짹짹하고 우는 소리와 함께, 그 아침은 시작되었다. 무거운 눈꺼풀, 둔하게 아파오는 머리. 이 감각은 안다. 술을 잔뜩 마신 다음 날의 아침이다. 언제 정신을 차리고 돌아온 걸까. 낯익은 아파트 방 한 칸에,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들어오고 있다. 문득 한기를 느껴 이불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천이 맨살 위를 스치는 감촉에서, 자신이 알몸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옆에는. 낯익은 사람이 누워있었다. 마찬가지로 알몸으로.
"말 도 안 돼....."
----그 사람은 내, 짝사랑 상대였다.
"나, 힛키를 데려와 버렸어...."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어젯밤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 되살아난다. 술에 취해 심하게 꼬장을 부렸던 것, 기세를 빌려 모든 것을 고백해 버린 것,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고 싶을 만큼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으응...."
그리고 나의 고민거리가 된 그는, 행복한 듯 잠든 얼굴을 보여주고 있으니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다.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깨어 있을 때 이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면 '뭐야?'하고 금방 눈치챌 거고, 잠든 얼굴은 마지막으로 언제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래서, 조금 더 보고 싶었는데....
"으...음...어, 라?"
눈을 뜨고 그는 방 안을 빙 둘러보더니, 곧바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는 모습을 나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계속 응시했다.
"안녕, 힛키."
"유이가하마.....? 어, 진짜....?"
알몸에 이불을 덮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그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한다. 어젯밤에는 게걸스럽게 쳐다봤으면서. 하지만 그 반응을 보고, 단번에 불안해졌다. 그는 과연, 어젯밤의 일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걸까-?
"저, 저기....어제 일, 기억나?"
"아, 어어.... 잠깐만."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10초, 20초-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은 나팔꽃처럼 자라난다.
"오케이, 전부 기억났다."
"....다행이야."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 역시 떠올라 버린 것이 있었다.
'힛키.....! 좋아해, 정말 좋아해!!'
술김에, 그리고 처음이라는 것도 있어서 엄청나게 여러 번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 같다. 게다가 지금이라면 절대 말 못할 야한 말도 해버렸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뭐랄까 이거, 엄청 부끄럽네...."
"응...."
하지만 이것만은 확인해야 한다.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약속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만 했다.
"힛키, 그럼... 그... 약속, 기억해?"
"약속? 아, 그래."
되물어지는 순간, 또다시 조금 불안해졌다. 하지만 이제 괘찮아, 하고 말해주는 것처럼 그는 상냥하게 웃는다.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네게서 듣기만 하는 것도 좀 그러니까. 다시 해도 될까?"
"어........ 아, 응."
흠흠, 하고 목 상태를 확인하게 그에게, 또다시 두근하고 설렌다.
"어.... 그러니까."
똑똑, 하고 계속 누군가가 마음의 문을 노크하고 있다. 그 문 너머에는 분명 당신이 있고, 그것만은 손에 잡힐 듯 분명해서.
"......유이."
그러니 어떤 삐뚤어진 말이라도, 어쩌면 솔직한 말이라도. 대답만은, 정해 놓았다.
"나랑 사귀어 줘. --- 결혼을 전제로."
"--응!"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그를 끌어안고 키스했다. '이제 놓치지 않을 거야'하고 전하듯이, 길고, 길게,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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